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면목은 그 사회의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의 평균치가 아니 다. 진실은 그 사회의 어두운 곳에 있다. 따라서 어두운 곳을 보 면 그 사회의 전체를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사회는 총체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어둠을 억누르고서 나타나는 밝음은 꾸며 댄 밝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강사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오늘 한국 대학의 현주소는 바로 대학강사들의 존재조건 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일용잡급직’
사람들은 대학강사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지 모른다. 바로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대학강사 문제는 우리 대학의 처음과 끝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대학교육의 거의 반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은 대학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 법적으로는 교직원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용잡급직’인 이들이 받는 강사료는 일주일 세시간 해도 한달 25만원 남짓하다. 네 강좌를 맡아도 월 100만원 정도 수입밖에 얻을 수 없으며, 그나마도 방학에는 실직 상태에 들어간다. 대학으로 부터는 의료보험이나 예비군 훈련 등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으며 변변한 휴게실과 우편함조차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대학의 이방인인 이들은 오늘도 이 대학 저 대학, 서울에서
두시간 심지어 네시간까지 걸리는 대학을 찾아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지만, 교수의 문은 점점 좁아 보이기만 한다. 그나 마 전임교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강의갈 때마다 인사차 들
르기 라도 해야 하고, 튀는 자로 낙인 찍히지 않기 위해 말조심 행동거 지 조심해야 한다. 교육부나 학술진흥재단에서 발주하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는 교수들의 독차지이다.
대학강사는 부실덩어리 대학을 떠받쳐주고 있는 기둥이다. 아무런 소속감을 갖지 않은 강사들이 성의와 책임감을 갖고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강사 의존도가 높을수록 대학교육 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한국 대학은 교수직을 특권화하면서 그 비용을 강사들에 대한 착취로 충당하고 있는 것 은 아닌가라고 생각되기까지 한다.
일단 교수가 되면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논리와 현실은 강사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를 암암리에 정당화해 주기도 한다. 한창 정열적으로 연구해야 할 30대, 40대 초반의
대학강사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느라 본격적인 연구활동은 엄두도 못 낸다. 그저 교수들이 발주한 프로젝트의 하청업자 역할이나 하는 것도 감지덕지해야 할 지경이 다. 결국 이 거대한 모순덩어리는 교수들의 묵인, 학생들의 무관심, 당사자들의 무력감에 의해 조장, 유지되고 있다.
지난 1월 교육부는 시간강사 채용시 신원진술서를 받고, 이 내용 을 경찰청을 통해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거야말로 어불성 설이 아닌가? 언제 교육부가 강사들을 교직원, 교육자 대접했다고 이렇듯 신원조회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만약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채용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다면 강사들의 좌절감은 지금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교육부와 학술진흥재단은 박사학위 뒤 미취업 학자들에게도 각종 연구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도 학위취득자 등 전문가
들을 채용하 자는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내놓은 ‘교육발 전 5개년 계획’안에는 대학강사 문제의 해결안이 언급돼 있지 않다. ‘연구중심대학안’도 좋고, 인문 사회분야 집중 육성안도 좋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를 가장 의욕적이고 활발하게 추진할 수 있는 수많은 신진학자들이 실의와 생활고에 신음하고 있는 이 현 실 속에서 어떻게 참신하고 창의적인 연구 성과가 쏟아지기를 기 대할 수 있을 것인가? 운좋게 대학에 자리잡은 사람들만이 그러한 연구를 수행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일까? 지금의 대학강사들은 능력이 없어서 그러한 연구활동을 할 처지에 있지 못하는가?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개혁
개혁의 성패는 청사진의 우수함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개혁은 고통받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어야 하고, 공적없이 기득 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몫을 나누는 것이어야 할 것
이다. 우선 강 사들을 대학교육의 주체로 대접해주고, 서너 강좌만 맡아도 최저의 생활은 할 수 있도록 강사에 대한 대우를 현실화해야 할 것이 며, 모든 면에서 교수와 강사의 경제
적, 사회적 거리를 좁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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