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3개월을 꼬박 최저임금 투쟁과 협상으로 보낸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었다. 6%를 넘기지 못해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했다. 여성연맹을 이끌어오며 누구보다 최저임금 인상을 절실히 느꼈던 그였다.
최저임금 협상이 끝난 지 4일째. 그간의 과정들과 평가를 들어보기 위해 근로자 위원으로 협상에 참여했던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을 찾았다.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서 몸이 아파요. 오늘도 신용산역에서 내려야 하는 걸 꼬박 졸다가 서울역까지 갔다 왔다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이찬배 위원장은 20번의 집회와 밤샘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그뿐이랴. 최저임금 농성 과정에서 경찰과 최임위 직원에게 팔다리를 질질 끌려 패대기쳐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 만큼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최저임금 협상이었다.
때문에 이찬배 위원장은 이번 최저임금 투쟁이 “힘든 싸움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또한 내년을 전망하며 “마이너스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에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점쳤다. 협상 과정에 대해서는 “정부의 인상안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만약 경영계가 아닌 노동계에서 퇴장했으면, 인상안은 4%대에서 그쳤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위 협상, 그 험난한 이야기들
표결을 앞두고 경영계가 퇴장했다. 노동계도 퇴장을 염두 해 둔 것으로 안다. 퇴장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공익위원들은 노사가 합의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양쪽이 너무 팽팽해서 협상이 이어지지 않았다.
퇴장은 피해가 큰 전략이다. 사실 노사가 모두 퇴장 카드를 가지고 들어갔다. 근로자 위원들은 공익위원들이 5%이상의 인상안을 내놓지 않으면 퇴장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퇴장했을 경우, 인상안은 사용자 측 의견에 따라 4.2% 선이 관철됐을 것이다. 퇴장하고 더 올라갈 수 있다면 퇴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퇴장하지 않는 것이 맞다. 퇴장전술은 한 번 쓸 수는 있지만 2번 3번은 쓸 수 없다. 결국 퇴장하게 되면 사용자 안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실 6년 전 최저임금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 전원이 퇴장했었다. 12.2%가 거론됐는데 그것도 적다고 노동계 쪽에서 퇴장한 것이다. 사용자만 표결을 진행해 사용자 안이었던 9.1%가 인상됐다. 그때 너무 힘들었다. 퇴장하고 9.1%가 결정 났을 때 하루 종일 울었다. 자다가도 일어났다. 3.1%의 인상이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생각나서였다. 그 이후 민주노총에서는 퇴장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퇴장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노동계에서 공익위원들에게 많은 비판을 가했다. 공익위원들의 협상 과정을 평가해 본다면.
“공익위원들은 노사 양쪽의 의견이 팽팽하니까 눈치를 많이 봤다. 노동자 편을 들면 사용자가 불만이고, 사용자 편을 들면 노동자가 나가 자빠져서 중재안도 늦게 나왔다.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공익위원들에 대한 압박을 계속적으로 가했다. 7월 2일, 경영계가 수정안을 거부했을 때도 공익위원들을 압박했다.
사실 공익위원들 안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렸다. 5.1% 인상은 29일 일부 공익위원에서 비공식적으로, 구두로 나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5.1%도 일부 공익위원들이 반대했다.
현재 정부가 최임위에 독자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아 공익위원이 독립성을 지킬 수 없다. 기존에는 위원장 1명 정도는 정부에서 추천해도 4명은 경영계에서, 4명은 노동계에서 추천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공익위원 1명 빼고는 모두 바뀌었다. 노동부도 모르게 청와대가 선정한 공익위원이 선정된 것이다. 공익위원들이 바뀌어야 한다. 문형남 위원장 역시 보수 세력이라고 볼 수 있어 보이콧 투쟁을 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원회의가 ‘소모적’이라는 얘기가 있다. 회의체계에 대한 문제점은 없나.
"성질 급한 사람들은 최임위 회의를 없애야 한다고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2년에 한번 씩 하자고도 한다. 하지만 우려되는 얘기들이다. 분명 최저임금 협상에는 한계가 있지만 꼭 필요한 제도다. 명분이 워낙 있는 것이고, 전 국민적으로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 233만 명의 임금을 결정하는 것을 절대 포기 할 수 없다.
최저임금법 개정은 오히려 현 체제에 역행하는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 이번 회의를 진행하면서, 노사가 모두 퇴장하면 공익위원들만으로 표결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 얘기는 최저임금법 개악안에 올라갔던 내용이었다. 공익위원들에 대한 정부의 추천제도는 바뀌어야 하지만, 현재 노사공이 모여 회의를 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는 관행만큼은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황인철 경총 본부장이 퇴장직후 “적은 임금이라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취업 장벽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저임금 미달자가 많은 것은 노동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했기 때문이다. 노조를 만들어 최저임금 미달 사업장을 고발해도 시정명령만 내려오고, 운 나쁘면 돈이나 내면 된다. 검찰에 올라가도 무혐의로 끝난다.
중소기업 역시 최저임금 4110원으로는 구인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 한 바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상회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으로는 외국인도 일하러 안온다고 토로하고 있다.
문제는 실직과 맞물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중소영세상인들이다. 거기서 한두 명 일하는 알바생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장사가 안 되니까 월급을 못 주는 것이다. 실직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가게들이 모두 장사가 잘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택시 같은 경우, 예전과 다르게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교통이 발달해 장사가 안 된다. 그렇다면 택시 정책도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지 않는다.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올해의 성과, 그리고 내년을 전망하며
▲ 민주노총과 여성연맹 조합원들이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이전 최저임금 협상과정과 비교해 올해 협상의 성과를 꼽자면.
“정권에 따라 노동자들의 힘도 달라진다. 6년 전에는 근로자위원 전원이 퇴장했어도 최저임금이 9.1% 인상됐었다. 12.2%가 거론됐는데 그것도 적다고 노동계 쪽에서 퇴장한 것이다. 사용자만 표결을 진행해 사용자 안이었던 9.1%인상이 결정됐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힘들어졌다. 사실 공익위원들에게 25일 정부의 인상안을 들었다. 4.1~4.6%였는데, 우리는 이걸 ‘명박산성’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깨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최저임금 여론화로 4%대의 구도를 깨고 5.1% 인상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명분 있는 인상안은 아니었다. 물가인상률, 경제성장률을 따지면 최소한 7~8%는 받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라 5.1% 인상에 그친 것 같다.”
내년 최저임금 협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상하고 있나.
"내년에는 마이너스 인상안이 제시될 것이라고 본다. 올해도 경영계에서는 ‘마이너스안이 있었었는데 그래도 동결안을 제시했다’고 이야기 한다. 내년 대통령이 임명한 공익위원들 역시 정부안으로 마이너스안을 가지고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최저임금 투쟁은 100만원 쟁취를 목표로 진행해 왔다. 적어도 100만원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이제 90만원이 넘었다. 이제부터 진짜 힘들어 질 것이다.
예전 최저임금이 40. 50만원 일 때에는 퍼센트가 아무리 높아도 인상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만 퍼센트가 올라도 인상액이 뛴다. 여기에 퍼센트의 함정이 있다.
내년에는 무엇보다 마이너스 안에 대비해 고민해야 한다. 투쟁을 위한 투쟁이 아닌,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여론화 시켜서 진정한 국민임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성연맹의 최저임금 ‘3배 투쟁’
▲ 여성연맹 조합원들은 경영계의 동결안 고수를 비판하며, 경총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이번 최저임금 투쟁은 여성연맹의 활약이 독보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성연맹은 최저임금위원회와 경총 앞에서 끈질긴 투쟁을 벌였고, 최임위 앞 노숙 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조합원들은 야간 일을 끝내고 잠 한숨 자지 않고 집회와 농성에 참여했다. 문득 지난한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연맹의 조직화 과정이 궁금해졌다.
여성연맹의 조합원 조직화 과정은 어떠했나.
“이미 작년부터 올해 최저임금 협상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 봤다. 따라서 조합원들과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투쟁 시기를 한 달 앞당겨, 5월부터 조기투쟁을 진행하고 6월에는 전면투쟁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거의 세뇌교육 이었다.
또 하나는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투쟁을 1/3로 줄이고, 만약 지면 3배의 투쟁을 하자고 했다. 이번 선거가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민주당의 승리지 우리의 승리는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승리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승리도 아니었다. 때문에 3배의 투쟁을 결정했다.
작년 6월에는 9번의 집회를 했지만, 올해에는 20번이 넘는 집회를 했다. 올해는 상경투쟁도 3번 했다. 순환투쟁과 집중투쟁, 농성을 나눠서 진행했다. 조직의 상황에 맞게 순환투쟁을 진행했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다."
최저임금 투쟁의 저변이 확대되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부족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25일부터 29일까지 여성연맹을 비롯해 산별노조가 하루씩 투쟁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책임감 있게 투쟁이 되지 않았다. 금속노조도 파업투쟁이 걸렸고, 타임오프 투쟁 등 산별 노조의 일정들이 겹쳤다. 투쟁이 전혀 안되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이 실리지 않은 투쟁이었다고 평가한다.
시민단체 참여역시 이루어져야 한다.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등이 결합했지만 더 많은 시민단체들과 조합원들이 결합해서 일반시민들까지도 참여 할 수 있는 국민 임투를 만들었으면 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여성연맹 위원장 특유의 호탕한 성격이 협상에서 어떻게 발휘되고 있는지가 궁금해 졌다. ‘직설적인 성격’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기에, 사용자와 공익위원들에게 서슴없는 말을 던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직설적인 성격이라 들었다. 협상 과정에서도 직설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나.
"내가 0형이라 원래 직설적이다. 안 그럴 땐 또 안 그런데, 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직설적으로 말을 한다. 최임위 에서도 경영계 측에 “동결안을 우기더니 5원, 10원 인상안이 뭐냐. 조폭이나 돌격대 아니냐. 이건 폭력이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경영계에서 “위원장님 위치도 있는데 녹취록에서 이 얘기는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더라. 그래서 “내 명예는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욕먹겠다. 하지만 이것은 조합원들 모두의 생각이다”라고 거절했다."
“이것 빼고는 예의를 지켰다”며 웃는 위원장의 표정에는 지난한 협상과정에서의 지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최저임금 농성과 집회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의 표정에서도 이런 생기가 돌지 않을까.
2011년 한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 고비는 계속 남아 있다. 3개월 동안 노동자들의 농성과 집회를 이끌어냈던 최저임금 협상은 노동계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고 이후 협상에서도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최저임금 투쟁은 분명 노동계 안에서의 저변을 확대시켰다. 또한 5.1%의 인상안은 어려운 협상 과정에서 따낸 중요한 성과물이었다.
아직 최저임금 투쟁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지금, 벌써부터 내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이 노력대로 내년에는 ‘국민임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올해를 평가하고 내년을 전망하는 과정에서 300만 명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