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연연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철의 노동자 37호)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의 불만적인 판단은 임금협상이 마무리 된 이후 해도 늦지 않습니다.”(철의 노동자 43호)

◎ 2000 투쟁의 목표

IMF, 부도를 겪은 노동자들에게 2000투쟁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2000 투쟁의 진행 경과 등을 토대로 2000 투쟁의 목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생계비 원칙에 따른 임금인상

– 반납상여금 쟁취

– 아웃소싱 저지

– 정몽원 경영권 장악 반대, 구조조정의 성과 노동자들에게 배분

– 현장 조직력 강화, 현장권력 쟁취

– 3사 1노조하의 노사관계(교섭구조) 정립, 즉 집단교섭 쟁취

◎ 2000 투쟁 시기별 평가

2000 투쟁의 과정을 시기별로 구분하면 대략 3월 2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전후로 한 투쟁 준비기와 4월 24일 총회를 정점으로 한 투쟁 고양기와 집단교섭 포기로 인한 불신과 혼란기, 마무리기로 나눠볼 수 있다.

▶ 투쟁 준비기

대체로 투쟁 준비기라 함은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며 투쟁의 승리를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전술적 투쟁을 배치하는 시기다. 그러나 만도노조의 2000 투쟁의 준비기라 할 수 있는 3월 대의원 대회 전후로 한 경과를 보면 99년 12월 수면위로 떠오른 반납상여금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3월까지 가져왔으며 일주일간의 투쟁(조합원의 참여는 높았슴)에도 불구하고 임금교섭 시점으로 넘겼다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또 99년 말에 새롭게 대두된 ‘정몽원 사건’에 대한 노동조합 차원의 명확한 정책적 접근과 투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측에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지분확보 시한인 6월이 다가오는 오늘까지 아무 소득이 없다.

투쟁 준비기를 보면 2월 각 지부의 현장투쟁과 3월 15일 본조의 투쟁배치가 눈에 띈다. 이 두 투쟁은 근본적으로 상호보완하며 확장되어야 하는 투쟁이었으나 투쟁의 맥을 잇지 못하고 1개월간의 간격을 두고 있다. 이는 본조의 정책, 기획력의 부재라 볼 수 있으며 이 점은 2000투쟁의 과정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 시기 가장 커다란 문제는 노사협의 결과가 현장에 자신감과 승리의 관점을 심지 못하고 거꾸로 혼란과 불신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혼란과 불신은 노동조합에서 개설한 홈페이지에 적나라하게 나타났고 결국 게시판 폐쇄라는 본조의 조치로 일단락 되었다.

▶ 투쟁 고양기

3월 노사협의 결과로 빚은 혼란과 불신은 채 2주를 넘기지 않고 가라 않았다. 이유는 문막공장 아웃소싱 투쟁이 격화되었으며 “불만스럽지만 ‘반납상여금’은 임투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합원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4월 투쟁은 전체적으로 노동조합의 통제력을 강화시키고 현장분위기를 살리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본조의 정책, 기획력의 부재는 아웃소싱에서도 드러나 원칙적 반대와 총력투쟁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총력투쟁이 배치되지 않은 채 지부와 본조를 오락가락하였다. 결과적으로 투쟁의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정치적 계산과 책임 회피에 몰두한 꼴이 되었다.

▶ 불신과 혼란기

– 4월 24일 ‘집단교섭 쟁취를 위한 조합원 총회’ 82%로 가결

– 4월 25일 교섭형태 전환 중대위에서 처음으로 안건으로 다뤄짐

– 5월 2일 전면 파업 약속 지켜지지 않고 부분파업

– 5월 3일 ‘집단교섭 포기’ 교섭형태 전환 결정

교섭형태 전환으로 야기된 현장의 불신과 교섭형태로 인한 혼란은 ‘현장신문’이 수습방안으로 제시한 조합원 총회 요구를 본조에서 거부하면서 노동조합 운영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노동조합 생리상 조합원과의 약속 특히, 예고 파업 등 ‘투쟁의 약속’은 반드시 지켰어야 함에도 조합원이 납득할 만한 피치 못할 이유나 공론화 과정없이 ‘집단교섭’을 포기해 지도부가 얻은 것이라고는 현장의 불신과 사측의 고소고발 취하뿐이었다.

▶ 투쟁 마무리기

한 달여의 교섭 공전 끝에 경주지부는 개별교섭에 들어갔고 (주)만도와 만도공조는 대각선교섭을 통해 임금인상안에 안을 같이 내놓아 애초에 노동조합이 요구하였던 집단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섭과정을 보면 똑 같거나 비슷한 교섭이 자본의 주장처럼 다른 경영환경으로 불가능한 사항이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본조의 이러한 집행과정의 문제와 지도력 및 정책기획력의 부재는 현장에 넓게 불신을 퍼뜨렸고 임금인상안과 무관하게 체결권 행사를 위한 찬반투표에서 8년만에 부결되는 결과를 낳았다. 1차 찬반투표의 결과는 조합원이 본조에 대한 불신을 선택한 결과였다.

◎ 총평

투쟁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 투쟁이 목표 6가지 중 우리는 얼마나 달성하였나?

‘어느 해보다 높았다’는 임금인상안도 (주)만도의 경우 1/4분기 매출 계획대비 115% 달성, 경상이익 164억원임을 감안하고, 브이디오한라가 먼저 타결하며 최저선이 이미 정해졌었음을 고려하면 투쟁기간과 강도에 비해 그리 높은 것도 아니다.

하물며 집행과정의 문제, 1차 찬반투표에서 부결 후 역설적인 가결까지 종합해서 평가한다면 낙제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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