세상읽기/정영태(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

정치인…차라리 없어져야 할

정치와 정치인이 필요 없는 사회는 ‘살맛이 나는 세상’일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간 갈등이나 적대관계가 있는 곳에서만 남의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와, 이를 전담하는 정치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갈등과 적대관계가 없는 곳에서는 정해진 절차나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행정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와 정치인을 보면 방금 말한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 차라리 없어졌으면 한다. 물론 모든 종류의 갈등과 적대관계가 사라진 ‘살맛나는 세상’이 와서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의 정치와 정치인은 없는 것이 지금보다는 훨씬 덜 나쁠 것 같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정수도 줄이고 선거제도도 바꾸겠다고 국민 앞에서 단단히 약속한 것이 언제였나. IMF한테서 구제금융을 받을 때였으니까, 거의 2년이 지났다. 정치풍토를 낫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까지는 용서해 줄 수 있다. 문제는 정치풍토를 오히려 더 더럽혀 놓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정치인들은 하는 일마다 국민들에게 불신만 키워서 깨끗하고 유능한 정치인에 대한 신뢰마저 갖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잡아떼면 된다’는 식의 나쁜 버릇만 가르치고 있으며, 건전한 시민단체나 새로운 정당 정치인이 세상을 좀 낫게 만들려고 뭔가 해보려고 하면 국가보안법을 동원하거나 국회의 고유권한 운운하면서 온갖 방해를 다해 왔다. 외국인기업에서 ‘노예’처럼 착취당한 우리 노동자가 실정을 폭로하려고 하자 외국인투자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오히려 우리 노동자를 나무랐다. 문산시가 물 속에 두 번씩이나 가라앉은 이유가 미군의 괄시와 방자함이었음에도 항의는커녕 그것을 이슈화하는 시민들을 나무라기도 했다. 이런 정치인과 정치라면, 차리리 없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도 동의할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 나라가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해 버리자는 사람도 있고, 김장배추도 수입하는 판에 정치인도 수입하자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물론 우리의 정치와 정치인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홧김에 내뱉는 말일 것이고, 우리의 정치인들이 제 나라 ‘백성’의 생명도 제대로 못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외국인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가장 ‘우호적’이라고 하는 미국이 우리 국민들을 어떻게 대해 왔고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노근리사건, 비무장지대 고엽제 살포유도사건, 문산시 홍수사건, 시티은행 부당노동행위 등 부지기수의 불법적이고 비인도적 행위들을 상기하면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에게 맡길 수도 없고, 외국인에게 맡겨서도 안된다면, 혁명을 해야 하는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지금과 같은 정치인들을 정치권에서 밀어내고 깨끗하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생각난다. 베네수엘라의 새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제헌의회를 새로이 구성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기득권의 격렬한 반대와 시위에 직면해 정국이 혼란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정권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한 서민들의 지지가 높다고 한다. 우고 차베스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고, 새 헌법과 그에 의해 구성된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바꿀) 새국회를 통해 부패척결 이외의 다른 개혁을 얼마나 추진할지 두고봐야겠지만, 없는 편이 나은 것으로 인식될 정도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과 그들이 벌이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런 강도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정치관계법을 바꾸도록 놔두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만약 베네수엘라와 같은 ‘극단’의 조치를 피하려면 대통령의 자기희생적인 결단이 필요하리라 본다. 이것도 저것도 못하면, 우리의 운명은 한말(韓末)과 같아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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