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나활동가] 노동문화운동가 신재걸씨

신재걸(40)씨는 20년 넘게 ‘노동운동’과 ‘노동문화’를 부여 잡고 살아

왔다. 대학에 입학한 78년 학교 밖의 기독청년회에서 탈 춤반 활동을 시작하면

서부터다. 그 이듬해 그는 ‘저 유명한’ 원 풍모방 노조 탈춤반의 강사로 활

동을 시작했다. “82년 원풍모방 노조가 깨질 때까지 함께 했죠.” ‘노

동’, 그리고 ‘문화’와 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85년 졸업 뒤에는 인천 부평의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재주가 많아서일까. 세상은 “현장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공장 에 들어간

그를 다시 불러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는 등 현장의 활동을 밖에

서 도와야 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문화국(89년 1월~), 전노협 문화국(90년 1월22

일~95년 12월3일), 다시 민주노총 문화국(~99년 11월30일) . 민주노동운동 진

영 안에서 잔뼈가 굵은 ‘문화 전문 일꾼’이다 .

그가 이제 십수년간 젊음을 바친 노조운동을 뒤로 하고 노동문화 정책정보

센터에서 운영위원으로 새일을 꾀한다. 왜? “노조 문화 국 활동은 다른 일이

워낙 많아 일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 했죠.”

2000년 1월16일 정식으로 창립할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는 “노동 문화의 생

산-유통-수용 구조의 구축을 통한 건강하고 창조적인 노 동문화 건설”을 내걸

고 있다(<한겨레> 6월23일자 19면).

그가 생각하는 노동문화는 무엇일까. “‘문화가 없는 민족은 민 족이 아니

고, 문화가 없는 계급은 계급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죠 ? 대중문화에 일방적

으로 노출돼 있을 뿐 문화적으로 소외된 노동 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어야 해요. 60~70년 대 일본이나 20세기 초 독일의 노동자 집회를

보면, 두주먹 불끈 쥔 지금 우리의 집회 모습과 비슷하죠. 지금 두 나라엔 그

흔적 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우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노조 안에 문화 국을

따로 두고 있을 만큼 역동적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80년대식 집회문화’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상대 비교를 하면 여전히 심각하 지만 그래도 전보다

는 나아진 편이죠. 앞으로 노동시간도 줄어들 테고. 자신과 가족의 더 나은 삶

을 생각하게 될 겁니다. 노동자들 이 일상생활 속에서 주체적으로 즐기고 만들

어나가는 문화를 고민 하는 게 필요합니다.”

글 이제훈 기자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99년12월01일12시03분 한겨레 http://www.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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