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집회에는 신세계이마트분회, 삼성코레노 노조추진위원회, 삼성해복투 등 삼성 관련 노동자들을 비롯해 이젠텍분회, 이주노조, 기륭전자분회, 민주노총 경기본부, 전해투 소속 노동자들과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 200여 명이 참석했다.
▲ 삼성 현관이 경찰과 용역 직원들로 막혀 있다./김용욱 기자 |
▲ 삼성 본관 앞으로 삼성에스원 세콤영업직 해고 노동자가 이동하자 이를 막아서는 삼성 경비원들/김용욱 기자 |
사상 최초 삼성 본관 앞 집회에 높은 관심
직원들을 동원해 관할 경찰서인 남대문경찰서에 상주하며 누구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내는 방식으로 사옥 앞마당을 철저히 통제해 온 삼성은, 이번에는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수 일간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여가며 '집회신고 작전'을 펼친 해고 노동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됐다.
남대문경찰서는 그동안 사측과 노동자측의 집회신고를 불허하거나 '민원실 소파에 먼저 앉아있는 사람', '자정에 두 번째 기둥에 먼저 도착한 사람', '회전문에 먼저 발을 들이민 사람'의 집회신고를 먼저 받는다는 둥 기준을 바꿔가며 노동자들의 집회신고를 받아주지 않아 삼성 측에 유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날 오전에도 삼성에스원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50여 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을 무리한 연행으로 통제해, 삼성과 경찰 측이 마지막까지 삼성 본관 앞에서의 집회를 무산시키려 시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 김용욱 기자 |
▲ 해고 노동자들은 삼성 본관 앞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얼굴을 본뜬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김용욱 기자 |
집회가 열린 삼성 본관은 3면이 경찰 버스로 단단히 에워싸여져 있었으며 정문 현관 앞은 100여 명의 경찰과 용역직원들이 열을 맞춰 배치돼 노동자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최초로 삼성 본관 앞에서 노동자들의 구호와 투쟁가요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를 지지하는 200여 명의 노동자들과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였다. 태평로를 지나는 시민들도 발길을 멈추고 집회 현장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반드시 돌아간다" 투쟁 결의 다져
정작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조합원들은 오전의 집단 연행 사태로 대다수가 참석하지 못한 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고된 우여곡절 끝에 삼성 본관 앞 집회가 성사된 만큼 해고 노동자들의 구호와 연설에 강한 결의가 엿보였다.
연설에 앞서 결의를 보이는 삭발식을 진행한 김오근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위원장은 "우리나라 경찰이 삼성의 발 아래 있다는 현실이 너무 한심스러워 시민들에게 이를 알리고 삼성 측에 우리의 투쟁 결의를 보이기 위해 삭발을 했다"며 "국가기관인 법제처에서 경찰청의 경비업법 위반 유권해석이 잘못됐다는 입장을 보인 만큼 반드시 원직복직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미정 민주노총 경기본부 부본부장은 "고객들의 가정을 '안전히 지켜드리겠다'며 영업했던 노동자들이 지금은 내 가정도 지키지 못하게 쫓겨나버렸다"며 "인도에 서 있었을 뿐인데 연행해버린 오늘 아침 경찰의 행위로, 삼성과 경찰이 한 통속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성토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아마도 이건희와 그 아들들은 죽는 날까지 배고픔을 모르고 거리에서 추위에 떨 일도 없을 것"이라며 "역사의 주인, 인간다움의 주인은 지금 이 거리에 있는 여러분"이라는 말로 삼성에스원 해고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해고 노동자의 자녀인 초등학교 3학년 조은빈 양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의 투쟁소식을 듣고 지난 17일부터 영등포구치소에서 단식 중인 김성환 삼성해복투 의장의 편지도 대독돼 주목을 받았다. 김오근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위원장의 고향 친구인 이상진 코오롱정투위 대표도 이들을 격려했다.
오후 5시 40분경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남대문 인근 삼성에스원 본사 빌딩 앞까지 행진을 벌이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는 다음달 2일에도 삼성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삼성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는 김오근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위원장/김용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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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권력' 삼성과 싸우는 이들 늘어난다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최초의 집회인만큼 삼성에 저항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 학생들이 발언대에 올라 '삼성 규탄'의 한 목소리를 냈다.
1998년에 구조조정 반대투쟁으로 해고된 삼성SDI 부산공장의 송수근 씨는 "2003년에 삼성해복투가 기나긴 단식투쟁을 벌였는데 또다시 삼성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도둑질했다"며 "삼성 앞에서 집회를 하기 위해 많은 소송을 벌였음에도 사측의 1년 짜리 집회신고로 한 번도 성사되지 못했는데, 오늘 삼성에스원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게 돼 정말 통쾌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송수근 씨는 "삼성과 싸우다 두 번 구속돼 2년 넘게 감옥에서 지내며 삼성으로부터의 유혹도 많았지만, 삼성에서 일자리를 도둑맞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는 이상, 에스원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싸움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1998년에 삼성생명에서 부당해고된 윤병목 씨는 "삼성은 98년에 삼성자동차의 경영손실을 삼성생명에서 만회해 보려고 많은 여성노동자, 육아출산휴직자, 장기근속자들을 압박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내몰았다"고 폭로하고 "법원소송만 5년을 해 보았지만 약자들이 아무리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법에 호소해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윤병목 씨는 "공교롭게도 98년 삼성생명 해고자도 1700명이고 삼성에스원도 1700명이더라"며 "삼성의 부당해고 역사는 되풀이돼선 안된다, 이 문제를 끝까지 양심껏 제기하겠다"고 밝혀 많은 박수를 받았다.
삼성에 LCD모니터를 전량 납품하는 삼성코레노 공장에서 해고된 노경진 씨도 연단에 올라 "월 4백억, 연간 4천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서 나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과 횟수까지 체크해 가며 악랄한 탄압을 하고 있다"며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사람들을 해고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알리며 본보기로 삼으라는 말도 안되는 현장에서 이에 저항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2005년 고려대학교에서 삼성으로부터 4백억 원을 기부받은 후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할 때, 이를 저지하는 시위를 주도하고 '출교' 처분을 받은 서범진 씨는 "삼성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가, 이건희에게는 노동탄압 박사, 부정부패 박사 학위가 어울린다"고 비판했다.
서범진 씨는 "1700명을 해고하고 돈으로 학위를 사고 X파일 사건을 일으키고 이번엔 경찰과 결탁하는 등 모두 이건희다운 짓"이라며 "이마트, 시사저널 등 삼성에 대항하는 투쟁들이 늘어나는 만큼 연대해서 오만한 삼성 자본을 심판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