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나도 모른다.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게 왜 중요한지, 늘 의문이다. “형은 자기 정체성이 없어?” 후배들이 따지면, “정체성이 없는 게 좋은 거 아냐?” 하며 되묻는다. 이리 말하면 보통 농담으로 듣는데, 내 진심이다.
세상에 한 우물만 파는 사람만 있다면 어떨까? 나처럼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딴 우물을 파고 다니는 사람이 있기에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도드라지고 때론 존경받는 건 아닐까?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나의 무식함을. 난 정체성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국어사전에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나온다.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이라? 석가도 예수도 아닌 내가 이 뜻을 이해하고 ‘나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니, 골치가 지끈지끈하다. 나처럼 떠돌기 좋아하는 무식쟁이에게 정체성은 나를 가두는 감옥과 같아, 어째든 싫다. 그냥 내 멋대로 떠도는 존재로 살고 싶다.
물론 남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는 일을 혐오하거나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찾는 그들을 볼 때 늘 존경스럽다. 세상이 다 나처럼 생겼다면 참 재미없지 않겠는가? 가끔은 나도 내가 아닌 무엇인가는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정체성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그것이게끔 해주는 그 무엇일 테니 말이다.
나도 정체성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도 가끔 그런다. 내가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다든지 옷을 깔끔하게 입는다든지 상대에게 예의를 갖춘다든지 술도 마시지 않고 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처럼 한다면 곧바로 나오는 말이 있다. “너 답지 않아. 그냥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아라!” 나의 정체성은 정체성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요 ‘자유로운 영혼’도 사실은 문제가 심각하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표현이고 실제로는 내 꼴리는 대로 산다가 아닌가. 나야 좋지만 내 주위의 사람에게 주는 고통이 보통이 아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일하는 이들도 내가 어디로 튈 줄 몰라 늘 안절부절못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나의 정체성 없음 때문에 가슴 조아리고 피해를 입는다.
요즘 나보다 더한 강적을 만났다.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인간을 보며 내가 이제껏 간직해왔던 나만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낀다. 내 손등을 내가 돌멩이로 찍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아니 배가 갈려 속내장이 쏟아져 나오고 심장이 굵은 소름에 절여져 타는 느낌이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솔직히 나는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자인한다. 사람은 사람이어야 하고, 풀은 풀이어야 하고, 돌은 돌이어야 하고, 꽃은 꽃이어야 하고 산은 산이어야 한다. 그런데 강을 운하로 만든다고 하더니 이제 저수지로 만들고 유원지의 뱃놀이 터로 만들겠다고 굴삭기를 앞세워 나서니 어찌 내가 대적하겠는가. 사람의 뱃가죽을 칼로 그어 내장을 꺼내듯 강의 오장육부를 까뒤집어내고 있지 않는가. 사람의 배를 가르면 ‘살인’이고 강의 배를 가르면 ‘살강’이다. 그것도 조금만 개천도 아닌 한반도의 동맥인 4대강을 통째로 죽이고 있으니 이 국토를 모조리 죽이는 정책이다.
정체성 파괴로 치면 내게 이명박 대통령은 하늘과 같은 스승이다. 하지만 양심으로 따지면 이명박 대통령은 내 우위가 되지 못한다. 나야 정체성 파괴를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는가. 그런데 한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이라는 분은 일개 보잘 것 없는 시민인 나보다도 옹졸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강의 정체성을 죽이고 있으면 죽인다고 해야지 4대강 살리기가 뭔 말인가?
이 솔직하지 못함이 이번 연평도 앞바다 초계함 침몰 사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침몰시간의 오락가락은 물론이고 침몰의 원인도 온갖 유언비어를 난무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공개하라 지시하고는 끊임없이 사실을 은폐하는 군 당국을 감싸 안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국방부장관이나 합참, 또는 사고 초계함의 함장이 나설 일이 아니다. 군 통수권자가 누구인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아닌가. 더 이상 유언비어로 시민들을 불안과 혼동으로 몰아넣어 분열시키지 말아야 한다.
본래 이 글은 4대강이나 초계함을 말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초계함의 블랙홀에 시민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빨아 당겨 의식을 단순화시키려는 그 무서운 ‘독재’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 안보의식과 반공 국시로 시민의 의식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마비시키려는 그 무시무시한 ‘음모’에 대하여 생각하고 싶었다. 스물셋의 나이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를 알리고 싶었다.
초계함의 블랙홀에 빠져 침을 질질 흘리며 헐떡이는 이 땅의 언론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솔직하지 못한 정체성 파괴자 이명박 정권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어난 초계함 사건을 거대한 블랙홀로 만들어 정권연장과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판에 언론의 역할이 무언지 모르고 끌려 다니는 언론의 ‘찌질함’을 비웃고 싶다.
언론들이여! 국방부의 거짓 혀의 놀림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말고, 정말 언론의 정체성이 무언지 고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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