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철군시한 없는' 전쟁비용법안 가결

민주당 ‘로비’에 기댄 반전운동의 한계도 드러나

부시, 이라크 전쟁 ‘백지수표’ 얻었다

미 의회가 24일 ‘철군 시한 없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비 1000억을 지원하는 전쟁비용법안(전비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지난 4개월간의 전비법안을 둘러싼 민주당과 부시 행정부간의 힘겨루기는 부시 행정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지난 중간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미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결국 민주당도 부시 행정부에게 ‘백지수표’를 안겨 준 셈이 되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책임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법안은 상원 민주당 대변인 펠로시와 하원 민주당 지도부인 해리 리드 의원, 공화당 그리고 백악관의 합의안으로, 결국 민주당의 ‘철군 시한’을 못 박으라는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안으로 마련되었다.

이 합의를 바탕으로 미 하원은 24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전쟁비용법안을 상정, 찬성 280표, 반대 142표로 통과시켰고, 상원도 이날 저녁 예정된 시간 보다 2시간여 빨리 이뤄진 표결에서 찬성 80표, 반대 14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시 미 대통령도 이 법안에 즉각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내 미군 병력 증강...극으로 치닫는 이라크

부시 대통령은 전비법안 표결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여름이 이라크전의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며, “바그다드 살인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게 8월은 '피의 달'이 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몇 달간 이라크 내 상황은 더욱 극으로 치닫는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피의 달’이라는 강경한 단어까지 언급한 데에는 9월로 예정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의 보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9월까지 이라크 내 저항세력을 진압하지 못한다면, 이번 ‘철군 시한 없는’ 전비법안 통과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 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2일 미군 9명이 사망해서 이번 달만해도 미군 사망자 수는 81명에 달한다. 또 이라크에서 22일 바그다드 남서부 시아파 거주지역인 아밀지역에서 폭탄 공격으로 25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달에 이어 5월 24일에도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 지역에서 44명이 사망하는 등 저항세력의 반발도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거꾸로 가는 ‘부시행정부’
의회 ‘로비’에 기댄 반전운동의 한계 드러나


이런 부시 행정부의 행보는 미국 국민의 여론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회 승인을 한 시간 앞둔 시점에서 뉴욕 타임즈와 CBS 뉴스가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1퍼센트가 이라크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대답했고 76퍼센트는 전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대답했으며 이 중 47퍼센트는 “대단히 악화”되고 있다고 답했다.

또, 76퍼센트가 부시의 추가파병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거나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압도적인 국민의 전쟁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략전쟁의 ‘철군시한표’조차 얻지 못한 미 반전 운동의 한계도 드러났다.

반전운동인 무브온(MoveOn)은 23일, 모든 “민주당 의원들은 이 법안에 반대해야 한다”는 메일을 보내며, 전비법안이 가결될 경우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전비법안 가결로 결국 민주당에 대한 기대는 ‘기대’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이번 전비법안 가결로 미국 내 반전운동에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보냈던 로비 중심의 반전운동에 대한 평가와 논쟁도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