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의문은 두 가지이다. 당정청이 공동으로 국가정책 형성과정에서 다양한 정책을 조사하고 수렴하는 방식이 아닌, 특정 학회의 입장을 공론화하는 것이 민주적인 방식인지에 대해 첫 번째 의문이 제기된다. 해당 학회가 연구 단체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면, 과연 한국연금학회는 공적연금 개혁안을 공정하게 연구할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두 번째 의문이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이러한 방식은 특정 집단의 이해만을 대변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민주적이지 않다고 본다. 더욱이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공무원 집단을 철저히 배제한 채, 진행되는 것은 정책결정과정의 심각한 폐쇄성이 구축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데 첫 번째 의문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연금학회의 정당성부분이다. 이 글은 공적연금 개혁과정에서 한국연금학회가 주된 정책결정자로서 역할하는 것이 갖는 위험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는다.
공적연금 축소와 옹호자들
한국의 공적연금은 사회보험료인 기여금에 입각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과 조세에 기반을 둔 기초연금으로 이루어졌다. 기초연금은 많은 논란 끝에 보편성이 탈각된 채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이다. 공적연금 중 국민연금과 공무원 연금은 2000년 이래 지속적인 개혁과정을 겪어 왔다.
공적연금 개혁을 위한 주요 논리는 “재정안정화” 였고, 이로 인해 2007년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은 소득대체율 60%에서 40%로 축소되었다. 국민연금의 급여축소에 옹호했던 전문가들은 2009년 공무원연금의 축소를 주도하기도 했다. 현재 복지부 장관인 문형표는 지속적으로 국민연금 급여 삭감과 보험료 인상을 주장해 왔고, 공무원연금개혁위원회에도 참석하면서 연금 축소를 주장해왔다. 공적연금 축소를 옹호해 왔던 전문가들은 2007년 국민연금개혁을 통해 연금급여를 축소시킨 이후,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이 낮다는 점을 내세워 줄곧 공무원 연금을 “특혜”라는 논리로 비판했다. 더욱이 최근 정부의 사적연금활성화 방안에서는 국가가 공적연금을 축소해 놓고, 축소된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퇴직연금 적용을 강화해야한다는 궤변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국가는 공적소득보장 체계를 축소하고 사적금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정책 결정자로 변화되었다. 그 결과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하향평준화가 경쟁적으로 계속되고 있고, 이것이 가능하도록 국민과 공무원 간의 적대감과 분열이 조장되어 왔다. 즉 공적연금 축소를 옹호하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민연금과 공무원 연금간의 수익비 차이를 내세워 공무원연금이 과도하게 많이 받아간다는 논리로 국민들을 설득해왔다. 이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저급여 구조를 이끈 주체가 따로 존재해야 하겠지만, 동일한 옹호집단에서 재정안정화와 혈세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내세워서 모두가 부족한 공적연금을 받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도 높이고 경제성장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 나라가 되도록 정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적연금의 정치는 공적 부분의 소득보장을 최소화함으로써 국민 각자가 자신의 소득에 따라 민간시장에서 연금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책임은 전체 국민의 노후빈곤을 예방하기 위해서 적정수준의 공적노후소득보장체계를 정비하는 것으로 우리는 배워왔다.
한국연금학회의 실체
2014년 공무원연금 개혁의 중요한 주체로 한국연금학회가 급부상했다. 이 학회에는 이제까지 재정안정화 논리를 내세워 공적연금 축소를 옹호했던 연구자들이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학회의 지배구조에서 특이한 점으로 기관회원으로 가입된 기관의 성격과 이사회 구조의 특성이다.
우선 이 학회의 기관회원으로 가입된 기관은 총 24개로 이 중 민간 금융기관 및 금융기관부설 연구소와 민간연구소가 79%에 이른다.
학회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연구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대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학회의 이사회 구조를 보면 이렇게 순수하게 보기만은 어렵다.
전체 이사회에서 민간시장과 관련된 사람이 15명으로 44%에 이른다. 더욱이 회장과 수석부회장 자리는 비민간금융권인으로, 부회장 2자리는 모두 민간금융권인으로 배치됐고, 감사와 충무 3석에서 두 석이 민간시장과 관련됐다. 일반 이사직을 비교해서 보면 공적연금 대변은 단 3인에 의해 충당된다.
한겨레 최성진기자의 보도1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7월 현재 103만여 명의 퇴직연금 가입자를 확보해서 전체 퇴직연금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유지하는 보험사이다. 노후소득에 대한 민간금융기관들의 이해관계가 이렇게 분명한데, 이러한 기관들과 함께 운영되는 학회에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방안이 적극적으로 고려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총무이사인 손성동(미래에셋은퇴연구소)씨는 “일반적인 학회는 학자들이 주축 되어 좀 더 학술적인 연구 사업을 펼친다면, 우리는 연금사업과 관련해 산학협동을 하자는 취지로 출범했다”고 했다. 연금사업의 산학협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학문과 산업이 협동한다는 것은 결국 시장을 겨냥해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연구보다는 민간연금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이 학회의 중심적인 학술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조직적 특수성이 있는 학회가 공적연금 개혁의 주된 정책결정자로 역할 하는 것은 그야말로 특수한 집단의 이해관계만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지식의 역할과 국가의 책임
민간금융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은 그들 조직의 목적인 영리추구를 위해 경쟁을 극대화할 것이다. 자본의 이러한 성실함에 대해 비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이해가 직접이고 일방적으로 국가정책에 반영되어 입안된다면, 이것은 국가 정당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더욱이 노인빈곤율 해소가 당면한 국가의 과제라는 점에서 민간에 의존한다는 것은 소득이 낮은 국민들의 노후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노후소득을 위해 민간에서 관리되는 기금이 갖는 위험성은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공적연금은 제도 운영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연대와 세대간 연대를 통해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의 노후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매우 실효성 높은 제도이다. 박근혜가 세월호 사태이후 해경이 논란의 중심이 되자 해체시키겠다고 한 것처럼, 문제가 되는 공적 영역을 해체하고 민간에게 맡긴다는 것은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방향이 아니다. 문제가 되더라도 더욱 끌어안고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지식은 거기에 힘을 보태야 한다. 더욱 어려운 사람들과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국가와 지식은 그들에게 의지가 되고 버팀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살고 싶은 나라,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