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독립예술은 거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물론이고 진보로부터, 그들의 막연하고 투박한 기대로부터도 지속적으로 독립해왔다. 때론 정치적 정당성이나 명분을 무기로 독립예술에 대해 무턱대고 요구하고 가르치려드는 좌파의 무례함이, 독립예술을 돈 벌이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우파의 약삭빠름보다 더 재수 없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사회에서 “독립”이라는 명패를 달고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참으로 독한 사람들이다.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이냐?”는 지극히 무관심한 질문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며, 세상의 수많은 괴롭힘으로부터 나름대로 독립하여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 독한 독립예술가 중에 한 명,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오성화 축제감독을 축제 하루 전에 만났다. (열네번째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8월 27일까지 서울 홍대 앞 곳곳에서 진행된다.)
▲ 오성화 축제감독의 모습 |
이원재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활동하신지 얼마나 되었죠?
오성화 9년이요.
이원재 프린지의 전신인 독립예술제가 대학로에서 홍대로 옮겨 온지는 얼마나 되었지요?
오성화 11년째에요.
이원재 여전히 프린지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테니... 프린지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오성화 부드러운 방법으로 세상을 쪼개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예술 활동? (웃음)
이원재 프린지가 어느새 14회가 되었습니다. 매년 인상적인 축제 콘셉트나 테마가 있었는데, 올해는 “예술가 그리고 공간”을 걸었습니다. 어떤 취지인가요?
오성화 프린지가 축제의 거점으로 홍대 앞이라는 곳을 설정한 게 올해가 10년째죠.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이기 때문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거점이 홍대 앞이 된 건데, 그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이 공간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식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축제가 홍대 앞에서 열리는 것이 적합한지부터 시작해서, 홍대 앞이라는 것을 문화적으로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우리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런 측면에서 공간이라는 테마가 나왔던 거예요. 그리고 당연하게 그 화두에는 예술가와 함께 만드는 축제 공동체라는 것이 숨어있는 것이고요. 축제가 갖고 있는 공동체성을 복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예술가와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고민들이 녹아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예술가와 공간이라는 것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축제와 (참여하는) 예술가가 분리되는 서비스 조직이 되어서는 안된다, 결정권이 모두 축제 사무국이나 기획단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축제 공동체, 이것을 현실화시키려는 것에 대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여 예술가들이 함께할 수 있는 대의원제도나 집행위원회제도 혹은 더 나아가서 예술가 협동조합과 같은 고민들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홍대 앞, 예술가와 공간
이원재 올해 프린지의 테마가 공간, 다시 말해서 홍대 앞이라는 말씀을 조금 전에 하셨는데, 프린지가 바라보는 홍대 앞의 오늘은 어떤가요? 프린지가 홍대 앞에서 10년을 보내는 동안 홍대 앞도 엄청나게 변해왔잖아요?
오성화 제가 어제 전화를 받았어요. 걷고싶은거리의 중국집 사장님인데, “왜 올해 프린지 식권 저희 쪽에 안하나요?” 이렇게 물어보셨어요. 상의해보고 전화 드리겠다고 말한 뒤 끊었어요. 한 번도 프린지가 지역경제활동에 기여하고 있다는 증명을 못했는데, 이 전화로 증명을 한거죠!(웃음) 그리고 또 하나, 걷고싶은거리 개발 문제로 상인연합회에서 계속 싸우고 있는데, 그 싸우는 과정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워낙 걷고싶은거리를 많이 쓰니까 우리가 일차 협력대상이 되고 있어요. 최근에 너네가 없으면 우리가 안 된다 이러면서, 올해 필요한 거 다 얘기해라 우리가 다 도와주겠다, 이렇게 설득을 하시더라구요. 문화예술행사가 없어지면 우리가 정말 매력이 없어진다. 신촌 욕하지 말고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이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거꾸로, 그래야 우리도 발언권이 생기는 거고 정당해지는 거고, 그래야 사람들도 이 거리에 온다. 이런 논리인거에요. 이 두 가지가 사실 대표적인 사건인데, 1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작은 행위들이 모여서 지역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원재 해마다 축제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홍대 앞의 상업화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은데요?
오성화 무엇보다 공간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정확하게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프린지가 집을 살까말까 했을 때 그때 샀어야 한다.(웃음) 그땐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거기는 합정동이라 너무 동떨어진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좋은 장소가 되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자본주의 사회인데, 개인적으로 그 시스템을 거스르면서 살려고 노력한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지만, 이미 이 공간에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에 이 시스템에 대해 이렇게 물러날 수 없다고 싸운다면 그것은 이벤트는 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프린지페스티벌은 많은 예술가들을 보호하는 보호장치 역할도 하는 것인데, 그렇게 싸우는 동시에 그 기능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한 번에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삶의 영역을 독자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고민하는 것은 마포구의 옛 청사 공간을 확보해서 집단이주하는 거예요. 마포구청에도 이미 의사를 전달했어요. 최근 홍대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브랜드 옷가게들 등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그걸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싸운다고 해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싸우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에너지도 없고요.
한국사회에서 보면 홍대가 갖고 있는 문화적인 요소라는 것들은 한줌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겠지만, 그게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새롭고 독특하고 신기하고 현실로는 만들어 볼 수 없는 판타지 같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갖고 있는 요소로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한 것처럼, 프린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 그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원재 지난 2월에 ‘홍대앞문화예술회의’가 발족했지요? 지금 부대표를 맡고 계신 걸로 아는데, 홍대앞문화예술회의는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있나요?
오성화 오늘도 회의였는데(웃음)... 거기서 하는 것은 개별단체에서 못하는 관계나 정책의 문제를 논의하고 대응하는 거예요. 걷고싶은거리 개발과 같이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공동대응할건지 말건지, 홍대 앞에서 예술 활동이라는 것은 굉장히 개별적으로 돌아가는데 그 개별성을 존중하면서도 같이 협력할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가 되면 좋겠죠.
이원재 최근 마포구가 추진하고 있는 걷고싶은거리 개발사업에 대한 홍대앞문화예술인회의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오성화 홍대앞문화예술인회의라는 단위로는 대응하지 않을 거에요. 개별적으로는 하더라도... 걷고싶은거리 개발사업은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허점이 발견되었고, 구청장의 승인이 날 수 없었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이 되어 버린 점 등 문제점이 많지요. 프린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상인연합회에서 걷고싶은거리에 검정색 플랑을 걸어놓은 공간에서 그들이 말하는, 그리고 우리가 그 공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활동들을 올해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나와 있는 건축도면을 보면 이미 그 공간은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 아니라 정리된, 세팅된 공간으로서 기능할 것이 뻔해요. 지하의 상가들도 있고, 거리가 깨끗해지는 요소도 있고, 차가 안 다니니까 도보에 좋은 부분들도 있겠지만, 좀 정리가 덜 된 작은 카페 10개가 있는 게 낫지, 아주 깔끔하고 정비된 프랜차이즈 2개가 들어와 있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요.
프린지의 진화, 예술가협동조합
이원재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가장 큰 원칙이자 특징이 바로 자유참가인데요, 그런 맥락에서 프린지의 진화된 형태를 예술가협동조합 같은 형태로 고민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오성화 그렇게 준비하고 있어요. 처음에 시도했던 것은 사단법인이었는데, 아무래 생각해도 사단법인의 제도적 대의성...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작년 말부터 스텝들과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가까운 마포 두레 생협에서부터 각종 협동조합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그렇게 공부하면서 참여 예술가들과 프린지페스티벌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좀 더 본질적으로 참여 예술가들의 주인의식?(웃음) 그런 틀거리를 지금 시점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과정과 시행착오가 아마 올해 말에는 시작될 것 같아요.
이원재그러면 협동조합은 홍대앞문화예술인회의와 관련이 있나요? 그리고 프린지가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요?
오성화 협동조합은 프린지 자체 계획이에요, 아직 홍대앞문화예술인회의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제일하고 싶은 것은... 인민대회? 당대회?(웃음) 모든 협동조합의 예술가들이 다 모여서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충돌하고 소통되는 행사를 가지면 좋겠어요. 기본 욕구들을 서로 표현하고 드러내면서 그 안에서 과연 이 독립예술 판이라는 것이 어떻게 굴러가야 될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의견들이 샘솟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원재 예술가들의 자기 발언, 욕망, 일상... 이런 것들이 소통되고 충돌하는 장이 필요할 것 같고, 그것의 장이 협동조합이 될 것 같고. 구체적인 상으로는 인민대회 같은 것을 상상하시는 거네요. 프린지는 그것을 진정한 축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웃음) 올해 보도자료를 보니 “에코프린지”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후지락페스티벌의 고미제로 프로젝트와 유사한 접근인가요?
오성화 개념은 거기서 가져 온 게 맞아요. 축제라는 게 워낙 대규모의 집약적인 행사다보니 원하지 않게 버려지고 소비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약 300여명이 이 축제를 만들게 되면 자신의 행동반경이나 소비패턴에 대한 약속만 하게 되더라도 그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축제가 갖고 있는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좀 더 지구 환경을 생각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캠페인은 뭘까... 그런 것을 고민하다가 아름다운 재단과 만나게 되었어요.
사실 이번 축제에서 구체적으로 실행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웃음) 한 기술자가 프린지 기간에 태양광을 집적해서 쓸 수 있는 동력 전지를 만들고 있어요. 8월17일 낮 동안 모은 동력을 저녁 축제 때 사용하는 그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대중에게 뭘 보여 줄 것인가 보다는, 축제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축제를 도와주는 자원활동가들의 생각을 변화하는 것도 굉장히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원재 평소에는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대표지만, 축제 기간에는 축제감독이신데, 올해 프린지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꼭 추천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딱 한 가지만.
오성화 글쎄요, 이 프로그램은 생활협동조합의 고민과도 연계되는데요, “독립예술 집담회”라는 프로그램이 축제 기간에 있어요. 그거는 스스로, 프린지가 생각하기에, 독립영역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10년 동안은 적어도 버텼다, 각자의 살아남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 사람들과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10년 전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을 비교해보는 프로그램이에요. 그게 저한테는 가장 중요해요.
교묘해진 세상에서 독립 예술을 한다는 것
이원재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오성화가 생각하기에 지난 10년 동안 독립예술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인가요? 그 집담회의 주제도 그런 맥락인 것 같은데...
오성화 사람들이 독립예술이라는 단어를 이제 많이 알게 되었다.(웃음) 하지만 음... 도발적인 예술가들, 주목받는 예술가들, 겁내지 않아하는 예술가들이 나타나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이원재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립예술을 둘러 싼 지원정책이나 사회적 노출의 기회는 늘어났는데, 독립적인 에너지는 줄어들었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오성화 그만큼 세상이 교묘해졌다고 느끼는 것도 있어요. 젊은 예술가들이 자기 작업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 터는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내 것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내 것을 진정성 있게 만들어 내기 위한 그리고 그런 장을 만들어 내기 위한 투쟁이 절실하지 않아진 것 같아요.
이원재 지금 독립예술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게 뭘까요? 뭐가 제일 어려운 점입니까?
오성화 예술가를 둘러 싼 사회적 조건이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독립예술에만 국한시켜서 얘기하기는 힘들고, 독립예술가 이전에 예술가 일반의 문제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예술가로서 생존할 수 있는 기반 자체, 그런 건 절대적으로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왜냐면 MB정권이 들어오면서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배제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예술가들 스스로도 자기 검열을 하게 되거나 사회 참여에 소극적여 진 것 같아요. 그런 위험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오히려 내년에 대선이 있고 사건이 되게 많은데, 정말로 예술가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창작활동의 기반에 대한 고민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될 놈을 집중 지원해주는 MB정권의 방식에 한계를 느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과도하게 상업화 되어가고 과도하게 창작 외에 너무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그런 시스템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발언하는 예술에 대한 연극에 대한, 예술활동의 의미에 대해 반문을 제기했던 사람이라면 선거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고 표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원재 사람들은 프린지를 축제 기간에 주목하지만, 사실 프린지가 좋은 축제이자 집단인 이유는 축제 기간 이외의 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표적인 게 ‘포스트 프린지 프로그램’인데요. 소개를 좀 해주시죠.
오성화 포스트는 다음이잖아요. 애프터.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그렇게 토해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누구나 기회가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대중을 만나게 할 수 있는 자유참가의 원칙을 지킬 거예요. 그렇게 갈 거고, 그러다 보니까 정말로 절실하게 이 터가 필요한 사람들만이 다가 아니라는 거죠.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이 시스템만으로는 자기 것을 전부 다 보여줄 수 없는 예술가들이 많고,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들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페스티벌만으로는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예술가들도 되게 많았었고요.
지금 2011년에 포스트프린지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독립예술제, 프린지페스티벌 같은 축제가 갖는 기능 외에 독립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응원하고 협력하고 네트워킹 할 수 있는 판 자체를 포괄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프린지페스티벌에서 만난 예술가들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서비스, 맞춤형 협력관계맺기 이런 식으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것이 극장의 시스템이든, 홍보마켓의 방식이든, 창작 이외의 제반 여건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를 자극받게 만드는 사람이나 워크숍 소개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고, 어떤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제작과정에 프린지가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누군가는 하나의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독립예술가나 프린지를 둘러싼 예술 환경, 한국사회의 문화적인 변화, 한국 사회의 현황에 대해 연구하고 발표하고 기록하고 자기작업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연구세미나를 조직해 주는 게 필요할 수도 있어요.
지금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강한 이벤트성의 행사 이외에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프린지의 마음을 흔들었던 예술가들을 더 도와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더 많은 기회를 갖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게 사람들에게 더 소개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에서 나온 거예요. 이 포스트라는 것은 폭발력 있는 축제 성격의 프린지페스티벌 이후에 각 예술가들 별로 어떤 맞춤형 방식이 필요한 건지, 매칭형 관계가 필요한 건지 얘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원재 마지막으로, 지난 9년 동안 프린지 활동을 하셨잖아요. 독립예술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지난 과정에서 사회운동 진영에 불편함이나 불만 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오성화 독립예술인들은 삐딱한 구석이 되게 많아요. 근데 삐딱한 게 길거리에 침 뱉는 것처럼 그렇게 배설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사회참여예술, 사회운동과 그것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것이 저에게는 물음표였습니다. 초기에는 정말 독립예술가들이 삐딱한 시선이 있는 거 맞나 되게 궁금해 했었지요. 나름대로 탐구도 해봤는데, 삐딱한 거는 확실한 것 같아요.(웃음)
사회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예술가라는 자기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삐딱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어떤 자리이거나 행동의 기회라거나 이런 것들을 문화운동하는 사람들, 매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리놔주는 것이 지금의 순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자고 하는 거구요. 그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인터뷰/정리/사진_이원재
녹취/기록_전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