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산업의 노동자들은 기후 변화 문제를 외면하거나 우회할 수 없다. 설령 노동자들이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할지라도, 정부와 자본의 움직임에 의해 노동조건과 고용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어떤 식으로든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부당한 변화를 거부하는 수동적 차원의 대응을 넘어서서, 정당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능동적 대응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기후 변화 문제의 특이성은 노동운동이 전통적으로 다루는 의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 변화 문제는 이제까지 대체로 환경운동의 영역이었다. 따라서 기후 변화 문제에서, 노동운동이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과 역량에 비해, 환경운동의 문제의식과 역량이 더 크고 더 지속적이라는 점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독자적 역량이 불충분한 조건에서, 기후 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과의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한국의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가 서로 만족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연대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너지 산업의 경우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통해 다른 산업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상호 이해와 연대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절대적으로는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에는 여전히 못 미치고 있다.
‘일자리 vs 환경’ 대립구도와 그것의 해결책으로서의 ‘정의로운 전환’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의 역사에서도,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가 언제나 높은 수준의 연대를 보여주었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일자리 vs 환경’이라는 쟁점이다. 즉 일자리와 환경이 대립된다는 인식이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 기능해온 것이다.
환경 보호를 우선하면, 기업의 경쟁력을 위축시켜서 노동자들에게 손해를 가져온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예컨대, 환경 파괴적이고 에너지 다소비적인 산업을 규제하거나 축소시킨다면, 그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고용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일자리 축소에 대한 자본의 협박이 일반화되면서, 특히 세계화 이후 공장 이전을 통한 위협효과가 현실화되면서 더욱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일자리 vs 환경’ 이라는 대립구도는 잘못된 신화이며, 이는 자본가들에 의해서 과장되거나 조작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대립구도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의로운 전환’이 등장하게 된다. 이 해결책의 핵심은 환경파괴적인 일자리를 줄이는 대신에 환경친화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많은 외국 노동조합들은 “정의로운 전환” 즉 환경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주된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기본 전제는 다음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에너지 전환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둘째, 그러한 에너지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가 피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바로 기존의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이 재생가능에너지산업으로 고용 이전을 하는 것, 즉 ‘정의로운 전환’인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장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신규 일자리의 창출.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은 기존 에너지산업에 비해 노동집약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고용 인원이 더 늘어나게 된다. 둘째, 기존 노동자의 고용 보장. 기존의 에너지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받게 된다. 셋째. 순조로운 에너지 전환. 기존의 에너지 산업 축소에 대해 기존 노동자들이 저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과제인 일자리 창출까지 확보함으로서, 에너지 전환이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한계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하고, 상호 이해와 연대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자리와 환경의 대립구도가 지속될 경우,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측면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핵심적인 문제점에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으로서의 ‘정의로운 전환’이 일정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점들을 인식해야만,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 설정을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1) 서구와 한국의 차이를 주목하지 못함
정의로운 전환은 기본적으로 ‘직무 이전’ 즉 이직을 통해 고용안정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을 강조한다. 그리고 교육을 실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금 조성과 노사정 대화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과 유사한 관점과 배경을 지닌 전략들이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과 가장 유사한 것은 숙련 향상을 통한 ‘유연안정성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사회공헌기금/사회연대기금’의 신설, ‘노사정 위원회/사회적 합의주의’ 추진 등도 ‘정의로운 전환’과 일정한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전략들이 한국 현실에서 아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위의 일련의 시도들은 서구의 그것만큼 유효한 전략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는 이러한 시도들이 한국의 특수한 조건들, 즉 서구와 한국이 여러 조건들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간과한 채, 서구의 전략을 그대로 모방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정의로운 전환’ 역시 유사한 한계들을 보여준다. 특히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특수한 대응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정의로운 전환’ 자체만을 따로 떼어내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한 서구 노동운동의 일관된 대응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전략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서구 노동운동의 역사와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조건들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구조조정이라는 문제를 숙련 향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들, 즉 교육과 훈련을 통한 이직 활성화라는 방식. 그리고 실직 동안의 생활보장을 위해 기금 조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정의로운 전환’에 특유한 것이 아니라, 서구 노동운동에서 구조조정에 맞선 일반적 해결방식이었으며, 서구의 독특한 조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다.
이러한 서구의 특징적 조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이 직무급 구조라는 점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적정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들로 인해 숙련이 중요하고 따라서 훈련을 통한 재취업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한국에서 부각되고 있는 정의로운 전환 주장은 서구와 한국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서구의 고유한 해결책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2) 대립구도의 우회적 해결
정의로운 전환은 구조조정의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자본이 부담하도록 만드는 정책이다. 에너지 산업의 재편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주의 깊게 볼 점은 정의로운 전환은 구조조정의 발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즉 기후 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자리가 감소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일자리 vs 환경’ 대립구도를 근본적으로 해소했다기보다는, 다른 곳에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1997년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면서, 고용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절대절명의 문제로 다가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은 고용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과 우려를 활용해서 노사관계와 작업현장을 자신의 의도대로 재편하고 있다. 일자리 축소에 대한 위협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로운 전환’은 구조조정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자본의 위협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키게 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노동자들의 동의와 협력을 통해 순조롭게 에너지 전환을 성공시키려는 애초의 목표에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을 보장하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전제 하에서는,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의 동의와 협력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설령 노동자들이 동의한다 할지라도, 자본의 의도에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에서 ‘일자리 vs 환경’의 대립구도는 ‘전환’이라는 방식으로는 온전히 해소할 수 없다.
지구 생태계를 위해, “기존 일자리를 줄이고, 다른 (친환경적) 일자리를 늘리자”는 해결책의 한계는 구조조정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데 있다. 이처럼 구조조정의 발생을 전제로 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자는 주장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진다.
첫째, “구조조정의 결정 요인은 생산량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동조한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전면화된 이후, 자본은 구조조정의 규칙으로 고용인원을 생산물의 양에 연동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경기 변동에 따라 생산량이 줄어들 경우 구조조정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또한 이것이 노동강도가 계속 강화되는 조건과 결합되면서, 동일한 생산량에서도 더 적은 노동자들이 고용되고 있다. 게다가 설령 생산량이 다시 늘어난다 하더라도, 추가되는 일자리는 더 이상 정규직이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고용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으며, 고용불안은 다시 자본의 힘을 강화시켜, 작업현장은 빠른 속도로 자본의 의도대로 재편되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생산량과 구조조정이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것은 필연적이지 않다. 예컨대,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교사가 반드시 구조조정되어야하는 것이 아니며, 최근 자동차가 적게 팔렸다고 해서 자동차 회사의 노동자들이 반드시 정리해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조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량의 감소와 별개로, 에너지 산업의 노동자들이 현재 어떠한 조건에서 노동하고 있는지, 즉 그들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에 대한 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 적정한 노동시간과 적정한 노동강도가 먼저 기준으로 제시되고 이것이 구조조정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산업의 경우 심야노동을 포함한 교대제 노동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적정한 노동조건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둘째, 근대적․자본주의적 합리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목표는 생산성의 극대화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관점, 즉 ‘최대한 적은 수의 인원이 최대한 적은 비용을 소모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통해, 최대의 생산결과물을 얻으려는 관점’이 바로 근대적·자본주의적 합리성의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기후변화 문제와 같은 생태계 위기의 원인이 바로 근대적․자본주의적 합리성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합리성의 극복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정책적 변화를 넘어서는 차원의 변화, 즉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회원리 차원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윤보다 인간을” 그리고 “이윤보다 자연을” 우선하는 합리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기준점’이 달라져야 한다. 이제까지 사람들의 인식과 행위의 기준, 즉 합리성의 기준은 자연과 노동의 ‘효율성 극대화’이었다. 이는 비용을 타자에게 전가한 채 최대한 많은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합리성의 기준은 자연과 노동의 ‘지속가능성’, 즉 비용을 공정하게 배분하면서 적정한 방식으로 적정한 양의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식론적 차원에서 자연과 노동은 더 이상 도구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주체로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가치론적 차원에서 이윤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생명·정의·공존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구조조정에 대한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근대화·자본주의화의 상징인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악순환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생산성 증가에 따른 고용 축소가 아니라, 생산성 증가에 기반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근대적·자본주의적 합리성을 극복함으로써, 노동체제의 재형성을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정의로운 전환은 일자리와 환경의 대립구도가 필연적이지 않음을 밝혀냄으로써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렇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발생을 전제했기 때문에, 대립구도를 완전히 해소하는 데는 실패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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