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를 통한 21세기 대안적 맑스주의 모색

[맑스코뮤날레](자율평론) - 들뢰즈의 유물론적 존재론

제3회 맑스코뮤날레의 주관단체 세션부문에서 자율평론은 '들뢰즈의 유물론적 존재론'을 주제로 세개의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첫 번째로 조정환 자율평론 만사는 '들뢰즈의 시간론 서설'을 발제했다. 조정환 만사는 발제내용이 당일 오전에 있었던 아른트 교수의 '시간의 경제' 발표내용과도 연관이 있지만 "오늘날 새롭게 변형된 자본주의의 노동형태를 이해하고 맞서기 위해서는 아른트 교수가 사용한 보편적 측정 가능한 시간 개념과는 다른 시간개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맑스가 도달하고자 했던 다른 시간

조정환 만사는 '19세기 자본주의 경험에 기반한 맑스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21세기 자본주의와 혁명의 문제를 사유하는데 그대로 이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기본적인 문제의식으로 삼고 있다고 밝히며 "오늘날에는 일반적인 노동시간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사회적 노동이 되었기 때문에 가치법칙의 세 가지 요소 중에 세 번째 요소인 노동시간의 양에 관한 가치척도론은 그 유효성을 점점 더 상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그럼에도 가치형태가 유지된다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의 시간개념과는 다른 시간개념을 요구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며 들뢰즈의 시간개념에 따른 존재론에 대해 검토했다.

조정환 만사는 "사실 맑스의 사유를 잘 살펴보면 두 가지 시간 개념이 반복되고 있으며 근대적 시간을 주로 다뤘지만 어떻게 그 근대적 시간을 넘어설 것인가에 혁명적 관심이 놓여져 있음이 발견된다"고 하고, 맑스 자신은 근대적 시간개념에 갖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맑스가 노동시간으로 부터 출발하여 역사적 과정을 밟아 그것을 넘어서는 시간을 추구했다면 들뢰즈는 그 맑스가 도달하고자 했던 그 다른 시간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출발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정환 만사는 들뢰즈에게서 두 가지의 시간성인 '크로노스의 시간(측정 가능한 양적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측정 불가능하며 잠재적 직관적 시간)'을 가져와서 사회적 노동을 다루기 위해서 요구되는 기존과 전혀 다른 시간 개념으로 아이온의 시간이 힌트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내비치는 지점에서 자신의 '서설'은 멈추어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크로노스의 시간만을 바탕으로 사유하는 기존의 경향과 아이온의 잠재성을 실재와 동떨어진 초월적인 것으로 전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 둘 다와 싸워야 하는 이중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며 발제를 마쳤다.

첫 발제에 대한 논평자로 박영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 참여하여 논문의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과 함께 몇 가지 상이한 입장과 해석들 및 불분명해 보이는 개념들에 대한 질문을 덧졌다. 조정환 만사는 박영균 회원의 지적과 질문에 오해 가능성이 있는 부분 및 자신의 관점과 의도에 대해 좀 더 명확히 밝히는 것으로 답변을 했다. 하지만 여러 복잡한 철학적 개념의 해석에 대한 질문들은 시간관계상 충분히 답변되지 못했다.

맑스-레닌주의 한계를 딛고 들뢰즈를 통해 맑스의 유효성을 살려내야

잠시 휴식 후 두 번째 발제로 다중네트워크센터 운영위원장인 승준 자율평론 만사의 '맑스주의의 위기와 들뢰즈의 표현론' 발제가 이어졌다.

승준 만사는 일단 맑스-레닌주의의 3가지 이론적 기반(토대-상부구조론, 잉여가치에 의한 착취론, 산업노동계급 중심의 계급투쟁론)이 변형된 자본주의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주지한 후 그렇지만 "맑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 이론에 드러나 있는 맑스의 실질적 의의 중에는 여전히 유효한 부분들이 있으므로 그것들은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곧이어 이러한 맑스주의의 유효성들을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도달한 '표현주의'를 통해 재조명했다.

스피노자의 표현, 역능, 덕과 같은 개념은 초월이나 신비적인 것의 추구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맑스의 코뮤니즘적 관점을 잘 나타내주며 오늘날 세계를 해명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설 세계의 창조를 기획할 관점상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발제에 대한 토론자로 박정수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이 참여했는데 승준 만사의 발제내용과는 뚜렷한 입장 및 관점의 차이를 보이며 여러 가지 의미있고 논쟁적인 지적을 했다.

박정수 연구원은 승준 만사의 발제에서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고 얘기된 맑스주의의 부분들에 대해 하나씩 비판하면서 "여전히 낡은방식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으며 맑스주의와 유물론 해석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스피노자의 신 관념이 코뮨주의자에게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그리고 역시 제국과 비물질노동에 관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며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승준 만사는 자신은 스피노자의 신을 virtual(잠재능력)로 이해하며 "여지껏 맑스주의나 코뮤니즘이 actual(실재)만을 강조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virtual은 간과해 왔기 때문에 코뮤니즘적 관점이 actual한 관점에서만 머물지 않고 virtual에 대해 동시에 생각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신 관념은 강조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비물질노동에 대해서는 비물질노동의 개념없이 그것을 그저 산업생산의 좀 다른 형태로 이해해서는 그 생산을 해내는 과정이 전혀 눈에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노동시간이 척도로서 적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대답했다.

승준 만사는 박정수 연구원이 욕망의 관점에서 코뮤니즘을 사고한다면 자신은 노동의 관점에서 코뮤니즘을 사고하기 때문에 서로간에 입장차이가 벌어지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자신이 노동을 이야기 하는 관점은 맑스가 규정했던 산노동이며 현실적인 차원의 노동이 아닌 virtual한 차원에서의 노동의 힘을 먼저 보는 것이 올바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토론에 대한 답변을 마무리했다.

덧붙여 다음날 지금 토론자인 박정수 연구원이 발제하는 '욕망의 코뮨주의'에 자신이 토론자로 참석해서 비슷한 논지의 논쟁이 다시 한 번 예상된다고 말하며 오늘 미처 논의 되지 못한 것들을 마저 논의 하는 자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청중석에서 이진경 수유+너머 연구원이 스피노자의 신-잠재력은 결국 부르조아에게도 똑같이 적용됨을 지적했고 또 토대와 상부구조가 서로 상응하는 것인데 그것을 각각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을 했다. 그리고 박정수 연구원은 스피노자의 평행론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승준 만사는 일단 토대-상부구조론의 이해방식이 서로간에 다른 것 같다고 대답하고 평행론은 물질이나 의식 중에 어느 것에도 우선을 두지 않는 것인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수동 상태를 극복할 방법을 평행론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평행론은 의미가 있다고 답변했다. 다음 발제시간 때문에 토론과 질문은 일단 마무리 되었다.

현실성에 대한 창조를 전제하지 않는 잠재성은 무의미

세 번째로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는 '들뢰즈와 meta-physica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들뢰즈 철학의 주요개념을 되짚으며 진행된 발제는 그 어느 발제보다도 복잡하고 방대한 철학적 개념과 용어들이 소개 되었다.

이정우 대표는 우선 칸트 이전의 철학의 인식론, 칸트에 의해 구축된 근대적 인식론, 그리고 소쉬르에 의해 시작된 현대철학의 언어중심주의 등을 소개하고 "들뢰즈는 언어중심주의에서 그 너머의 어떤 존재를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존재론자이고 실재론자"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볼 때 일면 칸트로부터 플라톤으로 회귀한 듯 보인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들뢰즈 철학의 특징과 핵심개념들을 설명하며 차이생성, 잠재성, 동일성들의 분화 등의 개념으로부터 들뢰즈를 니체, 베르그송, 화이트헤드를 잇는 생성존재론자라고 규정지으며 결국 반플라톤적 존재론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이정우 대표는 들뢰즈가 이데, 구조, 다양체, 문제 등을 재해석하고 이 모두를 '잠재성'의 개념으로 응축했으며 이것은 후에 추상기계의 윤리학/정치학으로 전환되고, 추상기계를 경유해 현실의 배치를 바꾸어 나가는 실천적 함의를 이끌어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이점에서 맑스/엥겔스의 '생산양식론'을 들뢰즈/가타리의 추상기계론을 통해 세련화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발제를 마쳤다.

이에 대하 토론자로 참여한 박기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은 들뢰즈의 철학이 고전 형이상학의 질서를 뒤집으면서 불안정해 졌고 결국 그의 존재론은 '잠재적인 것과 가능한 것과의 혼동', 그리고 '잠재적인 것의 이중화' 혹은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으로의 이중화' 등으로 되며 이런 것들은 들뢰즈가 스피노자에게서 일부러 안 가져온 것이라 여겨지는 신의 필요성 혹은 필연성 대신에 그곳에 우연성을 집어넣은 것이 한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낭만주의적이라는 혐의로도 이어지고 있으며 들뢰즈의 철학은 결국 '불안정성의 형이상학' 혹은 '혼돈의 형이상학'으로 불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불안정성의 형이상학은 결국 맑스의 논제와는 대립적이며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맑스의 역사적 분석 보다는 실험과 모험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정우 대표는 "잠재성과 현실성을 플라톤 혹은 칸트식으로 따로 구분지어 생각하면 그것은 심각한 오류"라고 말하며 박기순 회원의 논평에 대한 답변을 시작했다.

"현실성에 대한 창조를 전제하지 않는 잠재성이라는 건 무의미하며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현실성이고 그 현실성의 변화와 생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만 잠재성을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따라서 "그것들을 각각 개별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고 그 둘 사이를 가를 수 있는 실체적 선도 없다"고 말했다.

또 존재를 안정성으로 바라보고는 들뢰즈의 존재를 불안정으로 말하는 관점에 대해서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는 생성하는 것이기에 그런 관점은 틀렸다고 설명했다. 이정우 대표는 예를 들어 탄수화물, 지방 등 영양소들의 무수한 화학적 변화의 총체적 결론이 몸의 영양상태 이듯이 안정적인 것과 불안정적인 것은 서로 상관관계로 엮여 있는 것이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스피노자에 대해선 분명히 들뢰즈의 스피노자론은 원래의 스피노자와는 차이가 있고 들뢰즈는 충분히 그럴만한 의의가 있어서 자신에 맞게 틀어버렸다고 설명했다.

실험과 모험이라는 것도 그 의미를 너무 단순화 시킨 듯 하다고 했으며 "전체적으로 역동적으로 얽혀있는 관계로 봐야 할 것들을 논리적 opposition(대당관계)으로 보면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토론에 대한 답변을 마무리했다.

'비물질 노동'과 '아이온의 시간'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마쳐야 할 시간이 거의 다 된 상태에서 전체 토론이 시작되었는데 청중석에서 다시 이진경 수유+너머 연구원이 조정환 만사에게 "비물질 노동에 들뢰즈의 아이온의 시간개념을 대응 시킨다는 것이 정말 적용 가능한 것이고 적절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조정환 만사는 일단 단순히 대응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답하며 "자신은 아이온의 시간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진경 연구원은 "서로 상이한 맥락의 개념을 적용시키긴 어렵 않느냐"는 논지를 폈고 비물질노동의 개념이나 그것의 역사성에 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정우 대표는 "아이온의 시간은 수평적 크로노스의 시간 사이에서 수직으로 솟아 오르는 시간으로 '사건의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건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반복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승준 만사는 "아이온의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가 각각 서로 달라서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정환 만사는 "오늘날, 근대에는 억제 됐었던 비물질노동이 출현함으로 국가나 상부의 구조에 균열이 생겼고, 이는 우리의 삶 전체를 생각해야만 노동, 생산, 사회적 관계와 적대 등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며,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적 틀을 생각할 때 들뢰즈의 다른 개념의 시간이 어떤 암시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 했다.

발제 내용 중에 워낙 방대한 철학적 내용들이 많다 보니 시간이 많이 초과되어 전체토론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진행됐다. 또 조정환 만사의 발제 내용에 관한 토론은 그 발제가 아직 '서설'이라는 한계 때문에 깊이 있는 토론으로 진행되지 못했던 듯이 보였다. 사회자는 아쉽지만 '크로노스의 시간'이 다 돼서 이걸로 오늘 자리는 마쳐야겠다고 말하고는 주제발표토론시간을 끝냈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다중네트워크센터 네터 종현 님이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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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어려운 말하기 시합합니까?

  • ㅋㅋ

    ㅋㅋ윗분 말씀에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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