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플랫폼노동협약, ‘노동자냐 아니냐’ 넘어 권리 보장으로…국내 입법 방향 두고 쟁점

국제노동기구(ILO)가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최초의 국제협약을 채택하면서 국내 입법의 초점이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것인가’에서 ‘어떤 법으로, 어느 수준까지 보호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핵심 쟁점은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적용 대상으로 폭넓게 인정할지,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별도 범주로 보고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통해 최소한의 권리를 우선 보장할지다.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 보호체계가 노동법 사각지대를 메울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오히려 기존 노동법보다 낮은 권리를 제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더불어민주당 김주영·김태선·이용우 의원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은 2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ILO 플랫폼 노동 협약 채택 의미와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성근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공인노무사와 우지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노동자권리연구소 연구위원이 발제했다. 최영미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이창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고용노동부 노무제공자지원과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출처: 한국노총

지난 6월 12일 ILO 제114차 총회에서 채택된 제193호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은 찬성 406표, 반대 8표, 기권 36표를 받았다. 한국 정부도 협약 채택에 찬성했다.

협약은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플랫폼이 조직하거나 중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수나 대가를 받는 사람을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로 정의했다. 노동자, 노무제공자, 개인사업자라는 계약상 명칭과 무관하게 실제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협약이 보장하도록 한 권리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 △작업중지권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의 보호 △보수의 적시·전액 지급 △사회보장 △계정 정지와 계약 종료 제한 등이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통한 업무 배정·평가·제재에 대해서도 정보 제공과 설명, 재검토, 인간의 개입을 요구했다.

쟁점 1.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사각지대 메울까, 낮은 권리 고착할까

가장 큰 쟁점은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기본법)의 성격과 역할이다.

지성근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사람에게는 기존 노동법을 온전히 적용하되,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에게도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는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노동의 형태와 종속성 정도가 매우 다양한 만큼 모든 플랫폼 노동자를 곧바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간주하거나 근로기준법의 모든 조항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다. 근로기준법이 전통적인 고용관계를 바탕으로 설계된 만큼 일부 플랫폼 노동에는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규정도 있다는 설명이다. 지 노무사가 제시한 기본법은 기존 노동법을 대신하는 법이 아니라 보호의 가장 낮은 바닥에 설치하는 안전망이다. 기본법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개별법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권리를 추가하는 구조다.

반면 우지연 변호사는 기본법이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노동법에서 분리하는 장치로 작동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우 변호사는 협약의 목적이 모든 플랫폼 노동자에게 낮은 수준의 공통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노동을 온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노동법으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별도의 권리체계를 만들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야 할 노동자에게 더 낮은 수준의 보호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 변호사는 대법원이 타다 운전기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고, 서울고법이 배달 플랫폼 라이더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사례를 들었다. 법원이 이미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고려해 기존 노동법을 적용하고 있는데도 입법이 플랫폼 노동자를 별도 범주로 분리하면 사법부가 인정한 권리보다 보호 수준이 후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쟁점 2. 플랫폼 노동자를 누가 근로자로 입증해야 하나

두 번째 쟁점은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과 입증책임이다.

협약 제9조는 계약서의 명칭보다 실제 노무제공과 보수 지급 관계를 우선해 고용상 지위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른바 ‘사실 우선의 원칙’이다.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와 개인사업자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실제로 일감을 배정하고, 보수를 정하며, 노동 수행을 평가하고, 계정을 정지할 권한을 행사한다면 고용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성근 노무사는 플랫폼 노동에서는 관리자 개인의 직접 지시가 알고리즘을 통한 통제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노동자가 출근 시간이나 일감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여도 플랫폼이 배차 승인, 평가, 보상, 일감 접근권을 통제한다면 실질적인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 노무사는 근로자성 판단에서 인적 종속성뿐 아니라 경제적 종속성과 알고리즘 통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노동자가 근로자임을 입증하는 현재 구조를 바꿔 플랫폼 기업이 해당 노동자가 독립된 자영업자라는 점을 입증하도록 하는 근로자 추정제를 제안했다.

우지연 변호사도 근로자 추정과 입증책임 전환, 근로감독 강화를 오분류 해소 수단으로 제시했다. 알고리즘과 배차·평가 자료를 플랫폼 기업이 독점한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근로자성을 입증하도록 하면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쟁점 3. 사용자는 플랫폼인가, 중간업체인가

세 번째 쟁점은 복수의 사업자가 관여하는 플랫폼 노동에서 사용자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플랫폼 운영사와 중개업체, 하청업체가 노동조건을 나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플랫폼은 알고리즘과 계정을 관리하고, 중간업체는 운임과 수수료를 정하며, 다른 사업자가 계약이나 교육을 담당할 수 있다.

기존 근로기준법은 하나의 사용자가 노동조건 전반을 결정하는 전통적인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특정 기업이 모든 노동조건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느 기업도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는 책임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지성근 노무사는 기업별로 실제 행사하는 권한과 기능을 따져 사용자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임을 정한 사업자는 보수에 관한 책임을, 배차와 계정을 통제한 사업자는 노동기회와 계약 종료에 관한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우지연 변호사도 협약이 플랫폼 기업을 단순 중개자가 아니라 노동을 조직하고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협약 제24조가 플랫폼과 중간업체의 책임을 결정하고 배분하도록 한 것도 다단계 계약구조를 이용한 책임 회피를 막기 위한 장치라고 분석했다. 

결국 국내 입법은 형식상 계약 당사자만 사용자가 되는 기존 구조를 유지할지, 노동조건별 결정 권한을 기준으로 복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쟁점 4. 알고리즘은 영업비밀인가, 노동조건인가

알고리즘 규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알고리즘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일감을 배정하고, 소득을 결정하며, 노동강도와 계정 유지 여부까지 좌우하는 노동관리 수단이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과 평가·제재 기준을 영업비밀로 보고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협약은 플랫폼이 알고리즘이나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해 노동을 감시·평가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과, 해당 시스템이 노동조건과 일할 기회에 미치는 영향을 노동자와 노동자대표에게 미리 알리도록 했다.

계정 정지나 보수 미지급, 일감 제한, 계약 종료 등 중대한 결정이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이뤄졌다면 노동자에게 서면으로 이유를 설명하고 재검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재검토에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이는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이 결정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알고리즘 관련 정보 제공을 개인의 알 권리에 그치지 않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대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가사노동 플랫폼이 노동자에게 어떤 일자리를 보여 주는지, 보수와 수수료를 어떻게 정하는지, 계정 정지 기준이 무엇인지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알고리즘이 노동조건과 일감 접근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알기 쉽게 설명하도록 하고, 부당한 계정 정지의 정당성은 기업이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도 "대리운전 플랫폼이 배차·평가·계정 정지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가 이의를 제기해도 설명이나 독립적인 재심사를 받기 어려운 만큼 알고리즘 투명성과 인간에 의한 재검토를 노동관계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쟁점 5. 최저임금을 근로자가 아닌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적용할까

보수와 최저임금 적용 범위도 쟁점이다.

협약은 모든 플랫폼 노동자에게 보수와 대가를 적시에 전액 지급하도록 했다. 고용관계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이상의 보수와 업무 수행에 든 비용의 보전을 보장하도록 했다. 협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 등 보호를 적용하는 방안을 회원국이 검토하도록 했다.

이는 국내 최저임금법이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적용 대상으로 삼는 구조와 충돌한다. 플랫폼 노동자의 소득을 임금으로 볼지 사업소득으로 볼지,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할지, 차량 유지비와 통신비·보험료 등을 보수에서 제외할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최영미 위원장은 "플랫폼 가사노동자의 보수가 교통비와 식대 등을 제외하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랫폼 노동자의 업무 비용을 보수와 분리해 실질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표준단가제도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배 위원장은 "대리운전 플랫폼이 운임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중개수수료와 프로그램 사용료, 우선배차료, 보험료 등을 공제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객이 지급한 팁에도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가상계좌에 쌓인 돈의 인출을 제한하는 사례가 있다며 협약의 보수 전액·적시 지급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려면 단순히 시간당 금액만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시간 산정, 비용 보전, 수수료 규제, 최저단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됐다.

쟁점 6. 계정 정지는 계약 관리인가, 사실상 해고인가

플랫폼 노동자의 계정 정지와 비활성화를 어떻게 규율할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플랫폼 기업은 계정 정지를 계약 위반에 따른 서비스 이용 제한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플랫폼에 소득 대부분을 의존하는 노동자에게 계정 정지는 일할 기회를 박탈하는 정직이나 해고와 같은 효과를 낸다.

협약 제17조는 차별적이거나 위법한 사유에 따른 계정 정지와 비활성화, 계약 종료를 금지하도록 했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노동자의 검색 순위나 배차 우선순위를 낮추는 이른바 ‘그림자 제재’도 사실상 일할 기회를 제한하는 조치로 규율할 수 있다는 해석이 제시됐다.

이창배 위원장은 "대리운전 노동자가 콜을 취소하지 않았거나 취소 책임이 없는데도 일정 시간 배차가 차단되고, 위험한 운행이나 목적지 변경을 거부하면 등급 하락과 계정 정지의 불이익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법이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을 대신할 수 없다"며 "플랫폼 노동자의 계정 정지를 기존 노동법상 해고·징계 규율과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말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