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김성구(한신대 교수,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장)
외환위기를 다시 생각한다
IMF 관리체제 2년을 지나면서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경기회복 국면으로 들어서지 않았나 하는 주장이 힘을 얻어 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아직 구조조정이 미진하고 경기도 일부 수출품목을 중심으로 불균등하게 진행되며 세계경제도 불안정해서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환보유고나 성장률 등 거시경제지표들을 보면 외환위기는 일단 극복된 것처럼 보이고, 경기과열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경기는 회복세가 뚜렷하다.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위기극복을 두고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자화자찬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시적인 금융상의 교란에서 비롯됐다’며, IMF의 신자유주의 진단이 과장되고 잘못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경제기초는 튼튼했다는 것인데, 이런 주장은 외환위기가 국제금융자본과 미국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논거도 될 수 있다.
반면 신중론은 시장주의 구조조정이 더욱 철저하게 실행되어야 한다는, 급진적 신자유주의 경제학쪽이 공세적 측면에서 제기한다. 그런가 하면 온건한 신자유주의라고 할 재벌개혁론이 재벌개혁의 미진함을 근거로 제기하기도 하고,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운동에서 비롯되는 위험을 경계하는 측면에서도 제기된다. 이렇듯 경기회복을 둘러싼 논의는 위기의 원인과 구조조정정책을 불가피하게 다시 평가하게 한다.
경기회복을 근거로 지난 외환위기가 ‘실물경제는 건전했는데 금융상의 교란이나 착란 때문에 일어났다’는 주장은 우선 설득력이 없다. 1994∼96년의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1994∼97년 4년 동안 경상수지 적자가 4백30억 달러를 넘었다. 또한 97년 들어 30대재벌의 일련의 부도가 진행된 상황에서 위기는 실물경제와 금융, 외환부문 모두에서 상호작용 하에 전개되고 있었다. 외환위기는 일시적인 금융교란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위기에 뿌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 순환적인 위기도 아니었다. 경기회복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낙관할 수는 없지만, 빠른 회복속도에 비추어 이 위기가 일각의 분석처럼 이윤율저하에서 비롯되는 장기적 위기 또는 구조불황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위기는 대외종속적-독점적 축적체제의 구조적 위기였고, 따라서 이 축적체제의 청산 없이 진정한 위기극복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이 축적체제를 청산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된 세계경제질서에 적응시키도록 재편하는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위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경기가 회복된다는 것은 새로운 위기로 가는 길이다.
지난 외환위기가 고도성장 위에서 일어났다 점을 상기하면, 한국경제의 위기를 고집하기 위해서 현재 진행되는 경기회복을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경기가 회복한다 하더라도, 외환위기를 일단 극복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위기가 불가피하다. 이 축적체제 하에서는, 더욱이 보다 개방된 조건하에서는, 그리고 불안정한 세계경제 조건하에서는.
따라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정부의 자화자찬이나, 시장주의 구조조정이 미진해서 경기회복과 외환위기 극복을 말하기 어렵다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주장은 가장 잘못된 것이다. 이 정책을 통해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다는 것 뿐 아니라, 이 정책 때문에 머잖아 새로운 위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위기극복책이 아닌 것이다.
한편 경기회복의 불균등성을 들어 경기회복론에 신중을 기하는 것도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의 고도성장과 호황은 언제나 중공업과 경공업의 불균형, 일부 주력 수출업종과 내수산업간의 불균형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이 축적체제의 주요한 특징이었고, 위기의 기본구성요소였던 것이다. 재벌개혁의 미진함을 걱정하는 재벌개혁론자도 새로운 경기회복 앞에서 설자리를 찾지 못하는 논자 중의 하나이다. ‘재벌지향적 축적체제가 글로벌화하는 세계경제의 변화에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아 위기가 발생했다’는 이 논자들은 경기회복과 새로운 고도성장 앞에서 설명력을 상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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