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대출의 핵심은 원금과 이자를 같이 분할 상환하는데 있다. ‘비거치식 고정금리 분할상환’이다. 당장 이자 부담은 줄어들지만 원금을 같이 갚아야하기 때문에 다달이 부담해야할 금액은 매우 커진다. 이미 대출설계부터 빚을 충분히 갚아갈 수 있는 담보 대출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이자를 깎아 줄테니 수 십 년 동안 끝까지 나눠서 갚으라는 것이다. 마치 이자혜택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자감축과 부도방지협약을 맞바꾼 계약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융채무자의 ‘안락사’이다. 원래 안락사라는 것이 본인도 알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아니던가! 실제 납입부담이 훨씬 적은 10년짜리 장기적금도 만기까지 보유하는 비율이 절반도 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금융채무자가 미래에 겪을 상환부담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논리는 이미 MB 정부가 2012년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놨던 대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2.6% 대라는 아주 파격적인 금리가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책금융기관인 주택금융공사가 동원되었다. 주택금융공사는 이 대출채권을 받아 주택담보증권(MBS)을 발행하여 자금을 회전시킨다. 그리고 정부가 이 채권을 보증한다. 이것이 바로 수년전부터 추진해온 MBS 시장 활성화이다. 또한 이것은 2013년 봄, 한동안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성장에 관한 ‘멕킨지 2차 한국보고서’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첨언하면 맥킨지는 한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국제컨설팅 업체로서, 미국의 정관계 관료들과 인맥이 닿아 있다. 이미 IMF 외환위기 때 1차 한국보고서를 냈던 바 있는데, 그것이 한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기초가 되었다.)
[출처: <멕킨지 제2차 한국 보고서: 신 성장공식> 요약본, 멕킨지 글로벌 연구소, 2013. 4] |
결국 안심전환대출은 은행들의 리스크를 해소시켜주고 수년간 증가해 온 자산 유동화 시장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한 발파공인 셈이다. 여기에 흔히 상환능력이 되어 보이는 중산층 가계대출자들이 타겟이 된 것이라 봐야 할 것 이다.
특히 이미 고정금리나 혼합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안심전환대출 자격요건에서 제외된 사실은 MBS 시장 활성화가 이 정책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을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미 고정금리를 받고 있는 이들은 MBS 발행 재원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MBS 발행의 신규재원은 현재 변동금리자들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MBS를 발행하기 위해선 대출채권이 '비거치식 고정금리 분할상환’이어야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고정적으로 매달 금융채무자들이 납입하는 돈이 바로 MBS을 매입한 채권자들이 가져가는 이자 수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동금리면 안정된 이자수익을 산정하기 힘들고, 일시상환이면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MBS가 부도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그래도 이자를 감면해주는 것은 특혜가 아닌가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대출받은 대부분의 돈은 아파트 가격이 거품일 때 빌린 돈이다. 당시 아파트 가격이 실제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매겨졌었던 건 다들 잘 아는 사실이다. 가령 1억만 빌리면 될 것을 2-3억씩 빌려서 집을 샀기 때문에, 이미 이들은 수 억 원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어짜피 수 십 년 동안 감가상각에 의해 아파트의 가치는 계속 떨어질 텐데, 이를 처분해서 현금화하지 않는 이상 수 억 원의 손해는 결코 메워지지 않는다. ‘안락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손실이 미래에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일시상환을 위해 살고 있는 주택을 처분한다고 해도, 다시 빚을 내서 다른 거주지 마련해야 하는 악순환에 놓인다. 설령 2주택자라 하더라도 10년 후 노후화된 집을 처분할 때, 이 돈으로 부채원금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조용히 지나간 뉴스가 한 가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시절 파격적인 공약으로 사람들을 혹시나 하게 만들었던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성과 발표이다. 이와 함께 열린 세미나에선 2년 동안의 성과와 발전방향들이 논의되었다. 그런데 이 기금은 출범 초기부터 국민행복이 아닌 은행행복기금이 아닌가라는 날선 비판이 제기되었었다. 실제 운영행태를 보면 표면적으론 채무원금의 절반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부실채권으로 처리된 채권을 시중가격 즉 원금의 3-5%의 가격으로 매입한 후 10년에 걸쳐 나눠받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봐도 기금을 출연한 은행들이 45%라는 차익을 가져가데 된다. 이들의 수익을 위해 채무자는 10년 동안 성실하게 빚을 계속 갚아야만 하는 또 다른 ‘안락사’를 강요하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연소득은 월 평균 4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극빈한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남은 빚을 갚고 싶어도 갚을 수가 없는 상태에 있다. 안락사’는커녕 ‘급사’할 지경에 놓여 최소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캠코는 채무자들이 절반을 탕감 받았다는 혜택을 강조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사업을 두고 “빚 절반이라도 받아내고자 하는 채권추심업”이라 비판한다.
평균 6년 넘게 연체한 이들은 기업으로 치면 사실상 부도가 난 상태이다. 기업이 부도나면 법정관리 절차를 밟아 파산하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파산을 통한 면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파산관재인제도’는 관재인을 선임하기 위한 비용을 채무자 개인이 부담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관재인들이 채무자들의 파산신청을 원활하게 돕기 보다는 채무조정을 권고하여 빚을 계속 갚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안락사’를 끝까지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채무조정 프로그램에서도 다시 탈락하는 사례가 많아 실질적인 해결은 미뤄진 채 지리멸렬한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선 엉뚱하게도 이런 기금을 운영을 두고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과연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과 은행들에게 지원했던 수십 수백조 원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1조 8000억 원의 국민행복기금이 흑자를 보면서 운영되고 있는 마당에 이를 두고 ‘도덕적 해이’를 거론한다면, 40조 원의 안심전환대출을 위해 정부가 MBS 발행을 보증을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으로 비판해야 어울릴 수 있을까? 우린 무엇이 ‘도덕적 해이’인지 사전적 정의를 다시 해야 할 시점에 있다.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은 금융채무자의 ‘안락사’를 가리기 위한 의도적 장치일 뿐, 그 실체는 없다. 하지만 금융채무자들의 손실은 이미 계산되어 있다. 안심전환대출과 국민행복기금은 그 계산서를 다시 고쳐 쓰고 끝까지 받겠다는 채권기계인 셈이다.
그런데 오랜 침체에 빠진 세계경제 속에서 이 기계가 언제까지 작동할 수 있을지 사뭇 의문스럽다. 만약 이 기계를 만든 그 누가 이것을 치우고 다시 원래 계산서를 들이 밀면? 그땐 금융채무자들이 정말 ‘급사’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알면서도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가계부채의 잔인한 현실은 우리에게 다시금 근본적 해법을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