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났다. 한나라가 미워 민주당을 찍은 대중들의 심리를 애써 거부하며 웃음을 띠는 민주당, 이번 선거에서 쓴 잔을 마신 진보신당, 인천에서 구청장 자리를 2개 얻은 민노당, 서울 25개 구에서 17개 구를 한 명숙 후보가 앞질렀다고 말하는 국민참여당은 모두 선거시장의 점유율 알리기에 바쁠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는지 민노당은 2012년에도 진보대연합을 하자고 한다. 그러나 아무런 정책도 없이 구태의연하게 인물 중심으로 치렀던 이번 선거는 큰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다면 정당과 무관한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이 진보교육 벨트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고 좌파 성향의 교수들이 진보교육감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번 선거의 의미를 찾으라면 20~30대 젊은 세대들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만이 한나라당의 거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심상정은 이번 선거에서 촛불의 에너지의 힘을 강조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절반만 맞는 말이다. 촛불을 경험한 20~30대에 대한 우리들 세대의 죄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 세대의 불안한 미래는 4.19세대, 386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들이 모두 정규직을 차지하고 있고 부동산과 교육, 주식 등으로 그들의 미래를 잠식해 버렸다. 그런데도 한 편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여전히 직감하지 못하고 선거 결과를 양적으로만 판단하거나 시민들의 ‘마음의 체제’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평화, 생태 등 추상적인 가치가 국민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심 상정의 지적은 올바른 것이나 국민들의 마음에, 불안한 미래에 직면한 세대 문제를 교차시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진보 진영의 패배로 기록되어야 한다.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의 이슈는 경기 교육감에 그 기원이 있었던 것이고 나머지 모든 당들은 그 정책을 표절한 셈이었다.
이번 6월 2일 선거에서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생각한 프레임들이 여지없이 깨지고 다시 한 번 이 명박 정부가 강남 1%만을 위한 정부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 천안함 사건을 통해 북풍 몰이를 내심 기대했던 청와대의 바람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프레임이 박살났다는 것이다. 20~30대 젊은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미래가 더 중요한 것이지 북풍은 관심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뒤흔들면서 젊은이들에게 징집의 공포심을 조장하고 이것이 역풍을 일으켰다.
한나라 당 텃밭으로 여겨지던 경상남도에서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당선되면서 더 이상 영호남 프레임 약발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2008년 촛불을 경험한 세대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낼 능력이 이명박 정부에게는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프레임으로서 민주평화 세력들을 좌파 빨갱이로 모는 마녀 사냥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장악한 영역에서는 해고 파면을 일삼지만 전교조 대량 징계 사태 철회에서 보듯이 민간독재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좌파로 모는 일은 이명박 정부에게 아무런 결과도 주지 못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에게 남은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몰표를 던진 강남1%와 경찰, 4대강 사업으로 이명박 정부로부터 막대한 특혜를 얻은 건설자본들 뿐이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하반기에 경기가 살아난다고 주장하는 MB의 몰상식과 달리 신자유주의는 지금 하강 중이다. 6월 2일 선거에 4대강, 세종시, 무상급식 등 여러 이슈들이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0~30대 젊은이들의 ‘마음의 체제’이자 세대 문제다. 아무런 정책적 대안 없이 이대로 간다면 다음 총선이나 대선의 결과도 명약관화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유시민이든 한명숙이든 혹은 심상정 혹은 노회찬 등 지명도 있는 인물 중심의 선거 공학이 아니라 20~30대 세대들의 움직임에 의해 생겨난 진보정치 공간의 공백 문제다. 20~30대 세대들이 원한 것은 인물이 아니었다. 졸업하자마자 백수로 전락하고 도처에 널린 것이 임시직 등 비정규직뿐이라는 ‘불안정노동’ 내지는 ‘고용 불안정’ 상태가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비대칭적인 선거를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선거 이후야말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진보대연합 등의 실패로 인해 진보정치 공간에 생긴 ‘공백’에 좌파들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또 다시 이제까지처럼 선거공학이나 정치공학 게임으로 선거시장 점유율 계산만 할 것인가? 민노당 강기갑 대표의 2012년 진보대연합 발언은 이 점에서 심각하다. 진보대연합 구상이 민주당에게만 어부지리의 특혜를 주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진보대연합이라는 멍석 깔아주고 거기다가 상금까지 얹어주는 일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처음엔 정책 이야기하다가 선거 시기가 다가오면 결국 멍석을 독점하려고 하는 정치공학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마저 그 멍석 깔기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대권욕에 사로잡힌 자유주의 개혁세력 민주당, 멍석을 독점하려는 민노당,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는 국민참여당, 분명한 자기정체성이 없는 진보신당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도 뚜렷한 의제를 제기하지도 선점 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를 여전히 집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대의 힘을 이번 선거에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투표용지를 들고 나왔는지 살펴야 한다. 그들의 미래에 아무런 힘이 없는 상황이 역으로 그들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역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게 남은 것이라곤 4대강과 세종시 등에서 드러난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와 경찰, 15만 명의 강남 족 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구태의연한 정치에 기반을 둔 모든 프레임이 박살났다. 모든 당들은 평화, 생태라는 추상적인 가치만 내세우고 그것을 진보적인 가치라고 강변만 하고 있다. 당과 무관한 교육감 선거에서 왜 진보교육감이 그렇게나 많이 당선되었는지 아무도 답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반MB 이슈가 진보대연합 이슈를 말아 먹었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 노회찬이든 유시민이든 젊은 세대들의 불안한 미래를 선거에 이용한 것일 뿐이다.
좌파는 이제 대중정치의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20~30대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수탈한 세대임을 고백하자.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처럼 세대 논쟁에서 아들 세대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부동산 값 올려놓은 장본인들이 우리 아닌가. 그 장본인이 민주노총 노조원이든 집행부든 교수든 회사원 이든 노무현 전 대통령이든 우리들은 주식 시장에 뛰어 들고 부동산 시장에 사교육 시장에 첨벙첨벙 발을 들여 놓았고 그 후폭풍을 젊은 세대들이 짊어지게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버지 세대들에 의해 철저하게 수탈당하고 있는 그런 세대들에게 평화, 생태 등 추상적인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착취와 수탈을 구별하자. 자본주의적인 착취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강탈하는 수탈을 좌파의 대중정치적인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자본주의의 기치는 자본주의적인 착취와 이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에서만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대와 성을 초월해 수십 년 동안 부동산에 대해 주식과 교육, 땅에 대해 일괴암적인 욕망만을 쫓아 왔다. 이 욕망에 의해 미래를 수탈당한 젊은이들의 미래를 재구축하는 과제를 좌파의 프로젝트로 받아들이자. 이것에 대한 대안 정치 없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노무현 정부가 2030 프로젝트를 만들 줄 아는 정권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는 개발과 경찰에게만 기대는 깡통 정권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진보신당이든 그들에게는 이런 프로젝트 만드는 능력이 없어 보인다. 노동운동이 빙하기에 접어들었다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투쟁은 착취 영역만이 아니라 수탈 영역에서도 이루어진다. 수탈 영역에서의 투쟁이 착취 영역에서의 투쟁을 다시 고무시킬 수도 있다.
좌파에게는 총선이나 대선이 관심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에 개입하는 것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진보대연합이 개입 논리여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이 왜 애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자. 우리 스스로 일자리를 꿰차고 앉아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들 세대의 책임을 회피하는 개구멍 논리다. 반자본 운동을 한다면서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에 목을 매 자본주의의 생명 연장에 나선다면 그것은 반자본 운동이 아닐뿐더러 운동 자체를 정지 시키는 일이다. 젊은이들의 미래는 불안하고 한국 사회는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다. 파스빈더 영화 제목이 ‘불안은 미래를 잠식 한다’였던가. 젊은이들의 미래를 잠식한 불안의 근원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중장기 프로젝트로 만들어내는 것이 좌파 대중정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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