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운동의 방향과 과제
1. 노동시간은 왜 지속적으로 단축되어야 하는가?
(1) 생산력 발전의 결과를 자본측 일방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 구성원이 향유할 수 있으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1인당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즉, 생산력 발전의 결과를 자본측 일방이 전유하는 방식인 상대적 과잉인구(실업/반실업 인구)의 누진적인 형성과 재생산의 고리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하여 끊어내야 한다.
오늘날 자본이 세계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의 배경,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IMF 관리체제하에서 본격화되고 97년과 98년 동안 법제화과정을 거친 노동시간의 변형과 파견 노동 및 정리해고제 등의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관련 법·제도들의 배경은 바로 생산력 발전의 자본가계급 전유의 결과이다. (자본축적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과잉인 인구의 누적과,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모순에 근원을 두는 자본축적의 위기(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만성적인 공황상태)가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추구의 배경이다.)
자본의 노동력에 대한 유연화 공격은 상대적 과잉인구에 대한 자본의 계획적인 재생산과 재배치 프로젝트에 다름 아니다.
(자본에 대한)상대적 과잉인구는 완전실업자, 반실업자로 구성되며, 고전적 의미에서 말하는 정체적/유동적/잠재적 과잉인구가 바로 그들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2001년 현재 상대적 과잉인구의 규모는,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3,640만 6천명. 4월 현재)를 기준으로 볼 때 1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표1> 참조).
: 실제 실업 상황에 근접하여 있는 층, 곧 불완전한 취업자들, 다른 말로 하면 반(半)실업자 층이 최근에 급증. 이들이 취업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
: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2001년 4월 현재 1996년에 비해 152%가 늘어났고, 1시간에서 17시간 취업자는 같은 기간에 191%가 증가. 반면 36시간 이상자는 거의 불변.
종합하면, 경기순환 국면의 특징에 따라 취업 인구로 흡수되었다가 다시 실업에 처하는 유동인구의 규모가 전반적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 완전실업인구(실업자+실망실업자) = 1백50만 명 ~ 3백만 명. – 반실업인구: 임시/일용직 682만명 + 실업자 84.8만명 + 일시휴직자 15.7만명 + 비경제활동인구의 최소한 5.1%(통계청 추계) ∼ 15.7%(통계청에 의한 개인의 구직의사 조사결과)에 달하는 실망실업자(최소 71만 6,700여 명 ~ 최대 2백20만6,300여 명) – 무급가족종사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은폐된 실업자’ – 자영업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이들 상대적 과잉인구의 절대적인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만큼의 ‘일할 권리’의 강제적 박탈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일의 감소가 아니라 잉여노동의 증대로 흡수되고 있으며, 따라서 1인당 노동시간(노동일)의 감소가 아니라 노동자 수의 감소로 나타나는 것을 통하여 자본가계급에게 전유되고 있고, 그 결과 오히려 노동자계급 내 분할되는 수의 양극 비율 보다는 노동자계급 내 통합성/평준화되는 수의 비율이 더 많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의 ‘자본에 의하여 조직되어 노동자계급 핵심 층’이라고 하는 ‘고용안정성을 획득하고 있는 정규직’의 수는 감소되는 반면에 절대 다수의 노동자층이 ‘불안정 고용’ 상태에 처하여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저변 노동자층이 우리 운동에서 현실적인 주체로서 새로운 조직적 대응역량을 객관적으로 획득하게 되었다.
– 그래서 생산력 발전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가능성으로서의 노동시간 단축의 가능성이 노동자 1인당 노동을 경감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자를 거꾸로 일터에서 쫓아냄으로써 소위 ‘핵심’노동자 수를 감소시켜 실업·반실업의 상대적 과잉인구를 누적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오히려 노동자계급 운동의 혁명적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어온 것이다. 즉, “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왔다.” –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체제 내적인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의 가능성은 점차 엷어지고 있으나, 새로운 체제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가능성은 점차 두터워지고 있다.
(3) 상대적 과잉인구의 누진적 형성/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사회정책적 개입은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계급타협주의 방식(세계적으로 1970년대까지)에서, 상대적 과잉인구 군의 조직적 재편을 통한 정치적 관리방식(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여전히 자본주의적 축적과 위기관리의 일환이라는 맥락 그대로 불변이며, 변화의 내용은 계급대립의 희석화와 노동자계급의 몰계급화 전략을 통한 자본가 계급 독재의 강화이고, 현실의 노동자계급의 생존조건은 점점 더 자본종속적인 것으로 편재되고 있다.
– 그러나 앞의 (2)에서 말했듯, 이 상황은 노동자계급운동의 객관적 역량 증대와 자본가계급의 자체무덤파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 그래서, 노동자의 일상적인 삶의 조건을 ‘현실적 조건’을 문제삼으면서 자본가계급과 공생을 모색하는 다양한 종류의 노자동반자주의 경향의 운동들이 잠깐이나마 득세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자본측의 자체 무덤파기를 돕다가 결국 그 무덤의 심연으로 떨어지기를 자초하는 운동이다.
2. 노동시간 단축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1)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은 노동자 1인당의 노동량을 균등하게 경감시키고 노동하는 인구의 수를 늘림으로써 노동을 보편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잉여노동시간의 사회적 귀속력이 지금처럼 자본가계급에게가 아니라 사회 그 자체로 이전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현대 과학기술혁명이 가져온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이 각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으로 귀속되지 않고 대량실업과 부의 양극화로 귀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시킬 수 있다.
(2) 자본의 만성적인 축적위기가 상대적 과잉인구의 확대재생산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는 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계획적인 자본주의적 이용을 통하여 해소하려고 하고 있으나, 결국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구조적 모순이랄 수 있는 과잉축적 위기의 경향을 본질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 오히려 노동자계급에 의하여 국가적 차원의 비자본주의적 프로젝트로서 사회적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하여 상대적 과잉인구가 생산과정에 재진입함으로써 사회적인 총 잉여노동을 사회적으로 전유하는 사회변혁 프로그램이 가동되어야 한다.
3. 현대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적절한 1일 노동시간은 7시간 이하로, 주당 노동시간은 30시간 이하로 단축되어야 한다 – <표1>에서 볼 때 현재 전산업 취업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51시간 이상이다. – 취업자의 절반 가량이 상대적 과잉인구이며, 그 중 최소 1/4 가량이 완전실업이라고 볼 때 현재의 실질 노동시간은 정규직 노동자 군의 과잉노동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그 과잉노동의 내용은 노동강도의 증가로 인하여 더욱 악성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도 노동자의 노동하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되어야 한다. – 그러나 현실의 노동시간 단축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노자간의 모든 대립투쟁이 그러하듯, 노자 양쪽의 세력관계 즉 힘 관계에 크게 의존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것의 정도는 그 나라 노자간의 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노자간의 힘 관계에 의한다는 것은 선발/선진 자본주의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 우리 나라에서 노동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우리 나라, 즉 현대 한국 자본주의는 그 동안 자본의 세계시장 확보 경쟁을 자본측이 따라잡고 심지어 그것을 능가하기 위해 선발 자본주의 타국에 비해 엄청나게 속도를 더하여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그것을 위해 노동자계급을 억압하여 왔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바로 노동자계급을 얼마나 신속하게 이용하여 거대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가에 의하여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 우리 나라 노동자계급이 급속도로 자신의 계급적인 역량을 자본에게 저당잡히고 살아온 것이다. –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요구할 노동시간 단축의 기준 선은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100여 년에 걸친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요구인 1990년대 후반기 이후의 ‘1주 35시간’ 보다도 더 단축되어야 할 것이다. 전반적인 우리 나라 노동자계급의 상대적 과잉인구화 결과에 비추어 현 시기에 주당 30시간 미만, 1일 7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따라서 매우 정당하다.
4.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둘러싼 문제점과 쟁점들 (1) 현 시기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과 의의는 첫째로,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의 생활조건 개선에서 찾아질 수 있다. 오늘날은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세계적으로 한편에서는 자본의 과잉축적이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누적이 심화되어 부의 양극화가 전면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을 방어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과제가 되어 있다. – 이런 때 노동시간의 단축은 자본측의 논리와는 정반대의 맥락에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과 민주적 권리를 확보해 나가는 하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 점은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에서 현 시기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은 이처럼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 – 둘째로, 같은 맥락이지만, 현 단계에서 자본논리 일변도로 전개되고 있는 사회의 재구조화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필요성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지금까지 축적된 ‘사회적 부’ 내지는 생산력발전의 성과를 재분배하는 과정에 위치한다.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그런 맥락에서 전개하는 것은 자본의 ‘경쟁의 원리’에 의한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의 원리’에 의거하는 사회로의 진보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현단계에서 자본측은 전면적인 유연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정부는 그러한 자본측의 논리를 소위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 논리를 통하여 옹호할 뿐 아니라 노동정책 및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수용하고 있는 상태이다.
(2)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역시 노동자계급과 자본측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쪽은 단축하자는 것이고 자본측은 단축반대를 기조로 한다. 자본측은 일견 “검토하자”는 입장을 내고는 있으나 단축반대기조가 폐기된 것은 아니다. 핵심쟁점은 임금과 이윤문제이다. 적용대상과 범위 및 적용시기 등도 문제가 되고 있으나 그것도 결국은 임금을 적게 줌으로써 이윤을 늘리고자 하는 자본측과 임금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노동자쪽 논리가 쟁점들의 배경이다.
(3) 노동시간 단축은 전국적/전산업적으로 동시에 적용되는 방향에서 일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요컨대 전국/전산업을 포괄하는 법정노동시간의 단축과 함께 그 적용범위 및 시기가 통일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방식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자본측의 유연화 논리로 귀착됨으로써 노동조건의 저하, 나아가서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의 피폐화로 이어지는 악순환고리를 끊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별 또는 부문별로 시차를 두거나 기업규모별로 시차를 두는 등의 차등 적용은 그 동안 자본측이 노동조건을 저하시킬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정부는 연간 단위의 노동시간 단축을 적용범위와 시기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본이 현시기에 요구하고 있는 노동시간’유연화’와 임금’절감’이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핵심목표임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 연간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시간기획에서 사용자에게 더 높은 수준에서 더 많은 유연성과 재량권을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측은 기준노동시간을 1일 노동시간보다는 주당 노동시간을, 주당 노동시간보다는 월간 노동시간을, 월간 노동시간보다는 년간 노동시간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본측의 재량권, 즉 이윤의 근원이 되는 부불노동시간 즉 잉여노동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연간 단위로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자본측을 시간유연화를 추구할 가능성을 한껏 높여놓는 하나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4) 노동시간의 단축은 기본적으로 그 동안 축적된 사회적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노동자와 민중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그 생존권을 보장할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의 야만적인 경쟁의 원리를 노동자계급의 연대와 단결의 원리로 대체시켜야 한다. – 축적된 사회적 부를 사회화시키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현 시기의 생산력 수준에 맞는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인상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거기에 소요될 재원은 국가가 조성하여 충당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의 근거는 민주노총 등 노동자 운동에서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시간 노동’인데 그 원인이 되는 점들을 내용상으로 상당히 호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장시간 노동의 큰 원인 중 하나인 초과노동시간 문제에 대해 시간외 노동 상한을 낮추거나 휴일 휴가 사용을 의무화한다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면서 일체 임금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지만, 그 내용은 실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시키면서 자본측의 임금부담을 경감시키는 방안이다. 그럼으로써 정부는 기실 자본측의 임금삭감 논리를 수용하고 있는데, 그 점을 중립자적 외양을 통해 숨기고 있다. 정부가 초과노동시간 등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노사양측 모두의 책임이라면서 자신들은 마치 중립적인 제3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장시간 노동이 원천적으로 인건비를 줄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본측에 의하여 주어진 문제라는 점을 은폐하면서 자본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5)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노동시간의 양적인 길이뿐 아니라 질적인 길이도 줄여야 한다. 노동시간의 질적인 길이는 노동강도를 말한다. 만일 노동시간이 하루 8시간에서 하루 7시간으로 단축된다고 할 때 그와 동시에 노동강도가 대폭 강화되게 되면 노동시간의 실질적인 단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동강도의 강화는 단위 시간당 노동자의 노동력 지출이 더 늘어나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노동시간의 양적인 길이가 줄었어도 새로운 노동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력 지출은 짧아진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이루어져서 노동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노동자 건강을 훼손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면 소위 말하는 고용창출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기존의 일감을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새로운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강화시킴으로써 기존의 노동자로 커버해버리기 때문이다. – 중단기적으로 본다면 우리 나라 현실에서 일차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실업해소와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이 그것이다. 이 둘은 하나로 통합되는데, 한국사회 현재의 일하는 사람들 전체의 노동조건 개선이 그것이다. 물으나마나 대량실업과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자 전체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객관적인 조건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을 위해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논리가 제출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주제를 가지고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정당성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노동자가 추구할 목표라고 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 자체가 형용모순이거나 정부의 논리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의미는 이미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 강화논리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 논리에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에 대하여 ‘인원감축형 구조조정’으로 규정하고 이를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더 문제는 그러한 정부의 논리에 들어있는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논리이다. 정부는 노동시장이 한껏 유연해져야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고용창출형 구조조정’ 주장은 이런 의미에서 자본의 ‘유연화’ 전략에 대한 아무런 대응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그러한 유연화 전략으로 인하여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하방이동하고, 또한 세계적인 자본간 경쟁에서 한국자본이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여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하여 판매처를 대폭 확장함과 동시에 거기에 내다 팔 상품의 생산지를 한국으로 해서 국내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해야만 달성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은 전세계적으로 격화된 자본간 시장쟁탈전 속에서 국내 독점자본이 국내 노동조건보다 더 낮은 비용만 있으면 되는 다른 나라로 생산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관철될 때만 주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지금 조건에서 그런 불확실한 가능성을 점 쳐서 노동자계급에게 현재의 실업사태나 급속한 비정규직화를 감내하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 지난 3년 동안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자본측의 경쟁력우선 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의 맥락에서 제출되는 노동시간 단축 주장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일차 관심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일차관심이 되어 있는 점이 결정적으로 정부 및 자본측과 같은 맥락에 서 있는 점을 역으로 증명시켜주고 있다.
(6) 노동시간의 단축의 결과는 1인당 1일 노동시간이 실질적으로 짧아지는 것이어야 한다. 각자가 자신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또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는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고루 혜택을 주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정규직까지 포괄하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동반상승되는 조건이 충족될 때 노동시간 단축은 비로소 그 의의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6-1) 노동시간 단축은 첫째로, 노동자와 민중의 필요노동시간, 즉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생활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고용노동자의 노동을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경감시키고 상대적 과잉인구로 일자리 주변을 배회하면서 노동자간 구직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지위로 떨어져 있는 실업·반실업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의미한다. (6-2) 둘째로, 자본의 이윤추구 논리에 의하여 다종다양하게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 내부의 각종 차별 근절과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6-3) 셋째로, 사회적으로 타인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불로소득자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노동의 보편화가 가능해지며 동시에 노동에 대한 자본의 독재를 종식시킬 수 있다.
5. 우리의 과제 (1) 현재는 무엇보다도 전 사회적인 프로그램으로서 사회구조 자체에 대한 변혁 노력이 가시화되어야 할 때다. 그 기본은 부(富)의 사회적 축적 프로그램이어야 할 것이다. 거기서 핵심은 무엇보다도 생산력의 발전에 의하여 물적조건이 마련된 ‘노동자 1인당 노동의 경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생활임금 보장과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의 노동강도 및 생산성 수준에서 전반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노동자와 민중)이 실제로 최소한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 수준 정도를 보장 받으면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소득보장과 함께 노동시간의 실제로 대폭 단축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2) 전 산업에 걸쳐 상대적 과잉인구가 확대되고 있는 이 현실에서 노동시간은 30시간 이하로 일률적으로 단축되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가 불변인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편·공통적으로 그 사회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3) 이러한 사회적 프로그램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제정책 기조가 변경될 수 있도록 노동자·민중의 총의를 담은 사회적 압박이 조직되지 않으면 안된다.
(4) 우선,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과 그 요구가 지향하는 목표 자체가 경제위기 재발 가능성을 걸고 나오는 자본측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므로, 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응전선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 법제화 논의는 노사정위원회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다. :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대응 지침이 수립되어야 한다. – 2000년 7월 정부 쪽에서 발표된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보고서(노동부의 한국노동연구원 용역 보고서)에서부터 2000년 11월 민주노총이 주최한 정책토론회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논의지형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맥락에서 그다지 벗어나 있지 않다. 즉 구조조정 반대투쟁 맥락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 노동시간 단축이 만일 자본측이 필요로 하는 노동자의 시간’유연화’와 임금’절감’으로 귀결될 것이라면 노동조건 악화는 필연이고 따라서 노동자의 요구가 될 수 없다. – 정부 및 자본측의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정책 방향은 무엇보다도 노동시간을 노동시장 유연화 및 구조조정과 연계시킴으로써 구조조정 반대투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자본의 경쟁력 논리에 재편입시키려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 더욱이 노동시간 단축이 단계적으로 실시될 경우 그러한 노동시간 단축의 1차적인 혜택을 받을 공산이 큰 대규모 혹은 공공부문 사업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을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및 비정규직 노동자와 지금보다 더 분할시킬 것이다. 노동자 상층에 귀족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같은 노동자를 지배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본측에게 가장 효율적인 노사관계 전략이 된다는 것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도되고 있는 자본의 지배전략이다. 자본측의 이러한 전략이 결국은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술책들이 지속되는 기간 동안에 노동자계급을 동요시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분명한 이상 이에 맞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다. : 자본측의 이러한 술책들의 당연한 결과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양극화 심화이고 현재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 운동의 관료화와 왜소화, 그로 인한 노동조건의 전반적 악화이다. 그럼으로써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추진된 노동시간 단축이 오히려 전체 노동자계급 차원에서 보면 전반적인 노동조건 하락을 초래하고,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로 강조되고 있는 ‘삶의 질 향상’ 등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보다 결정적으로는 노동자간 연대의 가능성이 그로 인해 차단된다는 점이 핵심적으로 문제이다. 이점을 옳게 보고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전망을 미래 사회로 더욱 확대시키는 방향을 잡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5)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투쟁의 맥락에서 정확하게 배치될 필요가 있고 그런 운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여야 한다. : 노동시간 단축이 의미가 있으려면 여전히 실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는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노동과 삶의 조건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실질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자본의 위기 논리 및 경쟁력강화 목표와는 무관하게, 오히려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삶의 현실을 주체적으로 타개해 나가고자 하는 운동이다.
(6) 노동자계급운동이 검토할 첫 번째 과제는 현시기 ‘구조조정’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 대중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올 연초 3대 과제의 하나로 법정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하고, 연간 2000시간 노동 쟁취와 휴일·휴가 확대를 요구하면서 그 목표와 관련하여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축소를 통한 삶의 질 확보’와 ‘사람 자르기식 구조조정에서 고용창출(유지형)·민주적 구조조정'([민주노총 3대 요구안 해설], 2000.3)을 위해서 라고 제시한 바 있다. – ‘삶의 질 확보’는 그렇다고 해도 ‘고용창출(유지형)·민주적 구조조정’을 위해서 라는 것은 삶의 질 확보조차 담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현시기에 노동자계급에게 요구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 혹은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게 된다. 구조조정의 계급적 성격 자체가 이미 민주적일 수 없는 그리고 고용창출 혹은 고용유지적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민주적 구조조정’ 혹은 ‘고용창출(유지형) 구조조정’은 그 말들 자체가 현 시기 형용모순이다. ‘민주적 구조조정’ 혹은 ‘고용창출(유지형) 구조조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정책적 대안의식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주체가 노동자계급이 되었을 경우에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자본간 경쟁이 국경을 넘어 극도로 격화되어 있는 현시기의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이미 ‘사람 자르기’를 자기논리로 전제하여 정리해고제와 변형시간제 및 파견노동제 등을 기초로 진행되고 있다. 만일 ‘민주적 구조조정’을 목표로 해야 한다면 정리해고제와 변형시간제 및 파견노동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들이 우선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법제도적인 장치들을 폐지해 나가는 연장선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노동시간 단축은 ‘민주적 구조조정’이건 무슨무슨 구조조정이건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민중의 삶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오히려 현시기의 구조조정 그 자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반대투쟁인 것이다. – 노동자계급이 노동자와 민중의 삶 자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투쟁함으로써 국가와 자본이 구조조정의 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은 현시기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핵심 목표이다.
(7)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 및 목표와 관련하여 노동자계급운동이 고려할 또 하나의 핵심 지점은 변형노동시간제 문제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만일 주40시간 노동을 확보하고자 할 경우, 1일 8시간, 주 5일 근무제 등으로 1일 노동시간 개념을 명시하여 주장하여야 한다. : 1일 노동시간의 개념을 버리고 주당 노동시간 내지는 연간 노동시간을 앞세우는 것은 각종의 변형노동시간제를 채택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삶과는 무관하게 생산성을 추구하는 자본의 ‘노동력 유연화’ 그 중에서도 노동시간 유연화를 용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노동자와 민중의 삶의 조건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본측에 귀속되는 잉여노동의 비대화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 지금 시기에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의 단순한 길이를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 1인당 노동의 경감이다. 이를 위해서는 1일 노동시간 규정을 엄격화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이 변형노동시간제로 인하여 훼손될 수 없도록 강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8) 세 번째로,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 그리고 뿐만 아니라 비고용 노동자까지도 포괄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 향상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 현재까지는 생산력 발전의 성과가 오로지 자본측 일방으로 귀속되고 있고 그 결과 사회적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왔다. 사회적 생산력 발전의 결과가 자본측 일방으로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생활임금의 보장을 통하여 노동자와 민중에게 귀속되는 통로를 형성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관계를 모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 과잉축적 모순의 심화에 따라 자본측의 자본축적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노동자계급에게 끊임없이 유동화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 : 자본측이 조직되지 않은 부문이나 비고용노동자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된 부문이나 고용노동자 혹은 정규직 노동자를 끊임없이 분할하고 노동자간 구직경쟁을 조장하면서 생산성과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조직된 노동자 내지는 대규모 혹은 공공부문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귀착되는 운동으로 왜소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방향에서 ‘단계적’ 적용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요컨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실질적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삶이 윤택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생산력 발전의 성과가 전체 노동자 1인당 노동 양의 경감을 통하여 사회화되는 과정으로서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 비정규직 노동자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구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정치적 조직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있는 중이다. 지금 현재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일 일정한 사업장에 밀집되어 있거나 일정한 지역에 상시적으로 밀집되어 있는 경우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는 지속성과 조직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업종과 지역을 넘나들며 일하고 있는 경우는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경우는 다른 방식의 조직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비정규직의 정치적 조직화라는 것은 어떤 내용과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우선 전국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이들의 상시적인 만남과 오고감이 보장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냄으로써 노동조합적 성격 중 노동력 공급의 조절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측면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정규직에 준하는 일정한 노동 기준을 정하고 그 이하의 경우 집단적으로 노동력 공급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조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 높은 수준은 정치적 조직화이다. 노동조합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 결사체로서 조직화되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역적 유동성과 사업장 유동성을 고려할 때 고정적인 교섭상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객관적 조건을 정치적 결사로 뛰어 넘을 수 있는 방안이다.
(9)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전국적, 국가적 수준의 운동이다. 이를 단위 사업장의 투쟁으로 환원시켜서 오해하는 사례가 빈번한데, 그 자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 실제 단위 사업장에서도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필요하다. 그러나 단위사업장 투쟁이 전국적인 공동연대와 공동요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 사업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쟁취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하여 왜곡되고 변질되어 전체 노동자계급을 우려먹는 데 하나의 샘플로 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투쟁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업장에서부터 투쟁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전국적인 전체 노동자계급의 성과로 남게 할 때 그 투쟁의 성과가 자본측의 손아귀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당장 투쟁하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이 안고 있는 조건을 아우르는 전망을 갖는 것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단위사업장 차원에 가두지 않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해방투쟁 전망으로 이어나가는 지름길이다. – 개별 자본은 자본간 경쟁의 고리 속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따라서 개별 사업장에서 노동시간투쟁을 벌여 승리한다손 치더라도 그 결과가 자연적으로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망상이다. 특정한 몇 곳에서 어떤 개별자본이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개별자본이 그와 같은 조치를 통하여 특별 이윤을 얻을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까지만 유지될 것이다. – 거꾸로 말하면, 투쟁력을 가진 특정한 사업장에서 만일 노동시간 단축투쟁에 노동자측이 승리하여 자본의 양보를 쟁취하였을 경우, 그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거기에 안주하여 생산성에 협조하거나 노동강도의 강화를 묵과하거나 여타 다른 노동조건 개악을 허용하거나 해서는 결코 안되며, 또한 그러한 것들을 전제로 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투쟁을 조직해서는 안된다. 단위 사업장에서의 투쟁은 이와 같은 자본측과의 일대일 접점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만큼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만일 성공했을 경우, 그 성과를 전국적인 수준에서 엄호하고 이를 기준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하여 노동조건 개선투쟁을 전국적으로 조직해 나가고 전개해 나가는 것, 그리고 거기에 해당 사업장 바깥의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것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 이와 같은 점 때문에 단위사업장 차원이나, 일부 업종 혹은 산별, 규모별로 제한하여 단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모색되거나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방식이 아니라 거꾸로 노동자계급의 힘에 밀릴 때 자본측이 취하는 상투적인 대응이자 그들의 정치적인 대응책이 되는 것이다. – 따라서, 실질적으로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공정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아래 제기되는 것은 단계적/순차적인 것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9-1) 실업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투쟁 조직화 – 노동시간 단축의 결과가 노동자 1인당 노동시간의 경감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단축되는 노동시간이 실업한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시간으로 균등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이 실업자의 노동권 확보 투쟁과 같은 맥락임을 말해준다. – 실업노동자에게 절실한 노동권 확보투쟁은 실업노동자의 생존권투쟁이다. 현 시기의 실업문제는 고용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과 과밀노동을 강제받고 있는 반면, 대량의 실업/반실업 인구가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 실업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는 위와 같은 구조를 풀어내는 전망 속에 존재한다. 현재와 같이 자본측이 의도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노동시간에 대한 자본측의 계획이라고 하겠다. 자본측은 노동자계급의 요구와는 상관 없이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폭력적으로 노동자들로부터 노동할 시간을 기획할 자유를 빼앗아 가고 있다. 노동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완전실업자와 노동시간을 일부밖에 확보하지 못하거나 자본에 의해 언제라도 하릴 없이 쫓겨날 수밖에 없는 무권리한 상태의 반실업자로 구성된 “자본에 상대적으로 과잉인” 상대적 과잉인구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 안정적 고용 노동자층, 양쪽 노동자층이 모두 자본측에 의한 노동시간을 둘러싼 독재에 의해 좌충우돌하고 있다. 한쪽은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지금의 노동시간을 박탈 당할까 두려워한다. 이것이 이른바 현실의 고용 문제이자 실업문제이다. 모두 다 임금 즉 생계비를 매개로 하여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실업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는 현시기에 사회적으로 평균 정도의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수준의 확보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고용노동자의 과밀노동이 해소됨과 동시에 이들의 사회적 평균 수준의 생활 수준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 실업/반실업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는 또한 또다른 실업노동자 양산을 전제로 하여 확보되어서는 안된다. – 실업/반실업 노동자가 노동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그 노동시간만으로도 평균적 생활수준이 보장될 수 있게 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안으로서 사회적으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새로운 사회 목표와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 – 노동자계급의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이 점에서 전계급적인 시야를 가지고 추진되어야 할 과제임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9-2)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개선 투쟁 조직 – 실업자의 노동권 및 생존권 확보가 절실한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현상으로 볼 때는 실업자보다야 비정규직이라도 일하고 있는 경우가 더 낫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실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그 노동생활에서의 지위와 조건으로 볼 때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고 이들을 포괄하여 반실업인구라고 칭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실업과 고용의 경계선에서 유동하고 있다. 이들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포함한 반실업 노동자 층의 노동권 및 생존권 문제는 근본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다. –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통한 노동조건 개선투쟁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것이 노동조합의 울타리로 가두어져서는 곤란하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실업자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역시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다. 즉 실업자와 비정규직은 자본에의 속박/종속성이 정규직에 비해 훨씬 적은 것이다. 이 상황이 지금은 물질적인 생활자료를 획득할 소득을 확보하는 데서 불리한 위치라는 점 때문에 비정규직 및 실업자를 자본측에게 더욱 더 종속되게 만들고 있지만, 동시에 그 점이 자본측의 의도와 상관 없이 노동자계급의 비제도적인/비국가적인 새로운 전망을 세워나가는 데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 점은 비정규직 내지는 실업자의 조직화 문제에서, 노동조합적 틀에 한정하거나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9-3)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악 저지 – 실업/반실업 상태의 상대적 과잉인구가 사회적으로 많이 쌓여 있을수록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지위 역시 압박을 받는다. 자본측은 이를 이용하여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과밀노동으로 몰아넣고 있다. 비정규직이 더욱 시달리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으나, 정규직 역시 그러한 시달림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 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악과 관련한 모든 시도에 대해서 저지해야 하고, 정규직의 경우 오히려 노동조건을 더욱 더 개선시킴으로써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이 동반상승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 일부에서는 노동자간 노동조건 격차에 대해 우려를 하면서 마치 그 격차의 주범이 정규직 혹은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처럼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주객 전도이다. 이를테면, 정규직도 자신의 노동조건을 방어하지 못한다면 비정규직은 어떻게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대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중소영세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겠는가? – 문제는 정규직이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잘 조직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투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노동자간 분할 상황을 구조화시켜서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영원히 단물을 빼먹으려고 기도하고 있는 자본측에 있다. 어느 쪽을 목표로 하여 문제제기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본을 잊고 정규직 및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화살을 겨누는 문제제기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9-4) 국가의 경제/노동 정책이 갖는 반노동자성 폭로와 노동시장유연화 법제도 철폐투쟁 조직 – 노동시간 단축투쟁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올바로 구현하고 자본측이 그것에 강제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면 자본측이 1987년 이전으로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으려 하고 있는 갖가지 시도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 없이는 모래 위에 집짓기밖에 안될 수 있다. – 정부와 자본측은 현재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올해안에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겠다는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데,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 및 구조조정은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연장선임을 분명히 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 현재 추진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의 정부쪽 안은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형식적으로 밖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형식을 먼저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 노동시간 단축법을 자본측이 무기로 삼아서 “노동시장 유연화”의 핵심 도구로 삼는 일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의도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기 위한 그들의 포석이 될 가능성과 거기에 관련된 요소들을 끄집어 내어 그 점을 명백하게 폭로하고, 아울러 정리해고제/변형근로시간제/파견노동 등 “노동시장 유연화” 관련한 법/제도 철폐투쟁을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10) 노동시간단축의 의의는 ‘일하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필요노동시간을 보장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는 것’에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그것이 노동자계급운동의 조직적 강화로 귀결될 수 있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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