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약 2만 명의 선원들이 선박 안에 고립된 채 미사일 위협과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식량·물·의약품 부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일부는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계약 종료 이후까지 바다에 머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코로나 시기 드러난 해운 노동 착취 구조와 ‘그림자 선단’ 문제를 다시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 투자중재(ISDS)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자원 국유화나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등은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점차 투자자 친화적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자원 주권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콜롬비아의 페트로(Petro) 정부는 국제 투자중재 체제 탈퇴를 추진하며 경제 주권과 비동맹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1926년 영국 총파업에는 최대 150만 명이 참가하며 전국 산업과 교통이 멈췄고, 노동자들은 광부 임금 삭감에 맞서 연대 파업에 나섰다. 정부는 경찰·군대·중산층 자원대를 동원해 강경 대응했고, 곳곳에서 노동자들과 충돌이 벌어졌다. 하지만 노조 지도부가 장기 투쟁을 두려워해 9일 만에 파업을 철회하면서 노동자들은 패배했고, 이후 반노조 법안과 노동운동 약화가 뒤따랐다.
100년 전 런던 항만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주도하며 도시 물류와 경제를 사실상 마비시켰다. 정부는 군대·경찰·파업 파괴 인력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고, 곳곳에서 노동자들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비록 보수적 노조 지도부의 철회로 파업은 패배했지만, 이 투쟁은 이후 영국 노동운동과 좌파 정치 형성에 큰 영향을 남겼다.
다큐멘터리 《Steal This Story, Please!》는 에이미 굿맨(Amy Goodman)과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가 어떻게 독립 언론 네트워크를 구축했는지 조명한다. 굿맨은 기업 언론이 전쟁, 기후위기, 불평등 문제를 다루지 않으며 “침묵당한 다수”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영화 역시 주류 배급망에서 배제됐지만, 독립 상영과 입소문만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독립 미디어에 대한 대중 수요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코발트·리튬 등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전략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기업과 투자펀드, 방산·AI 업계까지 광산 개발에 뛰어들며 중국 영향력에 맞선 자원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현지 시민사회는 외국 기업과 엘리트만 이익을 얻고, 콩고 주민들은 여전히 빈곤과 부패 속에 남겨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도 케랄라(Kerala) 선거에서 좌파가 패배하며, 50년 넘게 이어진 ‘좌파 집권 주(州)’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는 좌파 세력이 전국적으로 약화되고 우파 정치가 강화되는 흐름을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좌파가 재도약하려면 변화된 사회·경제 현실에 맞게 전략과 조직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군사·정치 협력이 강화되면서, 이란과의 갈등을 더욱 확대시키는 ‘축’이 형성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UAE는 OPEC 탈퇴와 대이란 강경 노선을 통해 사우디와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스라엘과의 군사 협력으로 지역 긴장을 높이고 있다.이러한 흐름은 중동 지역의 장기적 불안정과 충돌 확대를 초래할 수 있어, 주변 국가들의 대응과 새로운 지역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로스앨러모스(Los Alamos) 연구소가 핵무기 생산과 AI 슈퍼컴퓨터 시설 확장을 추진하면서 막대한 물 사용이 예상되고 있다. 연간 수억 갤런의 물이 필요해 이미 기후 변화로 악화된 지하수 고갈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역 사회와 농업보다 군사·기술 프로젝트에 물이 우선 배분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 암살 시도가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실제 정치적 이득이나 실행 가능성 측면에서도 비현실적이다. 이런 음모론이 확산되는 이유는 SNS 알고리즘과 확증편향이 결합해, 어떤 주장도 ‘증거’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보 환경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더 비합리적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인지적 붕괴’ 현상에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