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서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교리에 저항하는 이 땅의 전통적인 지혜가 있다. “마음이 편한데 계율을 지키려 왜 노력할 것이며 행동이 곧은데 참선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공동체가 쾌활하고 역동적인 이유다. 비교적 다양한 사상이 만개하고 부드럽게 순화되는 까닭이다. 갑남을녀가 타인의 생활에 참견하여 사상의 게토를 인정하지 않는 기질이다. 하기에 어제는 굳게 지키던 규칙도 처한 상황이 어색하면 곧바로 바꿀 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한다. 내가 발견한 처세술의 원형이다. 사실 이것은 세계인에게도 적용되는 품성이 아닐까 싶다. 사르트르의 말을 비틀어 다시 정의하면 지식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분파의 뒤바뀐 규율 강조
3개 서클과 개별인사가 결합했던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가 비대위체제로 전환되었다. 소위 지도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신들만의 수줍은 판단으로 공동대표를 포함한 일군의 간부들이 사퇴를 하면서 애초 계획된 조직발전 일정에 차질을 만든 것이다.
직접적인 발단은 ‘성원결의 형식’이라는 아주 사소한 문제로부터 출발했다. 논쟁은 지루할 만큼 치열하였지만 일정하게 거리를 둔 관찰자의 눈으로 내가 일기장에 정리한 바는 매우 간단하다. 「'예!'와 '예?'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옮긴다. 소식을 듣고 다소 화가 난 개인의 단상인 만큼 소통의 예의를 갖춘 조심성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s1. 조직결성의 초동강령에 동의하고 함께 하겠다는 창립동지에게.
* 집행부 : (서류를 내밀며) 여기 가입원서 써주세요.
* 총회원 : (밝은 표정으로) 예!
여기엔 상호간 뜻을 모은 굳은 결의와 신뢰가 담겨 있다.
s2. 조직 내 각급 회의와 사업에 결합하여 이미 활동하는 동지에게.
* 집행부 : (서류를 내밀며) 여기 가입원서 써주세요.
* 총회원 : (썩은 표정으로) 예?
여기엔 회원에 대한 집행부의 단속과 완장질이 드러난다.
이 경우 통상적인 규율의 강조는 단지 명분일 뿐이다.
예정된 분열, 아둔한 종파의 자기파멸적 학습이여..
물론 가입원서는 비치하지 않고 가입원서를 받는 자가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는 혁명운동 충성서약에 불과하다. 믿기 어려울 만큼 슬픈 일이지만 이런 전근대적인 의식이 이 땅의 지하생활자들에겐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주의자로서 양심을 검열 받지 않겠다는 항의의 표시로 이것을 거부하면 뒤이어 ‘제명’이라는 숙청절차가 준비돼 있다. 이렇게 되면 명분으로 내걸었던 회원명단 정리 차원의 문제는 실종되고 패거리 의식만 강화된다. 그리고 이어서 발전조직에 즈음하여 해소하자고 결의했던 기존 서클이 의견그룹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출현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되지 않은 주도권 다툼이 마치 불나방처럼 자기산화를 목표로 벌어진다. 분파들의 내부정치가 활발해지는 대신 노동자계급에게 약속했던 당 건설은 기만적으로 표류된다. 이것이 내가 전망하는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다.
사실 분파 형성은 강조할 것도 무시할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노위 자체가 사회주의 혁명운동 중심부 일각의 분파 또는 분파연합이다. 분파주의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집행부의 회원 장악력에 대한 모종의 강박증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계급과 타 분파들에겐 처음부터 적용되지 않았던 서클 대표들의 알량한 지도력을 조급하게 관철시키려는 그 무지를 질타하는 것이다.
지도력은 당 건설 과정에서 검증되어 획득되는 것이지 축적된 성과 없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제기하여, 타 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 바로 ‘지도력’이라는 발칙한 용어다. 더구나 직접행동,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중시하는 동지들에게 지도력 관철이라니, 집행부의 애고이즘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철지난 러시아 유형
내가 알기로 지금의 갈등양상은 분파의 자기노선에도 충실한 모습이 아니다. 인터내셔널 대회를 앞두고 1920년 4~5월에 ‘반동적인 노동조합’ 및 ‘부르주아 의회’ 참여를 옹호하는 레닌의 오만한 팜플렛 「좌익공산주의의 소아병(혼란, 무질서로 번역되기도 함)」은 자신의 상대적 타협노선을 상쇄하는 강조된 규율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다.
불과 몇 년 뒤를 못 본 주장이기에 훗날 많은 사람들은 악명 높은 스탈린체제의 전범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러시아의 역사적 특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적지 않게 배울 점을 새겼지만 세계혁명을 사실상 포기한 사회주의 내셔널리즘의 맹아 역시 역설적으로 상기시킨다. 일국주의는 이 글의 관심이 아니니 다음으로 미루고 규율과 관련된 구절만 여기저기 살펴보자.
“우리 당에 있어서 아주 전적인 그리고 진실로 강철 같은 규율이 없거나, 또는 모든 노동계급의 대중을 즉, 당에 있어서의 후진층을 지도할 능력이 없거나... 없었다면, 2년 반은 고사하고 2개월 반 동안도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현재 거의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성공적인 경험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있어서 절대적인 중앙집권과 엄격한 규율이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의 본질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볼셰비키가 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필요한 규율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심원한 분석이 더 자주 수반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겠는가?”
“오직 볼셰비키 역사만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강철 같은 규율을, 대단히 어려운 조건하에서 확립하고 지속할 수 있었단 원인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인 당의 규율이 유지될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검증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강화되는가? 첫째,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계급의식, 그들의 혁명에 대한 헌신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끈기, 자기희생, 영웅적 행위에 의해”
“가장 엄격한 중앙집권과 강철 같은 규율을 확립하고 성공적으로 지속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러시아의 수많은 역사적 특수성에서 기인하였다.”
“당 원칙과 당규율의 거부 - 이것이 반대파가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르주아지에게 이익이 되도록 프롤레타리아트를 완전히 무장 해제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들 모두는 쁘띠 부르주아적 산만함과 불안정성,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 통합, 조직적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촉진되면 어떠한 프롤레타리아적 혁명운동도 필연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공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당규율의 거부는 자본주의 붕괴의 전야(독일)에서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 혹은 공산주의의 조정국면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로 비약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주아지 타도 이후 3년이 지난) 러시아에서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로의 이행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 계급은 아직도 남아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모든 곳에서 남아 있을 것이다.”
강요된 규율은 허약함의 상징
사노위를 소제로 삼았지만 비단 사노위만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운전면허증처럼 이 나라 혁명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조직 풍토가 노동자 민중의 발전하는 주권의식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문맹자가 다수였던 백 년 전 러시아 볼셰비키 초기 규율이 당시의 지역적 특수성을 이기고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된 지 20년이 지난 2010년에 새삼스럽게 이 땅에서 세계 혁명운동의 보편적 모델이 되리라고는 상정할 수 없다. 관료주의는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관료주의가 심화될수록 규율이 강조된다.
의미 없는 ‘서류질’은 현대인의 작풍이 아니다. 사회주의 운동은 그와는 반대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나는 이념으로서 자율주의를 신뢰하고 있지 않지만 구성원들의 자율성이 최대한 많이 보장된 정치조직이 더 훌륭할 거라는 믿음은 부족하지만 경험을 통해 가지고 있다. 앞장섰던 동지들의 장담대로 사노위가 역사적인 길이라면 좀 더 포용력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거듭 숙의하기 바란다. 하지만 침소봉대하여 문제를 만든 사람들이 그 명성으로 보아 하루아침에 성찰을 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비상대책위원회의 세련된 지혜를 믿겠다. 사회주의 혁명정당! 결코 중도에 주저앉을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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