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수 노동전선 대표./참세상 자료사진 |
이경수 대표는 총선 시기 논의모임이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지적에 "결과물을 내는 것을 목표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고 반박하며 "총선 시기 토론회를 통해 변혁정당 건설 필요성을 알렸고, 총선 이후 일부 정치조직이 변혁정당 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노동자의힘이 '계급정당 추진위원회 건설'을 목표로 세운 데 대해 "전위정당인지 대중정당인지 분명하지 않아 호불호를 밝히기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전위정당도 아니고 대중정당도 아닌 계급정당을 주장하기보다는 의회정당을 지향하되 오류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의힘이 계급정당을 세우지 못했다고 해서 '지난 10년은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도 "변혁정당 세력이 지나치게 신중해 역동성이 부족했던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당 운동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세상으로 바꾼다는 목표를 가진" 노동자정당 운동의 성격을 선명히 하기 위한 것. 그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동자정당을 뒷받침할 대중적 토대 복원이 최우선 과제"라며 "진보정당 운동은 '서클주의적 정치조직'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는 노동전선과는 무관한 개인 입장임을 전제로 하고 진행됐다. 다음은 지난달 28일 인터뷰 전문이다.
"노동자정당 건설 위해서는 '왼쪽'으로 와야"
총선 시기 변혁정당논의모임 제안자로 활동하며 변혁정당을 추진했는데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변혁정당논의모임(논의모임)이 처음부터 어떤 결과물을 내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던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정당 운동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낼 주체인 노동자계급이 어떤 정치활동을 해 나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고민을 가진 동지들을 폭넓게 논의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 논의모임의 목표였다.
두 차례 토론회를 열고 토론문을 각계에 전달하는 과정 속에서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조직력이 절대적인 우리 운동 풍토 위에서 애초 생각했던 만큼 폭넓게 논의되지 못한 한계는 있었다.
다만 노동자의힘이 계급정당추진위원회 구성을 결정하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위한 월례토론회를 여는 등 논의모임에 동의하는 정치조직들이 변혁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원회'를 추진 중인 한석호 전진 전 집행위원장이 계급정당 추진 세력에게 진보신당의 실질적 창당 과정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계급정당 추진 세력에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원회(노건추)가 들어오는 것이 맞다. 진보신당이 생태 가치, 적록연대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굉장히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사회연대전략이나, 총선 시기 심상정 후보와 통합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가 대표적인 우경화 행보다. 꼬집자면 사민주의적 공약과 태도다.
노건추가 노동자 중심 정당을 말하는데, 노동자 중심성은 단순히 직업이 노동자인 사람이 정당에 많이 들어오면 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중심성은 '노동자계급'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신당 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왼쪽에 있는 사람들을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왼쪽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노건추가 내세우는 주장에 일치하는 행동이다.
노건추의 뜻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없지만, 정치운동을 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편을 형성하기보다는, 어렵더라도 실제 목표로 하는 것, 지향하는 것을 쫓아서 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니냐.
노건추는 같이 하다가 갈라서게 되더라도 일단 '큰 바다'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런 요구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온 것이 같이 하다가 안 되니까 뛰쳐나온 경우라면 우린 처음부터 안 맞다고 볼 수 있다. 노건추가 노동자 중심성을 갖고 정당운동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수적으로 어느 쪽이 우세한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노동자 중심성을 어느 쪽이 더 견지하고 있는 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패권 다툼'으로 끝난 민주노동당 분당..평등파 본질 접근 못해"
진보정당 총선 결과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총선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져서 각자 총선을 치렀는데, 분당 사태는 민주노동당이 정당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당내 패권 싸움 성격이 짙다고 본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서 노동 대중은 혼란을 겪었다. 총선 시기 현장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을 만나보면 선거에 대해 냉소와 짜증, 회의를 보였다. 양당에게 총선 시기 노동자 정치운동을 무력감과 회의감에 빠지게 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 분당으로) 선거에서 부르주아 세력들에게 아주 자유로운 공간을 열어줬다고 본다.
민주노동당 분당에 대한 평가를 이어 달라
민주노동당 분열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운동이 대중으로부터 심판받은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세력이 지난 운동의 실패를 근본적으로 바꿔낼 의지와 내용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분당 과정이 상층의 패권 다툼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근본적 한계는 사회주의 지향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점과, 정당으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배타적 지지에 안주했다는 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원들의 자발성에 기초해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니라 파견된 국회의원들과 부르주아 세력의 정책연대로 운영됐다. 당과 대중조직과의 관계에서도 당은 임단협 등 경제투쟁 중심인 대중조직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노동자의 삶을 옥죄는 근본 문제를 밝혀내고 이를 바꾸기 위한 실천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대중조직을 선거철 동원 대상으로 국한해왔다.
진보신당이 분당 과정에서 종북주의 문제나 진보의 재구성을 꺼내들었는데 사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본다.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부터라도 해야 될 텐데 여전히 그럴 것 같진 않다.
한편 대중조직 활동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분당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과 대적전선을 치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다름을 허물고 전선을 최대한 크게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다.
또 한편으로는 저도 민주노총에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우리 내부에 정말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 민주주의는 상실되고 정파적 논리와 집단적 이기만 남은 상황을 보며 '단결만이 최선'이라는 당위성이 과연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때로 의문이 들었다.
"'계급정당운동 10년 실패'라고 단정할 수 없어"
2008년 계급정당 건설을 목표로 했던 노동자의힘이 총선 이후 총회를 열어 2009년 초까지 계급정당 추진위원회를 건설하기로 목표를 재설정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
노동자의힘이 건설하려는 정당이 전위정당인지 대중정당인지 분명하지 않은 측면이 있어서 호불호를 명확히 밝히기 힘들다. 어쨌든 노동자의힘이 목표로 하는 계급정당에 대해 큰 틀에서 동의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향후 계급정당 추진 과정에서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를 통해 합일점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동자의힘이 지난 10년 간 해왔던 계급정당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0년 동안 뭐했냐'는 질문에 모든 것이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아직 노동자의힘 자체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외부에서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실제 평가에서도 우리 운동이 정세와 주체와 긴밀히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현상만 놓고 변혁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지난 10년은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힘뿐만 아니라 변혁정당을 지향하는 조직들이 정세에 조응하는 역동성이 부족했다고 본다. 지나치게 신중했던 탓에 역동성이 발현되지 못했던 게 아쉽다.
"진보신당, 배타적지지 입장 바뀐 이유 해명해야"
총선 시기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 방침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다수다. 배타적지지 방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통상적으로 배타적지지라고 불리는데, 정확한 내용은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실현한다'다.
대중조직이 정치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느냐 마느냐는 각 조직이 수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배타적지지 방침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단점이 되고 있다면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대중조직 내 특정 정파나 정치집단의 필요에 의해 배타적지지 방침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면 서둘러 철회돼야 한다.
처음부터 배타적지지 방침에 대해 반대하는 동지들도 있었다. 저도 기본적으로 정치방침을 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가장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지금은 정치방침을 정하지 않는 것이 대중조직 단결을 위한 선택인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동안 배타적지지 방침 유지를 주장하다가 입장을 바꾼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상황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배타적지지 방침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진보신당 세력은 과거 배타적지지 방침 결정에 앞장섰던 것으로 안다. 분당 과정과 똑같이 과거에 대한 아무런 평가도 없이 철회해야 한다고 하니 대중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먼저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당 운동은 구분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아주 낮게 보자면, 조합원들이 모여 임금인상을 위해 집중 투쟁하는 것도 정치 투쟁일 수 있다. 노동자정당 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노동자 세상으로 바꾼다는 목표를 가진 당 건설이다. 양자를 구분하지 않으면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에 가는 것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일환이 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변혁정당 추진 세력이 뭉뚱그려지는 것을 이제부터라도 지양해야 한다.
노동자의 계급적 각성은 자신의 기본적인 요구에서 출발하는 데, 이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단계를 민주노조운동이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또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해 노동자 간 계층분화가 일어났고, 민주노총이라는 한 조직에 모여 있지만 조합원 간에 우리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한 차이가 있다. 조합원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조운동을 한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며 이를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사태를 맞게 됐다.
계급적 각성을 통한 정치세력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노동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더 밑으로 내려가서 노동운동을 바꿔내기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부 민주주의 복구가 가장 시급하다.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인양 여기는 풍토를 뿌리 뽑고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민주노총 내부에 어용 세력이 많이 침투해있다. 어용 세력을 척결하는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당 운동, 따로 또 같이"
노동자정당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구분하자고 한 이유는 당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대중조직과 다르게 당은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조직이다. 따라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뭉뚱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노동자정당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조직 토대가 무너진 상태인데, 노동자정당은 반드시 토대가 구축된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인가? 어떤 것이 완성된 뒤에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하는 논리는 맞지 않다. 필요하다면 양쪽에서 서로 노력하고 결의해야 한다고 본다. 당 운동은 당 운동대로 제대로 시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가지 쟁점은 노동자정당 운동에 조합원 전부가 참여할 수 있느냐다. 노동자정당 운동에 걸맞은 자기 결의와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 한해 참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하면 전위정당 아니냐고 따지고 들어올 수도 있기는 한데.......
노동자정당은 의회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앞서 노동자의힘이 주장하는 계급정당이 전위정당인지 대중정당인지 모호하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나는 전위정당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전위정당은 소수인데 어디까지가 소수냐는 판단 기준의 문제가 남아있고, 조직 확장에도 한계가 있다. 대중정당으로 갈 경우 의회전술 채택으로 인해 우경화된 민주노동당의 전례가 있다. 그러나 전위정당도 아니고 대중정당도 아닌 계급정당을 만들자고 하기보다는 저는 오히려 의회정당으로 가되 오류를 극복할 방법을 미리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남미 정당의 경우에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동자정당 운동을 제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본다.
"정당 운동 하려면 '서클 조직' 벗어나야"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당 건설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와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토대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동자정당을 뒷받침할 대중적 토대를 어떻게 복원할 지를 1차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당 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구조에 훈련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조금 더 공고해지는 측면이 있다. 당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서클주의적 정치조직'을 과감하게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서클 안에서 만들어지는 당에 그친다. 그런 당이 실제로 사회를 변혁시키고 대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내용과 규모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나. 진보정치 진영의 동지들이 모두 이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