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최인기] |
뜨겁고 긴 7월입니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 내렸습니다. 오후 7시지만 해는 중천에 떠 있습니다. 촛불문화제를 하려면 약 1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시끄러운 대로변을 피해 안쪽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길게 쳐진 펜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참사현장이 있었던 ‘남일당’ 근처도 보입니다.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위와 장마에 맞서 싸운 던 그날처럼 무더위가 사람을 짓누릅니다. 이제 사람들은 퇴근길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찌 보면 평화롭기까지 한 용산입니다.
[출처: 최인기] |
멀리 보이는 저 건물도 사연이 깊습니다. 그러니까 전두환 정부 당시 계열사가 7개나 되었던, 대기업 서열 7번째의 국제그룹 건물입니다. 교복자율화가 되면서 청소년들이 즐겨 신던 프로스펙스 신발로 유명한 기업이었지요. 게다가 매우 독특한 건물외형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5년 정부는 국제그룹의 운영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국제종합건설과 동서증권을 극동건설그룹에 매각하고, 나머지 계열사와 서울에 있는 국제그룹 사옥은 한일그룹에 넘기면서 기업을 해체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두환 정부에게 정치자금을 상납 하지 않아 미움을 받아 그리됐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출처: 최인기] |
유가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참사현장에 모였습니다. 사진은 사고가 발생한 ‘남일당’ 근처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건물을 짓고, 또 누군가 그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이곳은 대박신화의 꿈을 안겨 줬을지 몰라도 용산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참사라는 뚜렷한 기억의 아픔을 안겨준 곳입니다. 2012년 7월 20일 개최된 촛불문화제는 그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인 거 같습니다. 상처는 이렇듯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자각하고 맞설 때만이 치유가 가능한 거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분명히 보게 하고,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 왔으며,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이날의 추모제는 결단하도록 도와주는 거 같습니다.
[출처: 최인기] |
어떤 부동산 관련 자료를 살려보니, 전 국민이 한가구당 한 채씩 집을 갖더라도 약 100만 채나 남아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울시 강남구에서 셋방을 사는 비율이 61% 라고 합니다. 충격적인 통계는 집 100채 가진 사람은 집 부자 30위 안에도 못 든 답니다. 107채 가진 사람이 집 부자 37위라는 미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소유한 땅을 합하면 무려 여의도의 다섯 배의 크기랍니다. 도대체 아이들이 무슨 수로 땅을 모을 수 있었을까요? 대한민국이니 가능한 노릇이라면 그건 참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집은 없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받는 박탈감은 또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최인기] |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펜스로 둘러쳐진 골목길에는 여전히 생계의 터전을 지키고 사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떠날 수 없기에 이곳을 포기하지 못하고 무너진 상권을 붙들고 안간 힘을 쓰며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분은 식당집 주인일테고, 어느 분은 구멍가게 주인인듯 합니다. 새삼 영세자영업자들의 처지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공사장 가림막 뒤편 이면도로에서 제대로 장사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이곳은 기존의 철도청 부지와 서부이촌동 지역을 통합 개발하여 ‘국제업무기능’을 갖춘 명품 수변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시간이 바뀌면 이들의 삶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출처: 최인기] |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을 소유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좀 오래된 자료입니다만 96억 원에 달하는 삼성 이건희 전회장의 집이란 설이 있습니다. 역시 이름값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고위공직자 중 부동산 재산이 가장 많은 사람은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 나리십니다. 아무렴요. 젊은 시절 건설역군으로 이 땅의 곳곳을 파헤치고 두루두루 살피던 경험이 있으니 단연 이 부분에서도 최고일 수밖에 없습니다. 집권 후에도 역시 토건사업을 국정운영의 제 1의 가치로 살아오신 분이니 어련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상속세가 무엇인지, 증여세가 무엇인지, 그린벨트가 무엇인지 잘 아시는 분이시지만 비록 편법이더라도 가족 간의 돈독한 의리로 내곡동에 집 마련을 하신 게 뭐가 잘못 이겠습니까? 대통령께서 공직자 부동산 1위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투기도 중독되는가 봅니다.
[출처: 최인기] |
욕망의 끝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재앙을 여실히 보여준 곳이 바로 이곳 용산입니다. 용산참사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자각하기에 이른 거 같습니다. 하긴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개발지역의 집을 갖고 있던 원주민조차 다시 자신이 살던 동네에 들어가 살 수 없으니 정신을 조금은 차릴 때가 된 거 같습니다. 얼마의 돈으로 인근의 전셋집조차 들어갈 수 없게 되고, 대부분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아 가계 빚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치 월급의 대부분을 대출금 갚느라 소비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비로소 함부로 땅을 파헤치고 아파트를 지을게 아니라는 인식들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또 용산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고, 그들의 희생을 떠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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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용산참사가 터지자 곧바로 내놓은 정책이 소위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여 갈등을 최소화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쟁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형식적인 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 입니다. 해결될 리 만무합니다. 실질적으로 용산참사 이후에도 홍대 앞 두리반을 비롯하여 현재의 명동성당 주변, 북아현 뉴타운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철거지역의 분쟁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분쟁조정위원회’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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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알려진 대로 과거 재개발 지역에서 아파트 입주권을 주듯이 상가 세입자들에게도 개발이 끝난 후 ‘상가 분양권’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입자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또한 상가 세입자들의 휴업보상금을 1개월치 늘려 4개월분으로 상향조정한다는 것도 그리 피부에 와 닫지 않는 현실성 없는 대책일 뿐입니다. 그래서 세입자들은 한 목소리로 ‘공공임대상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철거민들이 ‘순환식 개발과 임대아파트’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이를 하나씩 관철시켜 나갔듯이 ‘공공임대상가’ 마련이 전혀 현실성 없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처: 최인기] |
그날의 참사를 뒤로 한 채 지금은 침묵에 빠져 있는 용산입니다. 부동산 경제가 침체되고 주택가격이 떨어지자 너도나도 슬그머니 발뺌을 하고 나섰습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군데군데 철골자재들이 남아 있고, 커다란 웅덩이에는 빗물이 가득 고여 작은 연못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무도 남지 않고 떠나버린 공터는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진은 용산철거 현장의 물탱크입니다. 3년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무엇인가 외치고 싶은 당시의 심정을 대변하는 거 같습니다. 할 말은 반드시 하겠다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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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화제 마지막 순서를 담은 사진입니다. 경찰들은 또 다시 강제로 행사를 막고 있습니다. ‘꼭 이런 식으로 대할 수밖에 없냐’는 사회자의 절규가 밤하늘을 가로지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풍등을 띄워 올리고 있습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을 뚫고 처음에는 한 개였던 것이 점차 두 개, 세 개로 수많은 풍등이 되어 날아오릅니다. '살인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 라는 구호와 함께 건너편 높이 솟아 있는 건물을 향해 불씨들이 날아오릅니다. 잠시 후면 재가 되어 사라질 불꽃이지만 언제나 가슴속에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용산입니다. 주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왔고, 희생당한 이들의 상징적인 공간, 용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