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매일 지하철로 출근을 한다. 매일 아침 지하철은 지치지도 않고 같은 시각에 같은 곳에 도착한다. 앞선 지하철을 놓쳐도 조금 기다리면 또 다른 지하철이 도착한다. 개인적으로 버스 타기를 더 좋아하지만 시간을 맞춰 도착해야 하는 출근시간에는 반드시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은 막히지도 않고,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시각에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달랐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올라서자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오는 방향으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어 보기도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지하철은 도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계를 쳐다보며 초초해 했다. 이 때 역을 떵떵 울리는 방송이 시작되었다.
“지난 14일부터 철도노조의 ‘태업’으로 지하철 도착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휴 뭐야” 출근준비로 쫙 빼 입고 기자 옆에 서있던 한 사람이 짜증을 냈다.
기자의 귀에 걸린 ‘태업’이라는 단어. 매일 같이 운수노조 철도본부와 서울지하철노조의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의 귀에 당연히 꽂히는 단어였다. “태업이 아니라 안전운행 투쟁인데”라는 말이 입가를 맴돌았다.
파업을 예고해야 안전운행을 할 수 있는 노동자들
운수노조 철도본부(철도본부)는 17일, “안전운행 투쟁으로 인해 일부 열차가 다소 지연되어 불편을 겪으신 승객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성명을 내놓았다.
▲ 투쟁조끼를 입고 일하는 철도 노동자 [출처: 운수노조 철도본부] |
철도본부가 하고 있는 ‘안전운행 투쟁’은 사실 투쟁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운행은 철도공사 측이 정해놓은 작업규정에 따라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철도공사 측은 안전을 이유로 직종별로 작업 때 지켜야 할 작업규정을 정해 놓았다.
예를 들어 철도공사 측이 마련해 놓은 작업규정에는 2인 이상이 철로를 순회하도록 되어 있다. 최소한 한 사람은 달리는 열차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철도공사가 진행한 각종 구조조정으로 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1인이 혼자 철로 순회를 하게 되었고 결국 작업 중 열차에 치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작업규정을 제대로 지키기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처럼 철도노동자들은 부족한 인력 때문에 작업규정을 제대로 지키면서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철도노동자들에게 작업규정을 지키는 것은 ‘투쟁’이 되어버렸다.
이거 당연히 지켜야 하는 건데...
차량을 정비하는 노동자들은 규정대로 차량을 검수하고, 운전을 하는 노동자들은 각종 운전속도를 지키고, 무리한 운전을 하지 않는 것. 시설을 유지하는 노동자들은 야간 4시간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시설장비 차단작업 및 이동시 규정 속도를 준수하고, 전기설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2인 1조 작업을 원칙으로 업무용차를 규칙에 맞게 운행하는 것. 지하철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역 진입 시 안전선 안쪽에 승객이 있을 경우 비상정차 후 최대한 안전을 고려해 진입하고, 출입문 열고 승객이 완전히 승하차 한 후 문을 닫아 반복적으로 출입문을 열고 닫지 않는 것. 출고열차가 출발할 때 출입문 점검 완료 후 열사운행을 하는 것. 그냥 쭉 훑어봐도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승객들은 연착되는 지하철에 운전을 하는 노동자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철도 공사 측에 항의 전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기본적인 규칙들도 지키지 않고 철도를 운행해 왔다는 거야. 대형사고 위험을 안고 다닌 거잖아”하고 말이다.
그래서 철도노동자들은 “안전운행이 투쟁이 되어버린 현실을 철도공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 철도노동자들은 태업이 아니라 안전운행을 하고 있다. [출처: 운수노조 철도본부] |
“안전운행 투쟁은 소위 준법투쟁으로 사규를 지키는 투쟁입니다. 예비차량이 부족해 운행차량이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점검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그 때마다 철도공사는 승무원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하지만 막상 안전운행 수칙에 따른 운행을 철저히 하면 (철도노동자들은) 징계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안전운행은 무조건 해야 하는 당연한 일임에도 이것이 투쟁이 되어 버린 웃지 못 할 현실입니다.”
어려운 시기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누구?
이명박 대통령은 철도본부와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에 “이 어려운 시기에 공기업이 불법파업을 하면 엄격히 다룰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일단 철도본부와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은 필수유지업무를 지키는 ‘합법파업’이라는 점과 경제위기에 부자들에게 감세를 하고 잘 유지해야 할 공기업을 마구잡이로 팔아넘겨 결국 대한민국을 최악의 경제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 때문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고하고.
철도본부와 서울지하철노조는 법을 지키는, 원칙을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인력감축을 하면 대형 사고에 위험이 있으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정말 필요한 인원은 얼마나 되고, 철도와 지하철을 정말 안전하게 운행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철도와 지하철 운영의 원칙은 골프장이나 지어서 이윤을 남기겠다는 논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안전하고 편리하게, 최소한의 요금만 내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해고자 복직 문제도 이미 사측이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뿐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철도를 민영화하겠다는 것을 온 몸으로 막아선 사람들이다. 철도는 국민의 것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서 싸운 사람들인 것이다. 당연히 복직 되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안전운행이 투쟁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현실. 이명박 정부와 한국철도공사, 서울메트로는 자신들이 법과 원칙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 지하철과 기차가 연착한 이유는 바로 이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