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손석춘의여론읽기] /꺽인 팔목의 유언/손석춘/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땅에 묻지 말고 그 대들 가슴
속에 묻어주오.”
스물 둘 처녀의 유언이다. 30미터 높이 옥상에서 얼어붙은 땅으 로 몸을 던
졌다. 장난감 공장 늙은 노동자인 홀어머니의 맏딸, 권 미경. 열세살 소녀시절
부터 10년을 쉼없이 일한 팔뚝 위에 마지막 말을 썼다.
1991년 12월이었다. 그 비극은 90년대가 마무리되는 99년 오늘도 진행중이
다. 권미경이 온몸으로 외친 것은 “무노동 무임금을 철 폐하라”였다. 그가
남긴 일기에는 `노동자 생명을 파리목숨보다 더 못하게 여기면서 십원짜리 하
나라도 더 챙기려 드는 너희’들 에 대한 `피맺힌 한’이 갈피갈피 묻어난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 다”는 고백은 눈시울을 적신다.
1999년 12월. <조선일보>는 `무노동 무임금 지켜야’를 사설로 실 었다. `노
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공정하게 논의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노동 무
임금 원칙이 필요하단다. 바로 다음날 <중앙 일보>가 가세했다. `노사갈등 제
대로 풀자’는 사설이 내세운 `제 대로’의 기준도 무노동 무임금이다. <동아일
보> 또한 사설로 무노 동 무임금 원칙을 강조했다.
말끝마다 불편부당·객관성·중립성을 내세우는 오늘의 언론이 누구의 편
인지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전경련·경총의 요구 와 똑같지 않은가.
권미경이 목숨을 던진 때는 노태우 정권 시절이다. 그 뒤 `문민 ‘을 거쳐 `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언론은 전혀 변함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처벌 조항 삭제를 공약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 공약을 실천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정희기념관이
공약이라며 막 무가내인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무엇 때문일까. 수구언론 눈치
보 기가 아니라면 이해할 길이 없다. 박정희기념관은 수구언론이 적 극 옹호
하지만 노조전임자 임금엔 입 모아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 무노동 무임금 여
론을 몰아가는 세 신문사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기정사실화하려는 무노동 무임금은 과연 원칙이요 , 진리인
가? 전혀 아니다. 사실 그 말의 뿌리는 “일하지 않는자 , 먹지도 말라”는 민
중의 외침에 있다. 무노동 무임금은 그 점에 서 교활한 표절이다. 무노동 무임
금의 정신을 온전히 살리려면 그 말은 오늘의 `천민자본’을 겨눠야한다. 실직
과 임금삭감의 고통 에 허덕이는 80%의 민중들과 정반대로 이 땅의 상류층 20%
가 누리 는 호화생활은 과연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인 금융소득종합과세나, 막대한 주가차익에 과세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전경련이나 경총은 무노동 무임금이 마치 보편적 원칙인 듯 주장할
수도 있다. 그들은 본디 그런 사람들 아닌가. 지구 어디 에도 없는 전임자 임
금지급 처벌을 정당한 수한가를 증언해준다.
문제는 유력 신문들이다. 무노동 무임금은 법적 개념이 아니라 자본쪽의
임의적 주장임을 모른다면 스스로 무지를 고백하는 셈이 다. 만일 알면서 무노
동 무임금을 보편적 원칙으로 주장한다면 지 식인으로서 `범죄’ 행위다. 정직
하게 “재벌을 대변한다”고 밝혀 야 한다. 무노동 무임금이 마치 보편적 진리
인 듯 여기는 집단착 각은 언론을 개혁하지 않는 한 치료하기 어렵다. 언론이
몰아가는 여론몰이 속에 참 여론을 읽는 슬기는 언론이 성역으로 남아 있 는
우리 시대에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권미경을 우리는 차가운 땅에 묻을 수 없다. 오늘 이 순간도 수 많은 권미
경이 가난과 모멸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소녀시절부 터 노동으로 다듬어진
그 아름다운 팔목이 꺾인 채 호소한 유언 아닌가. 새 천년의 장밋빛 담론이
쏟아지는 세기말의 겨울 권미경 을 다시 우리 가슴에 묻을 때다. 아니, 우리
가슴에 살릴 때다.
여론매체부장 songil@hani.co.kr
◐ 99년12월15일18시27분 한겨레 http://www.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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