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2015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지금까지 수 십 번 새해를 맞았지만 철모르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특히 최근은 감흥보다 절망을 동반한 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가운데 새해를 맞는다. 12월 31일, 보신각 부근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지난해의 좋지 않은 기억을 털고 새해를 향한 희망을 염원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그러나 찬란한 폭죽 너머에는 암울한 민중들의 삶과 새해의 정치경제전망들이 중국 발 황사처럼 어른거리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정권의 경제정책은 부동산규제 완화와 빚만 늘린 상태이다. 정부부채가 1000조원, 가계부채 1200조원이니 부채공화국으로 손색이 없다. 여기에 저성장과 양극화의 갈등은 증폭되어 나라 형편이 말이 아니다. 재벌곳간에는 사내유보금이 넘쳐나고 있는데, 불황에 따른 수출저조현상이 위기를 가속화 시킨다고 난리다. 한마디로 자본의 위기라는 주장이다. 위기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불순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 정권은 오로지 재벌을 살찌우기 위한 정책으로 일관하며 수출이 경제발전의 전부인양, 그에 따른 재벌 살찌우기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무역흑자라는 진귀한 결과 속에 수입과 수출은 최근에 볼 수 없었던 감소의 폭을 기록했다. 무역흑자는 수입 감소에 따른 수치비교의 상황일 뿐 경제발전과는 반대현상이다. 여기에 내수조차 급격히 하락했는데, 이런 현상은 박근혜 정권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소비가 늘어나야 내수가 살아난다는 건 일종의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재벌의 이익만을 고려한 것인지, 경제를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결과는 내수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여 진다. 소득이 늘지 않으면 소비지출이 있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일자리는 없애려 하고, 생존을 위한 모든 복지는 그가 내세운 공약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후퇴하고 있는데 내수가 살아날리 만무다.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청년실업률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청년실업을 줄이기 위한 방안들을 발표하지만 실효성이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타임오프를 이용하여 임금을 줄이고,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술수일 뿐이다. 청년실업을 이유로 비용 없이 마음대로 해고하고, 기간제와 파견제 개악을 통해 영원한 비정규노동자를 양산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발상이다. 노동자의 생존을 백척간두에 세워놓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박근혜 정권의 주장은 억측이며 아집일 뿐이다. 이런 발상은 재벌을 살찌울 수는 있으나 경제는 파탄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정치는 보이지 않고 그나마 보이는 것은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고 생존권 요구에 재갈을 물리는 것뿐이다. 모든 사고와 사건들을 재발방지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하기보다는 노동자 민중의 기억에서 지워내기에 급급하다. 일관된 방침으로 언론을 통제, 활용하여 진실보도를 규제하고 정권의 야심찬 논리만을 보도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망각과의 싸움에서 상당한 성과를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은 ‘1번’만이 희미하게 남았고, 세월호 참사는 ‘유병언’만 남기고 지우려고 한다. 교과서는 실록이나 역사는 지우고 자신들과 가족을 영웅으로 미화하려는 소설 같은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해방이후 줄기차게 대립해 온 위안부 문제는 ‘10억 엔’만 남기고 퉁치고 있다. 쇼당을 치지 않았는데 당사자를 빼고 둘이서 협잡하여 합의한 경우는 합의나 협의의 효력이 없는 ‘나가리’라고 한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모든 진상은 엄폐하며 민중을 ‘망각의 늪’으로 몰아넣기 위한 정책만이 판을 치고 있다. 문제는 역사적 사건들이 서서히 잊어지고 있다는데 심각성을 버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은 지리멸렬한 가운데 집권여당의 파시즘은 필연코 권력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억압과 탄압 속에 펼쳐지는 박근혜 정권의 정치는 1972년 유신의 박정희 정권을 따라가고 있다.
새해의 경제 전망 역시 오리무중이며 전 산업이 암울한 전망을 제출하고 있다. 금융은 부동산 활성화에 따른 가계대출증가로 위기의 위험성이 가장 높다. 제조업은 환율과 중국의 영향으로 최악의 상태를 맞고 있으며 건설은 국내외 할 것 없이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꼴이다. 조선은 전방산업인 해운업의 기업회생이 되어야 하는데 수요부족과 중국의 저가수주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환율로 이익을 보고 있는 일본 조선산업은 한국의 조선산업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새해에 별다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노동자 목줄을 조여 위기를 극복하려는 발상뿐이다.
나아가 미국이 또다시 금리인상하면 한국도 같이 인상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여기에는 가계대출 위기와 자영업의 위기 그리고 그에 따른 소비감소로 이어지는 금융 불안은 하나의 시리즈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노동법개악으로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알만한 대기업에서만 수 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며, 이 결과는 노동자계급 대부분이 불안정노동에 내 몰리게 되고 사회곳곳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저성장과 저소득에 따른 저소비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미래의 한국은 경제의 앞날이 어둡기 때문에 노동법을 개악해야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매주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떠드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협박은 도도한 권위와 독재만이 있을 뿐,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허접한 통치행위로 삶의 질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 정책오류에 대한 반성의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해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노동법의 당사자가 노동자인데 노동개악에 대해 노동자와 제대로 된 토론을 한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꽉 막힌 소통의 틈새로 나오는 소리는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이 없는 국가는 존재가치가 아니라 성립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왜 말하지 않는가. 개개인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고 민중의 삶을 파탄 내는 국가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며 이런 국가는 없는 것이 오히려 낫다.
비정상적 국가의 횡포와 탄압은 모든 모순을 하나의 종합선물세트로 포장되어 굴러오고 있으며 노동자 민중의 삶은 ‘자포자기’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정권의 실정과 대형 사고를 망각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 노동자는 도구로 취급될 뿐, 인격이나 기본권은 박근혜 정권의 통치에는 애당초 보이지 않는다. 기억을 지우고 망각의 대가로 정치적 승리와 집권연장의 꼼수가 판치는 것이 2016년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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