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선거부터 언급하자.
민주노동당은 6.2 지자체선거에서 기초단체장 3석을 포함하여 142명이 당선되는 역대 최대 의석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안정당으로서의 정체성(자기동일성)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가 다가오자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및, 선거철만 되면 거간꾼처럼 나타나는 통칭 진보개혁세력들은 민주연합이라는 죽은 자의 망령을 다시 불러냈다.
진보신당 김석준 부산시당 위원장은 민주당 김정길 부산시장후보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고 심상정은 실패한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자임하는 유시민에게 투항하였다. 내부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진보신당은 지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초라한 처지로 추락하였다. 민주노동당은 5+4연합과 4당연합이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과 후보에 따라서 민주연합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인천시와 경남도 등은 민주당의 완벽한 2중대가 되었다. 민주노총은 진보연합, 반MB민주연합이라는 두 개의 상이한 입장 속에서 조직된 노동자계급을 조직된 자본가계급의 들러리로 사실상 몰고 갔다.
‘복지’를 화두로 삼은 2012년의 야합
나는 생각을 달리하지만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한 시대의 분기점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8년 촛불항쟁과 2009년 노무현 장례행렬 그리고 연이은 선거에서 보여준 인민들의 저항을 전체 권력의지로 실현하는 중요한 해라는 것이다. 이 판단은 선거일정에 따른 정치관성이 만든 맹동이기에 시절이 무르익지 않은 지금은 다툴 마음이 없다. 하기에 이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묵묵히 듣는다.
“현 정부는 부자와 재벌을 위한 정권이다. 노동자와 인민의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고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고 남북대화와 협력을 후퇴시켜 대결과 전쟁위기로 몰고 가는 반동적 정책을 강화하였다. 이명박정권의 통치 아래 고통 받는 민중의 불만은 저항과 동시에 복지에 대한 강력한 욕구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정치인들 속에서 교육과 의료 등 복지 전반에 인식이 넓어지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일 것이다. 민주당 대표 최고위원 선거에서 모든 후보가 복지를 주장하여 당 강령에 ‘보편적 복지실현’을 명시한 점은 알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 박근혜도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은 중도실용정책과 공정사회를 내세우고 있고 한나라당 지도부는 스스로를 중도보수로 규정지으며 부자기업에 대한 감세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 승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전망은 민주연합세력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되겠다.
문성근의 ‘진보대통합을 위한 100만 민란운동’, 이수호(민주노총 전위원장), 이학영(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손석춘(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이정우(경북대학교 교수), 이부영(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일부의 진보개혁 정치인, 지식인, 시민사회단체인사들의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는 단지 민주당 복권을 열망하는 철지난 몸부림의 재현일 뿐이다. ‘김대중’을 중심으로 했던 80년대 재야운동을 상기하기 바란다.
각 정치세력 진보정당 통합에 대한 입장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은 작년 9-10월에 지도부가 모두 교체되었다. 진보신당은 당발전전략안을 통해 ‘신자유주의 극복과 비정규직 노동, 생태, 여성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복지국가의 건설’을 결정하였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진보정치 세력과 진보적 대중조직, 진보적 시민사회 진영, 지식인 및 전문가 그룹, 개별 인사들을 망라한다’는 의지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출마당시 “진보대통합을 통한 보수-자유-진보의 삼분지계”를 주장하였다.
사회당은 보편적 복지실현의 방법으로서 ‘기본소득’운동을 주장하며 “보수-자유-진보’의 3구도를 목표로 놓고 진보대연합을 추진”하고 있다. “진보의 목표와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다가오는 대선에서 민주대연합도 가능할 수 있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라도 2012년 총선에 진보진영이 힘을 모아야 한다.” 진보신당의 중심인자와 매우 근접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가 취임사에서 밝히고 있듯 민주노동당은“2012년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첫 걸음은 ‘진보정치대통합’을 적극 실행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제 진보진영 대표자 정례회동’제안은 양당간의 온도차를 드러내고 있지만 이미 큰 틀에서 공감이 되어 나온 얘기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보면 제도권의 진보3당은 모두 선 진보대연합 후 민주연합에 찬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비교적 당세가 있는 민주노동당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데,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은 '민중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수립이고 이것은 ‘진보진영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단결해서 중도보수 진영을 견인’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여기서 ‘중도보수 진영’이란 민주당, 국참당 등을 일컫는다. 07년 대선을 앞두고서 7월 27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진보대연합’방침을 결정했을 때 대부분의 간부들은 천정배, 김근태 등을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개진하였다. 보수개혁정당과 연합해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이 정부가 북한정부와 국가연합과 연방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기본노선이다. 주축은 보수개혁정당이고 민주노동당은 보조적 위치다.
민주당정권에 사기당한 10년
기층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김대중 노무현정권 10년은 고통이 강화된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집권기간 동안 비정규직은 20%(300만명)이 증대했고 평등을 향한 사람들의 노력은 무력화되었으며 빈부격차는 확대되었다.
김대중은 1996년 말~ 97년 초 민주노총 총파업으로 김영삼 정권이 비틀거릴 때 신한국당(현 한나라당)과 야합했다. 정리해고 실시를 일시적으로 유보한 것 이외에는 개악 노동법과 반민주법을 거의 그대로 통과시켰다. 1998년 김종필과 연합해서 당선된 초기에는 정리해고법을 앞장서서 제정하여 대량 실업 사태를 일으켰고 근로자파견법은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이다. 한국을 휩쓴 공황을 맞아서는 IMF와 미국의 지휘아래 고금리 기업파산 헐값 해외매각을 강요하여 온 국민의 생존마저 위협했다. 노무현은 과거 한 때의 민주화경력을 이용해 반노동자 정책을 실행했다. 비정규개악법, 노사관계개악법(필수공익사업장 쟁의행위 무력화, 경영상 이유로 한 해고 요건 완화 등)을 도입하여 노동운동을 심하게 탄압하였다. 이라크 파병, 불공정한 한미 FTA 채결은 기왕의 민주화를 향한 우리의 운동이 무엇이었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민주당 집권 10년은 명백한 사기였다.
관념을 넘어 이제 우리는 민주당이 자본가계급의 한 축을 대표하는 엄연한 보수정당임을 체감하였다. ‘범 개혁세력 연합’ 또는 ‘진보개혁세력 연합’을 내세우는 시민운동세력 역시 민주당을 강화하는 돌격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보수정당과의 연합은 진보정당으로서 존재의의를 망각하여 다시 또 사기를 치겠다는 자발적 범죄노선에 불과하다.
진보정치인마저 사기술을 부려서야
소위 진보정치인이 내세우고 있는 반신자유주의 연합은 모순이 뚜렷하다.
첫째, 보다 나은 자본주의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함께 전 세계로 확대된 공황에서도 케인즈주의와 같은 개량 정책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30년 대공황 이후 도입되었다가 70년에 파산된 철지난 자본주의 노선에서 좋은 사회를 전망할 사람들은 거의 없다. 둘째,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확고하게 추진할 정체성 확고한 진보정당이 없다. 민주노동당처럼 단지 자기 존재와 모순된 야합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셋째, 진보정당 내에서 반신자유주의연합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실제 제출되는 정책은 그나마 매우 제한적 수준으로 떨어진다. 비정규직 철폐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으로, 무상보육은 아동수당지급과 공립 탁아소 확대로, 무상의료는 의료보험 보장범위 확대로 축소되고 만다. 그나마 정책을 실현하는 논의 공간을 여의도 섬으로 한정하고 나면 작은 개량조차 취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역사적인 확증이다.
상황이 더욱 불행한 것은 복지 이슈조차 한나라당에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이 2002년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를 들고 나오면서 획득했던 대중적 지지는 현 집권세력이 다양한 이름으로 그 내용을 넘겨받고 있다. 일반적인 충고지만 사실 자본주의체제를 바꾸지 않고는 복지 의제조차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은 ‘복지’ 노선과 같은 오른쪽이 아니라 ‘소유’ 문제에 더 천착된 왼쪽으로 틀어야 보수정당이 감히 흉내 낼 생각을 못한다. 자본과 노동의 분리를 없애자는 근본 마음을 잃고서는 진보의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 원래 정통성 없는 파시스트가 복지 포퓰리즘 정책을 준수하게 뽑아내는 법이다.
소련이 가짜였다면 진짜 사회주의를
사회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역사다. 핵심은 생활수단으로부터 추방된 노동자계급이 생활수단을 탈환하여 온전한 삶을 영유하는 것이다. 붕괴된 소련과 동구권 그리고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가 참다운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공부라면, 그 역사를 무엇이라 부르던 간에 모종의 자본주의 또는 봉건체제였을 것이다. 이상사회를 그렸지만 단지 교훈을 주고 마감했던 비극적 운명을 진심으로 동정한다.
직접민주주의가 관철되는 사회주의를 고민하자.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며 사회주의 주체역량을 축적한다면 언젠가는 객관적 사회조건도 변화되지 않겠는가. 실력 있는 세력화는 요원하기에 대리하고 있는 개인을 향하지만, 나는 절망 속에서 미래의 방향을 올곧게 가리키는 아름다운 정치인을 여전히 찾는다. 당신은 이러한 소박한 꿈마저 포기하였는가?
* 참고 : 정윤광의 미발표 논문 「진보대연합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