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고 장덕준 노동자의 사망과 관련해 김범석 쿠팡 의장의 부적절한 지시와 근무 실태 왜곡 사실을 확인하고도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유가족과 노동계가 반발했다. 이들은 노동부가 조직적인 산재은폐 의혹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으며, 블랙리스트 문제에서도 기업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쿠팡 산재피해 유가족 모임과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는 2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발표된 쿠팡 근로감독 결과를 규탄했다.

고용노동부는 22일 쿠팡 계열사에 대한 감독 결과 노동관계법 위반 206건을 적발해 61건은 사법처리하고, 145건에는 약 19억 6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별도로 산재은폐 의심 사례 2건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고 장덕준 노동자 산재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장 씨는 2020년 10월 12일 쿠팡 대구2센터에서 야간근무를 마친 뒤 숨졌으며, 이듬해 2월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노동부는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범석 의장이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쿠팡이 CCTV를 분석해 고인이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간 시간 등을 분류하고, 근로복지공단에 고인의 모습이 없는 영상을 먼저 제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노동부는 쿠팡이 사망 사실과 산업재해를 보고했고, 공소시효 5년이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기로 했다.

장덕준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덕준이 죽음 후 지난 6년 동안 무엇을 했나라는 비참함에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산재 승인과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오랜 시간을 싸워왔지만, 김 의장의 지시가 확인되고도 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최소한 공정하게라도 조사하고 판단을 내려달라는 건데 그것마저도 꿈이었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권영국 쿠팡대책위 공동대표는 공소시효 판단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범죄행위가 종료된 때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해야 하는데도 김 의장의 지시 시점만을 기준으로 삼고, 이후 실제 은폐 행위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업무방해나 공무집행방해 혐의도 검토해야 한다며 재수사를 요구했다.

김상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사망 사실을 신고했다고 산재은폐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며, 쿠팡이 고인의 근무 실태를 왜곡한 행위 자체가 산재 원인 조사를 방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쿠팡과 노동부 근로감독관 사이의 유착 의혹에도 노동부가 내부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노동부 판단도 논란이 됐다. 노동부는 쿠팡이 이른바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를 작성해 채용에 활용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외부 공유를 통한 취업방해가 확인되지 않아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동헌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노동부가 2021년 자체 채용을 방해하는 행위에도 취업방해금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며 이번 판단을 비판했다. 또 2024년 폭로된 별도의 블랙리스트에는 노조 간부와 언론사 기자 등 1만 6,450명이 포함돼 있었다며 “노동조합 간부, 언론사 기자가 들어간 명단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면 무엇이 블랙리스트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쿠팡의 조직적인 불법행위가 핵심인데 노동부가 개별 사건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감독 결과가 노조와 언론이 제기한 문제를 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다며 “쿠팡의 문제가 계속되는 한 우리 투쟁의 시효도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도 전날 성명을 내고 노동부가 김 의장의 산재은폐 관련 지시를 ‘부적절한 지시’로 축소하고 쿠팡을 비호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쿠팡이 2024년 권고받은 노동강도 경감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는데도 노동부가 다시 지도에 그쳤다며, 3회전 배송과 고정 야간노동 등에 대한 실효성 있는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감독 결과 전문 공개와 산재은폐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 블랙리스트·불법파견 판단 재검토를 촉구했다. 국회에는 부실 감독 경위 조사와 김범석 의장의 증인 출석을 요구했다.

유가족과 쿠팡대책위는 이미 감사원에 청구한 고용노동부 감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한편,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했다는 의혹을 받는 쿠팡 임원들의 책임을 묻기 위한 대응도 이어갈 계획이다. 이들은 “우리는 고용노동부에게 결코 면죄부를 주지 않겠다”며 산재은폐 의혹과 부실 조사 문제를 계속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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