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500만 실업자 대중이 왕따 취급을 받고 있다.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노조 가입이 불거진 가운데 법무부를 필두로 한 조선일보 등 소위 수구공안세력들은 ‘실직자의 노조 참여시 초강경화, 행동화, 전투화 우려’ 및 ‘정치세력화’를
제시하며 극력 반대하고 있기 때문.
그런데 실업자의 노조가입은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맞바꾼 사항이 아니었던가. 또한 ‘세계화 속의 한국’을 부르짖는 김대중 정부가 지향하는 선진국들도 이미 실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반대할 명분이 없음에도
억지춘향격으로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8일 열린 차관회의에서 노동부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해 법무부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빚어난 이번 일은 정부 내 온건파와 보수파의 팽팽한 대립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노동부나 법무부의 의견은 이 한 가지에
서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운동의 무력화가 그것이다. 즉, 노동부와 법무부의 대립은 노동운동을 어떻게 무력화할 것인가에 대한 에피소드인 셈이다.
문제는 노동부의 유연함에 있다. 노동부는 IMF의 권고사항이라는 명분을 들고있지만, 사실은 그만큼 노동조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노동자와 실업자의 요구가 쉽게 통일될 수 없다는 전
망과 함께 현대사태를 통해 노동조합을 체재내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는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 노조 가입이 노동운동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업자와 현장 노동자와의 이해 사이에는 아직 여전히 장벽이 가로놓여 있으며, 전반적인 지도력의 부재와 노동자 계급의식의 취
약함을 고려해 볼 때 노동조합의 틀 내에서 실업자의 자주성과 행동은 적지않게 제한받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함으로써 조합원을 보호하려는 노조 이기주의가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오늘날 상황이 그 근거이다. 수구공안세력이
그 사실을 몰라서 실업자를 깡패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노동조합에서는 실업자를 조직화함으로써 취약해진 조직력을 보강하고, 노동시간 단축 등 실업자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워 이후 사회개혁투쟁에서 선점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러한 계획에 채찍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동부는 당근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채찍과 당근의 논리인 셈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실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83.9%가 자신의 의사를 요구하고 주장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하여, 실업자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호할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각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미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 노조 가입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실업자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 결합하기 위해서는 실업자와 취업 노동자간의 이해가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보다 근본적인 계급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실업자 투쟁과 고용안정투쟁은 동일한 요구이다. 최저생
계비 보장과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실업자 투쟁, 그리고 그에 앞선 실업자의 조직화는 결국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금 되씹어보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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