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합법화
지난 6월 25일 오후 2시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2명의 다수의견과 1명의 소수의견으로, 이주노조 설립신고를 노동부가 반려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핵심 쟁점이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조설립에 관하여,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란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특정한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이나 구직 중인 사람을 포함하여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출입국관리 법령에서 외국인고용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 고용이라는 사실적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자 하는 것뿐이지, 나아가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이 사실상 제공한 근로에 따른 권리나 이미 형성된 근로관계에 있어서 근로자로서의 신분에 따른 노동관계법상의 제반 권리 등의 법률효과까지 금지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고(노동부)가 이와 다른 전제에서 단지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자격 유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이주노조)가 그 보완요구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고등법원의 판결은 정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취업자격이 없고 강제추방 대상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통해 미래의 노동권을 행사할 주체가 아니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노동부의 논리는 기각되었다.
2005년 4월 24일 설립, 5월 2일 설립신고부터 10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났고 2007년 2월에 노동부가 대법원에 상고한 지 8년 4개월이 지난 시점에야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결성권이 인정된 것이다. 10년을 싸워온 이주노조, 아니 2001년 평등노조 이주지부 시절부터 치면 근 15년 만의 법적 승리이다.
역사적 의미 ; 희생과 헌신, 피땀의 성과
결성 이래 이주노조의 최우선 요구가 이주노조 인정이었다. 정부는 ‘불법외국인노조’라며 소위 불법체류자의 불법노조라는 공격을 끊임없이 해댔고 이는 노조 간부들을 비열하게 ‘표적단속’하는 야만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미행하고 잠복하고 불시에 덮쳐서 폭력적으로 체포하는 방식으로 아느와르 초대위원장, 까지만 위원장, 토르너 위원장, 라주 부위원장, 소부르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 등 많은 간부들이 단속되었고, 단속행위의 법적 시비를 가리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추방되었다. 그 이전에 평등노조 이주지부 시절과 명동성당 농성 당시에 단속추방된 샤말 타파, 비두 등 많은 이들도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이주노동자들의 십 수 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피와 땀의 결과다. 그 희생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성과는 있을 수 없다.
법적 의미 ; 체류자격에 상관없는 노조결성권
이주노조는 출범 당시 간부들을 포함하여 100여 명의 조합원 거의 전원이 출입국관리법 상의 체류비자가 없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러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권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으로서 세계적으로 보아도 의미가 크다. 대개 기존 노조에 가입하거나, 독자적으로 만들더라도 체류비자를 가진 이들이 중심이 되어 노조를 만드는 경우는 많아도, 대다수가 미등록노동자인 노조의 노조인정 여부를 다툰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취업자격 유무와 노동조합법 상의 권리 보장은 별개라는 것을 분명히 한 의미가 있다.
한계 ; 대법원의 직무유기
대법원은 8년을 넘겨서야 판결을 내렸다. 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대법원의 직무유기이다. 대법원의 정치적 눈치보기로 인해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동안 정부는 마음놓고 이주노조 간부들을 탄압하고 강제추방했다. 임기 내내 판결을 제쳐둔 김황식, 양창수 전 대법관들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충실한 심리를 위하여 자료 수집 및 연구 조사, 제반 사정 반영 등에 노력을 기울인 관계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임”이라고 군색하기 그지없는 변명을 내놓았지만 이를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제야 판결은 내놓는 것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또, 말미에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근로자들이 조직하려는 단체가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와 같이 노동조합법이 허용하지 않는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반려될 수 있고, 그러한 단체는 설령 노동조합의 설립신고를 마쳤다 하더라도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하면서, 노조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정부정책 비판 활동에 재갈을 물리려는 듯한 문구를 넣은 것은 과도한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노조결성권 인정이 핵심인 것이고, 나머지는 노조법에 따라 판단하면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효과 ; 조직화의 진전에 밑거름
2005년 당시 노동부의 설립신고 반려가 원천 무효가 된 것이기 때문에 노동부는 즉시 설립 필증을 발급해야 할 것이다. 3일 내에 발급해야 하므로 아마 판결문을 받은 뒤 7월 초면 발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언론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불법체류자들을 합법화해주는 것 아니냐’는 식의 글이 많은데, 노조가 합법화된 것이지 출입국관리법 상의 미등록 체류자들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엉뚱한 논리로 이번 판결을 비난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 물론 이주노동자운동 진영은 꾸준히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주장해 왔다. 이주노조도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조합원 가입을 받고 활동을 해왔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에서 활동해 갈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특히 이주노조 조합원들에게 이번 판결을 매우 기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축하의 인사를 전해오고 있고 조합 가입 문의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가 붙인 불법의 딱지를 벗었을 뿐만 아니라, 이주노조가 옳다는 정당성을 확인한 것이기에 자부심은 더 늘어나고 있다. 최소한 정부가 ‘불법외국인노조’로 공포심을 조장할 수는 없으므로 조합원 확대에 있어 장애물이 하나 제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제 ; 노조활동 활성화, 활동가 육성
이주노조의 역량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노조 합법화 판결 이후 이주노조는 많은 과제가 있다. 조직화를 확대하는 한편, 조합원의 활동을 활성화하고 노조로서 단체교섭 등의 권리를 현실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준비 등이다. 어느 것 하나 쉽지는 않다. 따라서 이주노조가 가입되어 있는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주노동자들이 누구나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이주노조의 활동을 지원하고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주노조가 새로운 10년을 맞이하여 마음껏 성장할 수 있도록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사회운동 진영이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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