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던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 가입 문제가 법무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표류함으로써,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여기에 국회의 태업이 겹쳐 설상가상으로 법안의 연내 처리가 매우 불투명해지고 있다.

애초 법무부가 실업자 노조가입 반대론을 들고 나왔을 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약칭 ‘민변’)은 지난 12월 3일 실업자의 노조결성·가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법무부의 주장이 아무런 타당한 근거가 없고 사실을 왜곡 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즉각 ‘재야 일부 주장에 대한 반론’이라는 제하로 반박 성명을 발표하여, 법과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법무부에 대하여 그동안 각종 현안에 대해 법무부가 이룩한 일은 무시하여 버리고 법무부가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주장에 어긋난다고 하여 무조건 반개혁적으로 매도하였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법무부의 성명에 대하여

민변이 자신들의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법무부를 무조건 반개혁적이라고 매도한 것이라니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먼저 법무부가 자화자찬하고 있는 그동안 이룩한 업적이라는 것들의 실상부터 제대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사상전향제를 폐지한 것에 대한 박상천 법무부장관의 개인적 자부심은 상당히 큰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준법서약제라는 짱돌은 무엇인가?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내란을 통해 광주 시민을 무참히 살육한 천인 공노할 범죄자들은 준법서약서는커녕 단 한마디도 사과나 반성을 한 바 없 었음에도 물구하고 무조건 사면을 시켜주면서, 그들의 범법행위에 항거하여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양심수들에 대하여 석방의 조건으로 요구한 것이 준법서약서이다. 준법서약서를 쓴 양심수들에 대해서도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 또는 형집행정지로 풀어만 줘놓고 생색을 낸 것을 업적이라고 떠들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원회를 국가기구로 해서는 절대 안되고 무조건 법무부가 관장하는 특수법인으로 해야만 한다고 생떼를 써서 세계인권선언 50주년에 발맞춰 인권법을 제정, 인권대통령이라는 폼 한번 잡아보려던 김대중 대통령의 포부를 좌절시키는 업적을 이룩해내기도 했다.

부패방지기본법의 입안 과정에서도 법무부는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헌법이 보장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수사권 일원화 원칙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반발함으로써 이를 포기하도록 하는데 성공한 업적을 이루어내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고? 미안하지만 우리 헌법에는 검사의 영장신청권에 대한 간략한 언급 이외에는 ‘검찰제도’와 관련된 규정은 전혀 없는바, ‘기소독점주의’라는 단어는 당연히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헌법을 수호하는 법무부인가? 박상천 장관은 야당 시절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가지는 폐해를 지적하고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적극 주창하였던 사람이다. 자신이 처한 입장이 달라 지면 그 입장에 따라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는 입장주의(立場主義) 처세술의 전형적인 본보기라고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가 이룩한 업적의 실상을 알아보는데에 불필요하게 글이 길어진 것 같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민변이 법무부가 실업자의 노조 결성을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법무부를 무조건 반개혁적으로 매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로 한다.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자, 진정 누구인가?

법무부는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 가입 허용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로 우리 헌법과 노동법은 현재 취업중인 근로자만을 조합원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실업자의 노조 가입은 헌법과 노동법 체계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자가 노조법상의 근로자에 포함된다는 것은 국내외 학계에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정설이다. 우리 헌법과 노조법의 어디에도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근로자를 현재 취업중인 근로자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에 있어서는 실업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히 법에 맞는 것이다.

법무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업자가 지역별, 사업별 노조인 초기업단위노조에 가입하게 되면 지역별, 산업별 초기업 노조의 대량 설립과 이러한 노조에 해고자가 가입하여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바, 이것이 바로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민변이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이다. 기업별 노조 중심으로 되어 있는 우리 체체에서 해고자 등이 주도하는 지역별, 산업별 노조를 법률로 공인하게 되면, 결국 개별 기업의 사업장 중심 현행 노사협상 체제는 붕괴되어 노사간의 갈등과 혼란이 증폭되고 노사안정을 파괴할 것이란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업자들은 사회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사회불순집단인데 이들이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것을

법으 로 허용하게 되면 나라가 도탄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하므로 금지하여야 한다 는 것이다. 실업자가 사회불순집단이라니? 실업자들이 IMF사태라는 초유의 사회 대혼란을 야기하였는가? 우리 사회 혼란의 주범은 엄연히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재벌과 부패한 관료 그리고 무능한 저질 정치인들이고, 실업자 들은 어디까지나 그 결과로 ‘고통분담’의 명분 아래 고통을 전담하고 있는 억울한 피해자일 뿐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도 안되는 진실이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와 같이 실업자를 매도하는 것인지 어처구니 가 없을 뿐이다.

*법무부의 망발과 해괴한 공식견해

1987년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기업별 노조 뿐만 아니라 지역별 노조나 산업별 노조 등 어떠한 형태의 노동조합도 설립이 가능하게끔 되어 있다.

현행 노조법 제10조 제2항에도 ‘전국 규모의 산업별 단위노동조합’이라는 표현으로 산업별 노조의 설립를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다. 노조 체제가 산업별 노조 중심으로 되어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 독일은 우리 정부가 그토록 목메어 갈망하는 대표적인 선진국 중의 하나다. 이번 법무부 의 성명서에는 독일식 산업별 노조체제로의 전환은 개별기업의 사정과 관계 없이 획일적 협상타결을 해야 하므로 협상타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그 결과 또한 능력주의 원칙과 배분적 정의에 위배될 뿐더러(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해고자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노사협상이 정치투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괴한 주장이 들어 있다. 독일이라는 선진국이 능력주의 원칙 과 배분적 정의의 실현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노동조합은 정치투쟁을 일삼 기만 하는 나라라는 것인가? 이것이 우리 나라 법무부의 공식적인 견해인 것이다.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읽어봐도 분명히 그렇게 씌어 있다.

민변이 근거 없이 법무부를 반개혁적이라고 매도한 것이 아니라, 법무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실업자들의 가입을 허용하는 산업별 노조 체제는 산업평화와 사회안정을 파괴하는 제도이고 실업자들은 사회불순집단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의 대오각성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괜히 어설프레 떠들지 말고 가만히 있기만이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일 따름이다.

[저 자] 김도형 변호사

[출 처] 매일노동뉴스

[발 행 일] 1998.12.18

[발 행 처]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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