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기자메모> 민노총에‘바웬사’는 없나

노동자의 위대한 승리를 일컬을 때 사람들은 곧잘 폴란드를 들먹인다.

굴절의 현대사를 거쳐온 이 나라가 전 세계인에게 깊이 각인돼 있는 것

은 위대한 ‘자유노조’ 때문이다. 81년 폴란드 공산정부는 파업에 돌입한

노 동자들을 탱크로 밀어붙였지만 바웬사를 정점으로 한 자유노조의 단결된

힘 을 꺾진 못했다. 세계는 무혈혁명을 승리로 이끈 바웬사에게 노벨평화상

으 로 화답했다.

이후 바웬사란 이름은 노동운동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은 폴란드의 초기 자유노조보다 훨씬 강건한 세력을

가진 곳이다. 전국 19개 연맹에 14개 지역본부를 지녔고 조합원만 57만여명

에 달한다.

이런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요즘 ‘막말’ 파문에 휩싸여 있다. 지난 13

일 파업유도사건의 강원일 특검을 항의방문한 자리에서 육두문자를 썼던 것

이 화근이 돼 연일 여론에 난타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부는 설화(舌禍)사건이 예상밖의 파장을 불러오자 처음엔 “다소 성

급했다”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15일 공식 성명서에서는 기조

가 상당히 달라졌다.

민주노총은 성명서에서 “감정이 격해져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그런 순간적인 실수를 범했다고 해서 조직적으로 파업유도 공작을 펼치며

노동문제에 개입해온 검찰의 범죄를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다”고 공세적

입장을 취했다.

또 “언론에서 (이 문제를 놓고) 선정적 보도를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

리고 있다” “공안검찰의 진상을 감추려는 악의에 찬 기도에 단호하게 대

처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성명서 어디를 봐도 57만명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

일단 특검수사 결과를 보고 대응해 달라”는 강특검의 거듭된 부탁도 무 시

됐다.

오직 흑백논리, 보혁(保革)대결로 나눠진 2분법적 시각밖에 없었다. 며

칠전 서울역 집회때의 폭력시위에 대해서도 ‘우발적인 일’로 치부하고 있

을 뿐이다.

노동운동을 승리로 이끈 바웬사의 무기가 협상력과 지도력이었음을 민주

노총 지도부는 한번쯤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 자] 조장래 기자

[출 처] 경향

[발 행 일] 1999.12.16

[발 행 처] 경향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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