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하여 2000년엔 주5일근무를!

(3)주40시간노동의 현장을 가다

“마음의 여유·생각의 자유” ‘살맛’이 묻어난다

올해 4월 대우캐리어노조는 15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주42시간의 협약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대우캐리어노조의 노동시간단축은 임금삭감 없는 주5일근무제 도입, 기본급 2%를 포함한 임금인상 등 여러모로 언론과 노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전라도 광주에 있는 대우캐리어 현장을 찾은 때는 11월12일 점심시간. 위원장 보궐선거로 약간 어수선했지만 여느 제조업 공장과 마찬가지로 식사를 먼저 끝낸 조합원들은 족구로, 담소로 짧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계절상품인 에어콘을 생산하는 대우캐리어의 11월은 비수기 막바지를 지나고 있었다.

주5일근무는 노동자들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에어콘 생산부에서 일하는 윤중식(30)씨는 “아빠가 애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집사람이 몹시 좋아한다”며 “나 자신도 가정생활에 충실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같은 부서에 일하는 김세곤(29)씨는 “애인이 일하고 있는 백화점에 비하면 주40시간 근무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강조한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게 가장 좋은 점이라는 윤씨는 현재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다.

조합원들은 주5일근무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여가시간 확대’라고 입을 모았다. 격주휴무제를 실시하던 이전과 달리 ‘토요일 근무’라는 강박관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금요일은 잔업이 없는 날이다. 시스템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홍용선(27) 대의원은 “금요일 저녁시간을 활용해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고 여가와 휴식을 훨씬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며 생활상의 변화를 전한다. 휴가를 내지 않고도 토요일에 관공서 잡무 등을 처리할 수 있어 월차휴가를 ‘휴가’답게 쓸 수 있는 것은 조그만 덤이다.

잔업·특근을 포함하는 초과근로시간은 늘지도 줄지도 않은 듯했다. 에어콘 생산부에서 일하는 조진수(34)씨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있는 잔업은 보통 하루 3시간이고 토요일 특근의 경우 생산물량에 따라 불규칙하기 때문에 초과근로시간은 이전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주5일근무제 실시 이후 금요일 잔업이 없어졌고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한 달에 1~2회 토요일 특근을 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월평균 50시간 가량의 초과근로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단위시간당 임금상승효과를 제외하면 조합원의 손에 떨어지는 월급봉투의 두께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노동강도의 변화나 고용효과 역시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 노조 손재현(29)조직2부장은 “IMF 이후 사회적으로 고조됐던 고용불안을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미리 방지했다는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우캐리어노조가 올해 민주노총 소속 제조업사업장으로는 유일하게 주5일근무제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탄탄한 현장투쟁력이 밑바탕이 됐다. 시스템 공장에서 일하는 이경묵(27)씨는 “올초 부서장이 임의로 20명을 전환배치하자 조합원들은 3일간 부서파업을 벌여 회사쪽의 항복을 받아냈다”며 조합원들의 단결력을 강조했다.

노조가 임단협 시작전부터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조합원교육을 꾸준히 실시한 결과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70%이상의 조합원들이 주40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노조가 회사쪽에 노동시간 단축을 쟁점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임단협 당시 교섭위원이었던 박석근(35)씨는 “회사쪽이 교섭과정에서 먼저 주41시간안을 낼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대우캐리어에 75% 지분을 갖고 있는 다국적기업 캐리어의 특성도 좋은 조건으로 작용했다.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캐리어공장은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어 경영진이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거부감이 덜했다는 분석이다.

대우캐리어 조합원들은 주5일근무제 쟁취를 분명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노동시간단축의 효과를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박석근씨는 노동시간단축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으로 비정규직(용역직) 제도를 꼽았다. 노동시간단축이 확실히 추가고용효과가 있지만 추가고용분의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우캐리어는 8백명을 고용하고 있고, 계절에 따라 최소 1백50명에서 최고 6백명의 노동자를 사내하청업체를 통해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최소 1백5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시고용상태에 있었다. 정규직 임금의 50~60%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심각한 고용불안상태에 놓여 있으면서 추가고용을 막는 완충지대로 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초과근로를 하지 않으면 생활임금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손재현부장은 “평일 2~3시간, 토요일 특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5일근무제가 노동자를 더 자유롭게 하고 자아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조진수씨의 경험담에서 ‘사는 맛’이 묻어났다.

“주5일근무 실시로 무엇보다 마음이 여유롭다. 생각이 먼저 자유로워진다”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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