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와 화물연대의 공동파업은 결국 불발에 그쳤다.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철도노조가 파업 유보를 선언하자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는 “국민들의 승리”라며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국민들의 승리일까.
엄길용 철도노조 위원장은 파업 유보 지침을 조합원에게 전하며 “앞으로 사측이 그 어떤 안을 내도 구조조정과 맞바꿀 수 없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번 철도 노사의 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1인 승무와 인력감축 등으로 대표되는 철도공사의 구조조정 방침이었다. 철도공사는 끝까지 “근로조건과 무관한 것”이라며 단체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삼척동자도 알 수 있듯 두 명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하는 것은 근로조건의 변화와 직결된다. 또한 이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 될 수밖에 없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5일, 부산역에서는 KTX 열차가 정면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1인 승무와 휴식 없는 심야노동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철도공사가 1일, 신형전기기관차에 1인 승무를 시범실시 한다며 “지난 74년부터 전동차를 시작으로 최근 개통한 KTX까지도 기관사 1인 승무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에 따른 안전사고는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자화자찬 한지 4일 만이었다.
▲ 부산역에서는 KTX 열차가 정면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1인 승무와 휴식 없는 심야노동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철도노조] |
밤샘 운전으로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와도 깨워줄 사람이 없는 1인 승무, 만성적인 피로누적으로 자칫 쓰러져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1인 승무, 그것은 근로조건의 변화는 물론이며 국민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2001년 보고서에서 기관서가 실수를 저질러도 안전한 열차제어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1인 승무는 위험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것을 강행하겠다는 철도공사는 과연 이번 파업유보에 대해 “국민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민은 패배한 것이다. “국민의 발을 볼모로”라는 고정된 시나리오로 철도 파업을 ‘항상’ 불법으로 몰아넣기 바쁜 언론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패배이다.
건강한 노사문화를 원한다면 노조를 동등한 상대로 인식해야
이철 사장은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착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번 일로 건강한 노사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
철도공사는 철도노조-화물연대 공동파업을 앞두고 노조 측의 요구를 진지하게 들어보고 함께 대화하기 보다는 중노위가 쥐어준 ‘불법’이라는 카드에 목을 맸다. 이철 사장은 14일 기자회견에서 “불법파업으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며 파업에 참여한 모든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는 말을 하며,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물론 직권중재라는 정부까지 인정한 악법 중의 악법이 2개월 시한부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한 철도노조의 파업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딱 2개월 남은 악법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중노위가 딱 2개월 남은 직권중재의 목숨을 마치 수 천 년을 살 것처럼 살려놓은 것이 문제이지만, 철도공사 또한 직권중재가 악법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수순을 그대로 밟았다. 직권중재->불법파업->손해배상->노조파괴의 순서 말이다.
▲ 한국사회에서 건강한 노사문화는 불가능하다./참세상 자료사진 |
또한 철도공사는 철도노조의 찬반투표 직후부터 여론전에 집중했다. “역대 최저 찬성률”, “파업 참여 안하면 왕따”, “국민 78.8% 파업 반대”, “직원 19.4%만 파업 자발적 참여”, “철도퇴직원로 파업자제 호소”... 철도공사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교섭에 집중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갖지 않고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라며 “공사는 파업도 들어가기 전에 파업대오를 깨뜨리고 노조를 무력화하려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건강한 노사문화는 노동자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 교섭에서 철도공사는 철도노조를 함께 대화하고 중요한 문제를 함께 결정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지 않았다. 목숨 같은 일자리가 줄어줄고, 근로조건이 바뀌는 것에 대한 노조의 정당한 문제제기에 대해 철도공사는 그저 파괴할 대상으로만 대했던 것이다. 철도공사는 철도노조가 ‘파업유보’ 결정을 하자 “사실상 파업 철회”라고 일방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한 노사문화’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엄길용 철도노조 위원장은 “정면 돌파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해 투쟁을 다시 조직할 것”이라고 했다. 철도공사가 철도노조를 ‘파괴할 대상’으로 본다면 철도노조는 또 다시 파업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니 선택해야 한다.
‘건강한 노사문화’, 파업은 불법이라는 공식과 노조는 파괴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