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김금수의 항해> 파괴의 세기, 노동운동의 세기
<발문 1>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광기가 활기를 치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
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화산과도 같은 불길을 터뜨려 자본주의 체제의 밑둥
치를 뒤흔들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는 ‘혁명의 세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의 그 뜨거웠던 기세는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기반
의 균열을 보였다.
<발문 2>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제35차 국제노동사학자대회에서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노동운동의 세기’로 규정했다. 그는 1900년 제2인터내
셔널 대회 이후 국가와 자본주의를 상대로 한 전쟁을 청산한 노동운동이 사
회민주화를 비롯하여 노동환경 개선, 노동자 생활수준 향상, 사회복지제도
확충 등을 이룩한 성과를 중시한다. 파괴의 세기, 노동운동의 세기를 떠나
보내고 새 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인류는 과연 어디에서 꿈과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일까.
‘파괴의 세기’로 일컫는 1900년대를 떠나보낸다. 이 세기가 ‘노동운동의
세기’였다는 데 역사가들은 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본의 이윤
증식을 위한 끝없는 탐욕, 자본운동의 팽창이 빚어낸 세계대전, 파시즘이
자행한 잔혹한 학살행위, 제국주의가 수행한 저주스런 식민통치 등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굽히지 않는 저항과 도전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희망을 낳고도 이상을 파괴한 세기
“20세기는 인류가 품어온 희망 가운데 가장 큰 희망을 낳고는, 모든 환상
과 이상을 파괴해버렸다.” 영국의 한 음악가가 한 말이다.
20세기가 도래하기 직전, 그러니까 19세기 말에는 끝없는 낙관주의가 흘
러 넘쳤다고 한다. 20세기에는 민주주의가 막힌 데 없이 실현되고 과학과
발견의 실질적인 진보가 진행되며, 평화가 마냥 지속될 은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미래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지나온 20세기를 되돌아 볼 때, 역사 현실은 어떠했던가. 이 세기는 인류
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시기였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인류는
이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치렀다. 세계가
다 함께 경험한 대재앙이었다. 그것은 분명 ‘파국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세계대전의 밑바닥 깊숙이 깔린 뇌관은 다름 아닌 자본의 치열한 쟁
투였다.
또 하나 파괴의 세기를 장식한 것은 사람들을 전율로 빠뜨린 파시스트들
의 대량학살이었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세계대
전과 파시즘의 광기가 활기를 치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주의 혁명
이 화산과도 같은 불길을 터뜨려 자본주의 체제의 밑둥치를 뒤흔들었다. 그
런 점에서 20세기는 ‘혁명의 세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의 그 뜨거웠던 기세는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기반의 균열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20세기는 전례 없는 경제적·과학적·기술적 성장의 세
기였다. 세기말에 들어서는 ‘지구촌화’와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이 지
배와 종속,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심화하고 있다. 무척이나 불길한 예고로
보인다.
*억압과 저항의 역사
20세기 한반도 역사는 억압과 저항으로 점철했다. 이 땅에서 전개된 20세
기는 일제 강점에서 출발했다. 근 40년에 걸친 식민지 통치 시기는 민족사
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은 ‘파국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전개된 저항의
큰 흐름은 민족해방투쟁이었다.
제2차대전의 종료와 일제 패망 이후 외세의 힘으로 남북은 분단된 채,
미군정이 곧 이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시기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민중항쟁
은 생존권의 확보를 위한 절박한 요구를 내세웠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족
의 자주와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1948년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정권이 출범한 뒤 이태 뒤인 1950년 한국전
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이 시대를 산 민족에게 엄청난 비극을 연출했고, 전
쟁 이후 진행된 광포한 정치적 탄압과 반공체제의 공고화를 가져온 계기로
작용했다.
이승만 독재권력은 1960년 3,4월 민주항쟁으로 무너지고, 민족·민주운동
이 거대한 강물처럼 큰 흐름을 이루면서 힘찬 전진의 모습을 보였다. 외세
와 군부는 쿠데타로 이에 맞섰다. 결국 반동의 시대가 한 세대에 걸쳐 기승
을 부리게 되었다. 군사 파쇼는 민주주의를 짓밟고 반공을 앞세워 민족분단
의 고착화를 불렀을 뿐만 아니라 종속과 독점의 경제구조를 구축했다. 더욱
이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광주민중항쟁을 총칼로 누르고
등장했다. 반역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1987년 6월의 민중항쟁과 7∼9월의 노동항쟁은 군사 파쇼의 기반을 허물
어뜨리고 반역의 시대를 마감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10년 동안에
도,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으려는 수구적 지배세력과 진보와 변혁을 추구하
는 노동·민중 세력 사이에 갈등과 대결, 모순과 충돌이 지속되었다. 이제
파괴의 세기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저 치열했던 저항의 역사가 거두어지
는 시점이다. 새로운 천년이 막 눈앞에 다가와 있다.
*고양과 침체를 거듭한 ‘노동운동의 세기’
지난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제35차 국제노동
사학자대회에서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노동운동의 세기’로 규정했다. 노
동운동이 자본주의와 국가와의 ‘공존’을 실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홉스봄은 “강압과 테러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한, 노동자계급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에서 노동운동이 발전한다”며 노동운동을 자본주의체제의 필연적
이며 실질적으로 불가피한 사회현상으로 규정했다.
그는 1900년 제2인터내셔널 대회 이후 국가와 자본주의를 상대로 한 전쟁
을 청산한 노동운동이 사회민주화를 비롯하여 노동환경 개선, 노동자 생활
수준 향상, 사회복지제도 확충 등을 이룩한 성과를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미 『공산당선언』에서, 계급으로서 노동자
조직은 전국적 정당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증한 바 있는데, 이
는 두 사람의 중대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두 사람의 깨달음은 노
동운동만이 아니라 근대적 정치구조 발전에도 엄청난 역사적 파급효과를 갖
는다고 했다.
홉스봄은 “제2인터내셔널은 제3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수정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토대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1970년대 이후에는 최소한 두 곳에서 100년 전 유럽 노동운동에 비견할 만
한 대중적 노동운동이 성장한다. 브라질의 노동자당과 한국의 대중적 노동
조합운동이 그것이다”면서, “제3세계 노동운동이 배후에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던지 간에 이들은 대부분 20세기의 평화로운 민주정치보다 정변
과 혁명, 거리 투쟁과 무장이 익숙했던 나라들에서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한국 노조운동은 1898년 성진본정부두노조 설립에서 출발해 100년을 경과
했고,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의 결성을 근대적 노동운동의 시작으로 본다
면 80년의 역사를 지닌다. 노동운동은 일제 식민지 통치에서부터 미 군정,
한국전쟁과 자유당 독재정권, 1979년 유신 몰락, 전두환·노태우 파쇼정권, 민주화 이행기를 거치면서 전
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자유와 권리 확보와 경제적·사회
적·정치적 지위향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민족해방과 민주주의 실현, 민
족 자주의 확립과 민족통일, 사회정의와 민중의 생존권·기본권 쟁취를 위
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여왔다. 침체와 고양, 승리와 패배, 정체와 비약을
겪어야만 했다. 다름 아닌 ‘노동운동의 세기’였다.
파괴의 세기, 노동운동의 세기를 떠나보내고 인류는 과연 어디에서 꿈과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일까.
[저 자]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출 처] 매일노동뉴스
[발 행 일] 1999.12.14
[발 행 처] (주)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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