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참여당 계 수장 넘어 당 대표 각인시켜

5차 전국운영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 리더쉽 확보...당 내분 일단 수습

유시민의 승부사 기질이 통합진보당에서도 통했다. 지난 1일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당무 중단 소식이 언론에 알려질 때만 해도 통합 3주체 간 계파 갈등으로 비화되는 듯했다. 결론은 4차 전국운영위까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던 전국운영위에 언론사들을 모아 흥행을 끌고, 당내 분란 소지를 봉합하는 것으로 났다.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던 차에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통합진보당 5차 전국운영위

통합진보당은 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 주재로 5차 전국운영위원회를 열고 총선 준비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현안을 결론지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불거진 현안들은 상당수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 계열의 패권주의나 민심과 이반된 결정과 관련이 있었다.

이날 5차 전국운영위원회는 한 달 여 동안 논란을 일으킨 ‘19대 총선출마를 위해 선출직 공직자가 사퇴한 지역의 보궐선거에 통합진보당은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는다’는 안건을 재석위원 38명 중 23명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중앙당 선관위 편파성과 소통부족 논란을 일으킨 백현종 중앙당 선거관리 위원장의 사퇴를 공론화하고, 공석이 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김승교 신임위원장을 만장일치로 인준했다.

선관위 소통부족과 공정성 논란의 핵심 중 하나였던 당내 후보선출을 위한 여론조사 방식으로는 ‘한나라당 대 야권단일후보 문안 질문 후, 야권단일후보 지지 응답자 대상으로 통합진보당 후보 적합도를 묻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선거 파행 사태까지 불러왔던 “울산 남구(갑) 지역에 대한 중앙선관위원회의 ‘재공고’결정은 무효로 한다”는 안건도 무난히 처리했다. 두 안건은 묶어서 재석위원 38명 중 28명의 찬성으로 원안이 통과됐다.

“유시민 반대편에 있을 때는 미웠는데, 같은 편 되니 든든”
...참여당 계 수장 아닌 통합진보당 대표로 각인되나


이날 5차 전국운영위에서 유시민 대표는 특유의 부드럽고 솔직한 발언과 돌파력으로 당내 대권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또 자신이 구 국민참여당이란 계파의 수장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대표임을 당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이정희, 심상정 대표와 함께 계파의 수장이 아닌 당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공동 리더십을 구축했다. 3인의 대표단들은 공동 발의한 안건들을 두고 찬성과 반대가 갈리자 차분하게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유시민 대표는 이전 전국운영위원회 때에도 이견이 나오면 중재안을 내며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5차 전국운영위가 끝나자 통합진보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유시민 대표가)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미워죽겠던데,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니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밀리고 있는 장기판에 '차(車)'가 하나 떡하니 들어온 느낌이다. 유시민이 진보한다기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반성을 요구했었는데, 나도 이 자리를 빌어 반성하자면 스스로는 돌아보지도 않고 내가 불만을 가졌던 집단에게 일방적 반성만을 요구했었다”(유시민, 그리고 참여당 동지들/ minbulhan)는 글이 올라왔다. 유시민 대표는 이 글에도 직접 위트 있는 댓글을 달고 당원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실명으로 싣고 한 계파의 수장을 넘어 당 전체 대표자스런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5차 전국운영위는 구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인 통합연대 3세력의 불안한 과도기 3인 대표 체제의 리더십을 안착화 시키는 모습을 국민과 당원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한 효과를 얻었다.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는 그동안 계속 인터넷으로 생중계 됐다.

특히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들의 패권주의적 행태에 반발한 구 국민참여당 쪽과 통합연대쪽 운영위원들이 발의한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은 후보 관련방침’ 이라는 민감한 안건을 두고 대표단이 철회를 얻어내 당 내분을 수습하는 리더십을 각인시켰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 대표는 스스로 구 참여당 계의 수장임을 드러내고, 다른 계열 위원들을 솔직하게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전국운영위는 공동대표단이 리더십을 확보해가는 과정이었다”며 “당원들은 대표단을 각 계파의 대표가 아닌 당의 3인 대표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가장 하지 않는 지역이 후보조정결과로만 보면 경기와 울산이었다. 그런 아쉬움을 표결로 표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 민노당 당권파 반대하는 비주류 연합 드러내

5차 전국운영위는 4월 총선까지 과도기 체제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낼 대표단의 리더십 구축뿐만 아니라 당내 세력 간 연합의 새로운 징후도 드러냈다. 이미 통합을 선언할 당시 전국운영위원회 구성과정에서 예견된 일이기는 하지만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 계열의 패권적 행태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5차 전국운영위에서 통과시킨 △보궐선거 지역 후보 불출마 건 △중앙당 선관위원장 승인 건 △예비경선 여론조사 방식 문구 조정 건 △울산 남구(갑) 중선관위 결정 무효 건 모두 당의 상식적 판단과 계파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안건이었다. 대부분 안건이 ‘구 민노당 당권파 대(對) 나머지 세력의 연합’ 구도로 논의가 전개됐다.

실제 구 참여당 계 위원들이 강력하게 요구했던 보궐선거 지역 시.도의원 후보 불출마 안건 원안은 38명 중 23명이 찬성했다. 이 안건은 지난 1월 15일 4차 전국운영위에서 상정돼 내부 논란이 격해지자 29명 중 16명의 찬성으로 안건이 반려 됐으나 5차에 다시 1호 안건으로 그대로 상정된 안이다. 20여 일 동안 각 계파를 대표하는 운영위원들 사이에 상당한 입장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참여당 계와 통합연대 계가 함께 요구했던 예비경선 여론조사 방식 문구 조정 건과 울산 남구(갑) 중선관위 결정 무효 안건은 38명 중 28명이 찬성했다. 이 두 안건은 같이 묶여서 발의됐기 때문에 복잡한 표심이 작동했지만 28명이 찬성했다는 것은 당권파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예비경선 여론조사 방식 문구 조정에 대한 중선관위 권고를 내리자는 수정안은 38명 중 10명만 찬성했고, 울산 남구(갑) 무효 안건 수정안은 6명만 찬성했다. 울산 건에 대해서는 당권파 내부에서도 당비대납 등의 문제가 너무 심각했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표결에서는 구 민주노동당 비주류 계열인 김성진 위원과 강기갑 위원이 모두 원안에 찬성했다. 구 민노당 주류 당권파들이 비상식적인 패권주의를 보여주면 참여당 계열-민노당 비주류 계열-통합연대 계열의 연합전선이 가동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이정희 공동대표가 모두 원안에 찬성해 3인 대표가 공동의 행보를 취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당권파의 대표 격인 이정희 대표가 당권파들과 다른 표심을 보여준 것은 당권파도 현 사태를 조기에 봉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당 관계자는 “이번 결과는 선관위위원장의 독단으로 유시민 대표의 당무거부까지 노정된 문제들이 대표단의 공감과 운영위원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라며 “참여당 계와 통합연대, 구 민주노동당 비주류 계열은 거의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표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도의원 사퇴 지역 불출마 안건을 놓고, 당권파 계열 운영위원들의 피선거권 제한이라는 주장이나 지역 의원 한두 명 쯤 없어도 문제없다는 식의 발언은 너무 비상식적인 주장이었다”며 “운영위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주장 때문에 더 설득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울산 남구(갑) 관련한 수정안이 6표만 얻은 것은 이경훈 후보에 대한 당심과 더불어 민주노총 국민파 성향 위원들의 발언이 당원 정서와 너무 떨어졌다. 패권주의가 불러온 사필귀정”이라며 “5월 당직 선거에서 유시민 대표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재밌게 돌아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비당권파 연합, 상시화 될까?...당권파 대응도 주목돼

이번 비당권파 연합 구도가 상시적 정치 연합 수준이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5차 전국운영위 4번 안건으로 상정된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은 후보 관련방침’ 논의는 이런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참여당 계열의 권태홍 운영위원은 조덕휘, 유성찬, 윤난실, 홍용표 운영위원과 함께 “전국운영위는 3차, 4차 전국위 결정에 근거해, 대표단의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는 후보의 경우 총선후보 인준 대상에서 제외시킬 것임을 결의함’이란 안건을 대표발의 했다.

권태홍 위원은 “진성당원제만을 경선의 원칙으로 얘기하는데 통합정신에 따르면 협의조정과 합의정신이 가장 최우선”이라며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후보 조정안을 거부하는 후보가 조정 거부로 당연히 결정되는 당원투표 50%와 여론조사 50% 경선규칙에 의해 경선에 이겨도 전국운영위가 후보 인준을 거부하자는 것이다.

당권파 쪽 운영위원들은 “진성당원제 원칙을 훼손한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장원섭 사무총장은 “진성당원제가 액세서리도 아니고 10년간 그거 하나 자랑으로 삼고 왔다. 이 안건은 명백한 진성당원제 무력화”라며 반대했다.

이혜선 위원은 “민주노동당은 진성당원제의 역할과 원칙아래에서 운영된 조직”이라며 “진성당원제를 얘기하면 마치 당원 숫자가 많은 곳이 과도한 역할이나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듯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직 이해와 정서가 일치하지 않아 그럴 수 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안건은 “당권파 계열의 패권으로 후보조정이나 경선 규칙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 지역을 대표단이 정리할 수도 있으니 제발 대표단 경선룰 권고안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었다. 당시 표결 분위기는 밀어붙이면 충분히 통과될 수도 있었지만 대표단들의 권고와 조정으로 안건은 철회됐다.

하지만 진성당원제가 패권주의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 또 구 민노당 당권파 계열들이 패권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언제든지 반대 구도가 형성될 수 있음을 상징적인 압박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번 비주류 연합 구도는 다음 전국운영위원회 핵심 안건이 될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계획이나 4월 총선 이후 당직 선거에서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연합구도가 4월 총선을 거치며 상시적인 연합 테이블로 구성될지도 관심 대목이다. 이미 비주류 연합구도의 파괴력을 파악한 구 민노당 당권파 계열이 향후 어떤 행보를 취할지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