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파업

[전노협20년] 노동자는 오직 하나의 이름일 뿐

93년 나는 부산에 있는 신일금속노조(지금 금속노조 비엠지회)위원장이었다. 그 해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했고 문민정부 이데올로기로 세상이 얼어있...

구치소에서 눈물로 맞이한 ‘전노협 창립’

[전노협20년] 지역연대, 우리는 집단으로 진한 사랑에 빠졌다(2)

“우리 오늘 전노협 창립대회 그 역사적인 자리에 가지 못하지만 단식으로 기쁨을 나누자. 지금부터 1990년 1월 22일 전노협 결성식을 자축하며...

끝내 승리하고 전노협 건설하리라

[전노협20년] 조합원 전체가 교섭대표였다(1)

1층 복도와 계단에서부터 4층 회의실 앞까지 늘어선 조합원 손마다“단체협약 완전쟁취! 인노협을 상급단체로, 인사위원 노사동수로, 끝내 승리하고 ...

전노협, 열정적으로 살게 해주었던 힘[1]

[전노협20년] 우리에게 노조 생활은 인생의 전부였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나의 의식이 투철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밀어줬다. 그리고...

대단한 시절, 노동 꽁트 연재하기

[전노협20년] 그 시절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4)

세계 어디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나 중국 등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신문에 꽁트를 연재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해동이네’ 연작, 노동자 가족의 삶의 애환 담아[1]

[전노협20년] 그 시절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3)

해동이와 해자. 해동이 엄마와 아버지, 해동이 아빠의 회사 선후배, 해동이 이모와 해동이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다 등장한다. 시점은...

무모한 도전, 전국노동자신문에 꽁트 연재하기

[전노협20년] 그 시절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2) 꽁트와 노동자는 닮은 꼴

꽁트 하나에 꽂힌 나는 낯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열정적으로 꽁트에 대해 설명했다. 덕분에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편집자들이 헤어...

“전국노동자신문에 꽁트를 연재하자고!”[2]

[전노협20년]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1)

1991년 2월,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동숭동 ‘학림’에서였다. 노동문학의 길을 걷는 문우들에게 제안했다. 전국노동자신문(...

전노협 선봉대, 이름없이 투쟁한 동지들에게[2]

[전노협 20년] 1월 22일에는 ‘전노협 기억행사’를 갖자

대부분의 선봉대원 이름은 역사 속에 없다. 그러나 전노협과 민주노조 사수와 투쟁의 진전에 이름 없이 투쟁한 선봉대원들,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전노협 정신, 노동자는 하나다[2]

[전노협 20년] 전노협 정신의 회복은 회의주의도, 복고주의도 아니다

나는 지금 감옥에 있다. 공교롭게도 20년 전 전노협이 출범할 당시에도 나는 감옥에 있었다. 감옥에서였지만 환호로 맞았던 전노협 출범 소식과 2...

아우성치고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즐기는 신나는 잔치판

[전노협 창립20주년-내가 함께한 전노협](2) 노래판굿 꽃다지

서노협의 문화부를 맡고 있던 김경란과 신재걸이 ‘전노협 건설을 위한 특별공연’을 제안해왔다. 서노문협에서 함께 활동하던 단체들의 역량을 총집결하...

20년이 지나, 전노협을 기리며[1]

[전노협 창립20주년 기획연재 -내가 함께한 전노협](1) 전노협 후원회

1990년 1월 22일, 오늘의 민주노총 모태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닻을 올림으로써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날이다. 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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