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슈퍼는 말이 슈퍼이지 낡은 슬레이트 처마 밑에 ‘담배’라는 빨간색 표시판이 없다면 그곳이 동네 구멍가게라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입구에 걸린 간판도 없고 물건들이 놓인 진열대도 없다. 그렇다고 샷시나 유리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장난 레일이 뻑뻑거리는 오래된 목문, 그마저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은 유리창이 깨져 먼지 떼가 잔뜩 낀 비닐을 쳐놓았다. 항상 축축한 물기가 배어있는 시멘트 바닥에 어두침침한 형광등이 빛나고, 나무 판대기를 서너단 쌓아올린 시렁에는 과자랑 사탕, 껌 같은 것들이 널려있다. 한낮에도 촉광의 수명이 다한 형광등은 간혹 꺼져있을 때가 많았고 아이스크림 통에서 흘러나온 흐린 불빛만이 가게를 지켜주었다.
그곳은 본래 슈퍼가 아니었다. 마을로 통하는 삼거리에 홀로 동떨어진 외딴집이었다. 보호수로 지정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삼거리, 왼편이 마을이고 오른편으로 농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자그만 공장들이 군데군데 몰려있다. 그런데 부근에는 마땅한 가게가 없었다. 마침 할 일 없이 소일하던 그 집의 노부부는 아무런 수리도 없이 길가쪽에 붙은 부엌을 트고 그대로 허름한 담배가게를 내었다. 부엌이 곧 가게가 된 것이다.
비록 볼품없는 가게였지만 인근의 공장 사람들에게 삼거리 슈퍼는 무척이나 요긴했다. 담배가 떨어지면 급히 담배를 사러 가는 곳도 그곳이고 야간할 때, 라면이나 간식을 사오는 곳도 그곳이었다. 무엇보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돌리기엔 그만한 자리가 없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파이프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기기 전에, 나는 삼거리 슈퍼를 지나 축사 옆에 있는 샷시공장에서 한동안 화물차 기사로 일했다. 그때는 출근을 하지 않는 일요일만 빼고 거의 매일같이 슈퍼를 들락거렸다. 아침이면 담배를 샀고 짐을 싣고 나오면서는 점심식사 대용으로 빵과 우유를 샀다. 한창 더울 때는 날마다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그리고 모처럼 일이 빨리 끝나는 저녁이면 함께 일하는 기사들과 어김없이 슈퍼에서 소주를 마셨다. 안주래야 새우깡에 오징어포가 전부였지만 할머니가 늘상 꺼내주는 푸짐한 김치가 있었고 간혹 부침개도 곁들여졌다.
이미 인생의 한고비가 꺾인 마흔 중반의 나이, 엇비슷한 또래의 기사들은 살아가는 형편 또한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어찌보면 네 명의 기사들 중에 유일하게 정상적인 결혼을 해서 마누라도 있고 아들과 딸도 있는 내가 아주 특별한 별종이었다. 가장 키도 작고 생긴 것도 그저 그렇고, 더구나 하고 다닌 꼬락서니는 한 열흘 넘게 씻지 않은 사람처럼 지저분한 나는, 신기하게도 가정을 이루고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러나 키도 나보다 크고 인물도 훤출한 김 기사, 허 기사, 장 기사는 다들 이런저런 사정을 안고 있었다.
김 기사는 덤프트럭 운전경력이 15년이었다.
“덤프 할 때가 좋았지... 새벽부터 열나게 밟고 다니고. 야, 씨발! 그래도 그때는 3백 이상씩은 벌었어.”
지금은 백 오십. 십년 전 수입의 반 토막에 불과하다.
“그래서 세상이 좃같은 거야. 내가 진짜, 사고만 안 났어도 결혼도 하고 진짜...”
비 오는 날, 철교 밑 다리를 빠져나오자 마자 커브를 도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무섭게 달려오더란다.
“거기서 브레끼 잡으면 뒤집어지는 거야. 오토바이가 튀어나오는 걸 봤거든. 그게 보이는 순간 벌써 탁, 치더라고!”
“죽었어?”
“죽었지!”
“그 자리서?”
“그럼, 그 자리서.”
“어떡했는데?”
“어떡하긴 씨발, 담배 한 대 피고 경찰 불렀지.”
전재산인 차를 팔아서 합의금을 주고 그는 개털이 되었다. 인명사고를 내보지 않은 나로서는 어찌됐든 사람을 치여 죽인 김 기사에게 어떤 숨겨진 자책이나 죄책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마치 사고 당시, 피투성이 시체 옆에서 피워 물었던 것처럼 여전히 망연자실한 담배를 뻐끔거렸다.
“그때, 결혼할 참이었거든... 그런데 다 까먹고 뭐가 있어?”
그에게는 나이가 열 살 아래께 차이가 나는 애인이 있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그가 결혼을 목전에 두고 사고를 내는 바람에 애인은 말도 없이 도망을 갔단다.
“교통사고도 살인은 살인이야, 임마!”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 기사가 야멸차게 쏘아 부쳤다. 허 기사의 불퉁스런 말에 김 기사가 눈을 확 댑떴다. 평소에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은 술만 먹었다면 티격태격 하다가 반드시 엉겨 붙곤 했다.
“뭐라고? 그래, 나 살인자다. 어쩔래?”
김 기사가 단번에 술병을 쳐들었다. 나와 장 기사가 나서서 말렸지만, 허 기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딸래미 전화 왔어. 그렇잖아도 가야해!”
“뭐? 딸래미? 딸래미 좋아하시네. 야, 그게 어떻게 니 딸이냐? 어디서 애가 둘씩이나 딸린 여자하고... 아이구, 난 차라리 이대로다 늙어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그렇게는 안 살아.”
김 기사의 악담은 말을 너무 함부로 내뱉은 허 기사에 대한 감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허 기사가 걸핏하면 딸래미 자랑을 하는 것이 은근히 못마땅한 이유도 있었다. 누가 봐도 허 기사는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자상한 아빠로 보였다.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귀엽고 깜찍한 딸의 사진이 저장돼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그 딸은 저녁이면 꼭 허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재 말이야. 정식으로 결혼한 것도 아니야. 그냥 이혼한 과부 하나 꿰차고 살면서 무슨. 그것도 재작년, 마흔 셋에!”
내막을 듣고 보니, 허 기사 역시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가고 혼자 살다가 어떻게 지금의 여자를 만나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자에게는 중학생 큰딸과 터울이 좀 있는 초등학생 작은딸이 있는데, 허 기사는 작은딸을 끔찍히도 이뻐했다. 언젠가 회사에서 큰 식당을 빌려 단체 회식을 할 때도 그렇고, 직원들의 자녀 결혼식이 있어 예식장에 올 때도 그렇고, 허 기사는 그 예쁜 딸애를 식당으로 데려와 함께 밥을 먹었다. 딸애는 허 기사를 아빠, 아빠, 하면서 무척이나 잘 따랐고 성격도 굉장히 발랄하고 명랑했다. 나도 처음에는 허 기사가 재혼했다길래 그 딸이 허 기사의 친자식인줄 알았다. 하지만, 허 기사가 의붓아빠임에도 그렇게 딸애와 다정한 모습이라면 주변에서는 허 기사를 진정으로 격려하고 칭찬해줘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늙다리 노총각인 김 기사는 심통을 부렸다. 허 기사에게 무슨 큰 허물이나 있는 것처럼 고깝게 눈을 흘겼다.
허기사는 택시를 불러 타고 휑하니 가버렸다.
“나도 가야겠다.”
유난히 말이 없이 시무룩하게 앉아있던 장 기사도 그만 술잔을 비웠다.
“뭘 가? 집구석에 숨겨둔 마누라라도 있어?”
“내일이 창윤이 생일이야...”
장 기사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창윤이라는 아들과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다. 장 기사의 집이 버스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버스를 기다리는 창윤이를 가끔씩 만났다. 키가 껀정하게 크고 인사성이 밝은 아이, 어느새 자라 제 아빠만큼이나 커버린 아이, 공부는 못하지만 지금껏 속 한번 썩이는 일 없이 축구공처럼 딴딴하고 건강한 아이, 장 기사는 창윤이와 지난 십년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창윤이 여섯 살 때, 창윤이 엄마가 집을 나갔어. 밥상에 달랑 만원 짜리 한 장 올려놓고...”
장 기사는 장사를 하다 쫄딱 망하고 땡전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었다고 했다. 빚에 쫓겨 시골 마을로 들어와 살면서, 그는 노가다를 다니고 아내는 공장을 다녔지만 그 생활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일년 만에 아내는 공장 사무실의 부장하고 눈이 맞아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추었다. 졸지에 엄마를 잃은 창윤이를 어떻게든 기 죽이지 않고 잘 키우려고 그때부터 그는 정말 이빨을 악물고 살았단다.
“누가 돈 있으면 이만 원만 꿔 주라. 케익 사 가게.”
장 기사의 말에 나는 지갑을 열어 보았으나 천원짜리 몇 장이 달랑거렸다. 김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따라 서로가 가진 돈이 없었다. 삼거리 슈퍼 앞 느티나무를 비추는 전봇대의 외등 빛이 많이 흐려진 밤이었다. 술자리가 끝났음에도 우두커니 앉아있는 세 남자의 등 뒤로 스물거리는 안개가 서늘한 뱀처럼 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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