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토-레토(Esperanto-Reto)는 이번에 처음 참여하는 단체로 언어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평등한 국제공용어로 에스페란토를 제안하는 운동단체이며 '레토'는 에스페란토로 '망(網)'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회는 에스페란토평화연대 활동가인 안종수(에스페란토 이름은 카라 : Kara) 에스페란토-레토 회원이 맡았으며 "에스페란토 운동과 좌파운동과의 연결된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현재지점에서 새로운 운동의 계기를 마련 하고자 한다"고 이번 맑스코뮤날레 참가 취지를 밝혔다.
실용적인 평화의 공통어 에스페란토
첫 번째로 출판활동가인 정현수(파즈 : Paz) 에스페란토-레토 회원이 '맑스주의와 에스페란토 운동의 역사'의 발제를 시작했다.
정현수 회원은 에스페란토 이전과 이후에도 많은 인공 공통어가 만들어 졌지만 대부분 실패했는데 그 원인으로 그것을 창안한 사람들이 인류 공통재인 언어를 자신의 사적 소유물로 삼아 독점적 권리를 가지려고 했음을 지적했다. 그에 반해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자멘호프는 자신의 독점적 권리를 포기하고 '온 세계가 에스페란토의 물권을 소유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또 자멘호프는 국가권력, 정부 등 공식기구를 이용하여 에스페란토의 사용을 위로부터 강제하는 것을 반대하며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다양한 민족들의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룸으로써 확산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에스페란토는 1민족2언어주의(자기 민족들끼리는 모국어를 사용하고 타민족과는 공통어를 사용함으로 언어의 평등성을 유지하는 것)를 지향하고, 배우고 사용하기 쉽게 창안된 언어이기도 하며 그 이념이 평화와 평등, 인간해방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맑스주의자들의 에스페란토에 대한 적대
정현수 회원은 곧 본격적으로 좌파운동 및 맑스주의와 에스페란토 운동과의 관계를 살펴봤는데 맑스 이전의 초기 사회주의자들이나 계몽주의자들은 토마스모어, 에띠엔까베, 볼테르, 푸리에, 프루동 등 많은 사람들이 인공 보편어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맑스 이후의 카우츠키, 레닌, 스탈린, 그람시, 마르 그리고 오늘날 대표적 맑스주의자인 홉스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은 에스페란토에 적대적이었으며 공통어의 필요성을 인식한 경우에도 거대 민족어에 소수(민족)어의 흡수와 통합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그람시의 경우 현존하는 소수의 민족어가 앞으로 승리할 것이며 낮은 사회적 지층에서의 국제적 접촉은 불필요하다는 말로 소수민족의 희망을 무시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맑스주의 지도자들은 언어제국주의 경향, 또는 에스페란토를 단순한 유토피아주의로 취급하여 적대적이었으나 실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어서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에 의한 에스페란티스토 조직들이 결성 되었고, 특히 일제하의 조선에서는 많은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국제적 연대와 계급투쟁을 위한 적절한 언어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담지자가 되어 반민족적 하위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자발적 경향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에스페란토의 실제적 사용이 사회주의자들에게 구체적 의미를 줄 것이라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정현수 회원은 설명했다.
정현수 회원은 홉스봄이 에스페란토는 실패했다고 말하며 영어가 사실상 전 지구적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이유로 별 문제의식 없이 영어를 세계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다고 하고 이는 카우츠키 이후 맑스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난 언어제국주의 경향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또 가라타니 고진의 경우 에스페란토는 유럽어 계열이라 비유럽인은 습득하기 어려워서 실패했고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으므로 영어를 공용어로 쓰되 문법적으로 불규칙한 부분은 인공적으로 개정해서 쓰는 것이 평등한 세계어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언어제국주의냐, 인류인주의 공통어냐
이어서 영어 원어민은 전 세계 인구의 5-6%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나머지 95%의 비원어민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와 전 지구적 소통을 추구할 때 사실상 제국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영어를 유일한 언어로 삼고 나머지를 배척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현수 회원은 '세계적으로 생각하라,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대안 지구화 운동의 구호가 단지 자기 지방지역에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구적인 실천과 소통, 직접적인 결합이 필요할 텐데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해 봤을 때 지금 즉각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에스페란토를 제안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특정 민족적 구성원이기를 넘어서 인류로 부단히 발전해 왔고 그에 걸맞는 언어적.문화적 삶을 동시에 만들어 가야 하고, "자본주의가 역사의 완성일 수 없듯이 제국적 언어 현실도 고정불변의 초역사적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류인의 공통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에스페란토가 유효한 실제적인 참조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발제를 마쳤다.
곧이어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현대철학을 공부중인 박서현 토론자가 토론을 시작했는데 정현수 회원의 발표내용에 전체적으로 동의하면서 에스페란토의 정치성과 계급에 관한 문제-인류인은 계급적 주체인가 아니면 비계급적 주체인가, 사용의 용이성에 따른 매개의 수단으로서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삶-정치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문제, 그리고 오늘날 에스페란토와 맑스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세 가지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정현수 회원은 "자멘호프가 말한 중립성은 정치적 중립성이 아니고 어떤 민족에게도 우위를 두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중립성으로 그 자체가 이미 정치적으로 중립성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자본의 전지구화는 언어적 소통불가능성을 해결했기에 가능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위로부터의 소통이며 자본의 확장을 위한 신자유주의 제국을 완성하기 위한 명령체계로서의 소통이라고 설명하고 인류의 공통어를 구축하는 소통과정은 아래로 부터 다중의 특이성이 발현되는 과정으로서의 소통이 되어야 하고 제국에 의해 강제된 공공성을 에스페란토를 통해 재전유해야 함을 주장하며 답변을 마쳤다.
좌파 활동가들의 국제연대 도구로서 사용된 에스페란토
두 번째 발제로 조선대 강사인 최만원(데크밀 : Dekmil) 에스페란토-레토 회원의 '일제하 민족해방 운동과 에스페란토 운동'이 이어졌다. 최만원 회원은 일제하에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민족주의자 등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과 이해를 통해 에스페란토를 받아들였는데 그들 모두 항일과 민족해방-독립이라는 대의는 공유하고 있었음을 설명하고 김산(장지락), 박헌영, 신채호, 홍명희, 김억, 이극로, 안우생 등 널리 알려진 항일운동가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에스페란티스토였음을 소개했다.
최만원 회원은 특히 아나키스트들이 매우 활발한 에스페란토 운동을 벌였음에 주목하고 아나키즘과 에스페란토의 연관성에 대해 수용과정의 유사성, 민족해방투쟁의 도구로서 사용된 유사성, 그리고 사상적 지향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최만원 회원은 에스페란토는 만들어진 배경에서부터 소수언어자로서 어려움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런 의미에서 소수자, 억압받고 탄압받는 민중들의 언어라고 생각한다며 일제하의 시기에 다양한 소수자에 의해 정의로운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에스페란토가 해방 이후 그 정치성과 저항성을 상실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며 외국친구들을 만나며 자신의 만족감을 얻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자멘호프의 창안 취지처럼 소수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언어로서의 에스페란토라는 부분을 더욱 살려내었으면 한다"는 말로 발제를 마쳤다.
이어서 토론자로 나온 이종호 자율평론 만사는 최만원 회원의 논문을 비교적 최근에 주목되기 시작한 식민지 시대 정치사회운동과 에스페란토운동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의 연장에 있으며, 사회자인 안종수 회원의 저작 '에스페란토 아나키즘, 그리고 평화'와 함께 에스페란토운동사 서술에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화정치' 시기를 주목하며 에스페란토 운동을 서술한 지점에서 '문화정치'와 에스페란토의 상관성이 내용상 잘 드러나지 않음과 다양한 정치성향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수용한 에스페란토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이 각기 어떤 차이를 두고 있었고 어떤 다른 방식으로 에스페란토를 활용했는지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종호 만사는 원종린이라는 당시의 에스페란티스토를 소개하며 그는 에스페란티스토를 '순정 에스페란티스토'와 '불순정 에스페란티스토'로 구분하면서 에스페란티스토를 학습한다고 해서 모두 동지는 아님을 분명히 했고 이는 동일한 에스페란티스토들 중에서도 다양한사상적 조류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서라고 했다.
영어지배의 불합리함과 비민주성
세 번째 발제는 사트(SAT:세계무민족협회)라는 에스페란토 조직의 회원인 산도르 호르바스에 의해 '영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사회자는 산도르를 헝가리 출생이고 호주에서 에스페란토를 배웠으며 현재 청주대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영어강사가 영어가 문제라는 발제를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얘기했다.
발제는 '에스페란토'로 진행이 되었고 한국에스페란토협회의 국제이사인 허성 사트 회원이 한국어로 통역을 맡았다. 또 산도르가 직접 준비한 파워포인트 영상을 프로젝트를 통해 상영하면서 진행되어 이색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산도르 사트 회원은 영어의 국제적 지배는 심각한 상태로, 지극히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이라고 말하면서, 세계의 92%가 사용하는 토착어를 열등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고 심각한 낭비라는 지적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산도르 사트 회원은 오늘날 약6천 개의 언어가 있다고 추정되며 앞으로 2백 년이 지나면 2백 개의 언어만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영어는 다른 지배적인 언어들과 더불어 언어를 살해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며 언어가 사멸되는 것은 단순한 사태가 아니고 그 언어와 연결된 문화도 함께 상실될 위험에 처한다는 의미이므로 이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산도르는 계속해서 언어는 단순한 중립적 소통수단이 아님을 말하고 언어를 둘러싼 민족과 부족, 국가간의 분쟁에 대해서 얘기한 후 지배언어로서 영어가 확립되면서 꾸준히 지배권력과 부의 불균형, 차별, 굴욕감, 문화적 이데올로기의 주입 등의 문제가 일어남을 지적했다.
그리고 특히 자신이 영어교육자로서 영어교육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했는데 영어교육산업이라고 하는 것의 낭비와 불합리함, 무리한 사교육비 지출, 실력과 발음향상을 위한 아동학대의 실태, 그리고 교사자격증도 없는 원어민교사 등의 다양한 문제와 예들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산도르는 '현재의 불공정한 국제 의사소통체계에 대안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했다. 산도르는 '대안은 있다'고 이야기 하며 그 가능성이 있는 대안으로 에스페란토를 제안했다. 에스페란토는 중립적이고 계획된 언어로서 지난 200년간 창조된 수백 개의 인공언어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으며 매우 배우기 쉽고 언어 장애와 불평, 억압을 제거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다고 소개했다. 물론 에스페란토에 대한 무시와 반대의 경향도 소개했지만 산도르는 여기에 대해 반박하고 완벽한 언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어를 국제어로 쓸 때 생기는 문제와 함께 생각해보면 가장 나은 대안이고 이는 분명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산도르 사트 회원은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치료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위해서는 영어 배우기를 강요하는 나라들에 대항하는 계급적 행동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발제를 마쳤다.
에스페란토를 향한 새로운 욕망의 창조 필요
토론자로 나온 정남영 경원대 영문과 교수는 에스페란토에 대해서 탄생취지와 존재 자체가 소수언어라는 점에서 여타 언어와 다르며 여러 가지 언어구조적, 문법적 장점을 가진 언어라고 평가하지만 문제는 에스페란토의 장점에 대한 논리적 설득만으로는 에스페란토의 확대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영어는 이제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강제되기 보다 욕망되고 있으며 이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에스페란토를 향하는) 새로운 욕망의 창조라고 설명하며 그 구체적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인류인주의 공통어로서 에스페란토를 제시하는 사람들의 과제라고 말하며 토론을 마쳤다.
청중석에서 '영어가 욕망된다는 것과 새로운 욕망의 창조의 의미'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 있었다. 정남영 교수의 간단한 답변 이후 조정환 에스페란토-레토 회원이 보충 답변을 했는데 지금 맑스코뮤날레에 에스페란토 관련 3개의 논문이 실린 책자를 지인이 읽다가 에스페란토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활동가를 위한 에스페란토 강좌'와 같은 식의 강좌를 하나 개설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조정환 회원은 지금 바로 이런 과정들이 에스페란토를 향한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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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다중네트워크센터 넷터 종현 님이 보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