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전국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전회련서울지부와 전국 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전국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서울지부, 서울 일반노조의 4개 노조로 이뤄진 서울지역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서울 학비연대)는 곽노현 교육감이 참석한 가운데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그러나 교섭 시작 2개월이 지난 현재, 서울 일반노조만이 교섭을 이어가고 있을 뿐 나머지 3개 노조는 서울시 교육청과 협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출처: 학교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
현재 서울시 교육청은 ‘교섭대표노조’인 서울 일반노조와 창구단일화를 통해 5차 실무협상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3개 노조, 서울 학비연대는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있으나 서울 일반노조는 과반 노조로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섭이 만들어지기까지
서울 일반노조는 지난 2월 이미 단독으로 서울시 교육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이후 서울 학비연대가 꾸려지고 전회련을 비롯한 학비연대 소속 3개 노조는 학비연대 차원에서 서울시 교육청과 단체협상 공동교섭을 요구했지만 서울 일반노조는 자신들이 학비연대 내의 과반 노조임을 내세우며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교섭대표노조의 자격을 인정받아 교섭의 체결권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3개 노조는 이에 반발해 지노위에 이의를 신청했으나 서울 일반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한 2월 25일 현재의 조합원 수에서 서울 일반노조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음을 이유로 기각됐다.
지난 7월, 곽노현 교육감이 배석한 가운데 시작된 단체교섭 1차 협상에서 4개 노조와 서울시 교육청은 모두 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서울 일반노조는 다음 달 열린 2차 실무 협상에 참석하지 않았다.
▲ 지난 7월 26일, 서울일반노조를 포함한 4개 노조의 공동교섭 1차본교섭 [출처: 전회련 서울지부] |
▲ 지난 7월 교섭당시 교섭위원 명단 [출처: 전회련 서울지부] |
이같은 진행과정에 학비연대는 교섭대상, 사용자인 서울시 교육청보다 오히려 서울 일반노조에게 분노를 쏟는다. 서울 일반노조 역시 학비연대가 쏟아내는 분노를 납득 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민주노조간의 갈등
학비연대와 서울 일반노조는 모두 민주노총 산하조직이다. 그러나 학비연대는 서울 일반노조가 “소수노조를 배제하고 굳이 독자교섭을 하겠다는 이유를 납득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개별노조의 싸움에서 나아가 교과부를 상대로하는 공동투쟁을 전개해야 하는데 독자교섭을 통해서 연대가 깨지고 실익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 일반노조는 “과반수 노조가 교섭권, 체결권을 갖겠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 일반노조는 학비연대 내에서 가장 많은 조합원이 소속된 과반 노조인데다 구 육성회와 학교 급식노동자의 대다수가 서울 일반노조에 소속돼 해당 직종의 대표성을 띄고 있다. 따라서 서울 일반노조가 대표 교섭권을 갖고 교섭단에 나머지 3개 노조의 대표들을 포함, 이들 직종을 제외한 기타 직종과 3개 노조의 의견을 반영하면 된다는 것이다.
서울 일반노조의 한 관계자는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애초에 공동교섭단을 꾸리기로 합의했던 적도 없었다”며 서울 일반노조의 독자 교섭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강조했다. 공동투쟁의 의미가 퇴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공동투쟁의 의의를 지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지노위에 대표교섭노조 선정 이의신청을 하는 등 법적인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3개 노조”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일반노조를 패권주의라고 비판하며 노조 사무실에 대자보까지 붙이는 이들과 이제와 함께 교섭단을 꾸린다는데 조합원들의 정서적 반발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냉철한 평가 없이 교섭을 함께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학비연대 3개 노조는 “서울 일반노조가 독자교섭을 신청한 사실을 두 달이 지난 4월에서야 인지했고, 서울 일반노조와의 대화 시도가 모두 무산되면서 지노위에 이의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지난 2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서울 일반노조 조합원이 3개 노조의 조합원을 전부 합친 것보다 60명가량 많았지만, 현재에는 오히려 3개 노조의 조합원이 서울 일반노조를 앞질러 서울 일반노조가 과반 노조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 서울시 교육청에 공동교섭 진행을 요구한 기자회견 |
애매한 처지가 된 서울시교육청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된것은 오히려 서울시 교육청이다.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공동교섭을 시작했으나 예상치 못한 노조 갈등 상황에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교육청은 독자 교섭을 요구하는 서울 일반노조와 공동 교섭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까지 시도한 학비연대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있다. 학비연대는 서울 일반노조와 교섭을 진행하는 서울시 교육청이 소수 노조를 배제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 일반노조에게 공동 교섭단을 구성해 공동교섭을 진행하자고 제안했지만, 서울 일반노조는 서울시 교육청이 창구단일화 제도를 무시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며 교육청을 지노위에 제소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현재 서울 일반노조와만 협상을 진행중이다. 지노위로부터 대표교섭노조로 인정받은 서울 일반노조로 교섭 창구가 단일화 됐기 때문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조장래 사무관은 “양 노조 사이에 끼어서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고 말했다. “법이 대표교섭노조인 서울 일반노조로 창구단일화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학비연대와 따로 교섭을 진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 사무관은 “교육청 입장에서는 공동교섭단이 꾸려지고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교섭이 진행되길 바라고 있지만 노조 갈등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사용자 측에서 교섭에 임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조직갈등이 교섭 자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벌어질 일
복수노조의 전면적 허용으로 그동안의 노조운동 현장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창구단일화 제도를 이용해서 교섭권을 움켜쥔 친기업노조와의 대결이 벌어지는 사업장이 있는가하면, 오직 교섭권을 부여쥔 것으로 어용노조에 맞서고 있는 사업장도 있다. 전자의 경우엔 창구단일화 제도가 ‘악’이겠지만 후자의 경우엔 ‘필요악’이 된다. 똑같은 제도의 시행이 각 사업장의 미치는 여파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1사업장 1노조의 원칙이 무너진 지금, 앞으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선이 비교적 명확히 갈리는 민주 대 여용노조의 구도 뿐 아니라 민주노조를 자처하는 노조들간의 갈등도 심심치 않게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같은 조직갈등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의 여파가 어떤 형태로 미칠지 아직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서울 일반노조와 서울 학비연대의 갈등에 “공동투쟁의 의의를 살려 공동교섭을 진행하라”는 권고를 보냈으나 서울 일반노조의 거부로 무산됐다.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는 조직간 갈등에 원칙론 말고는 적절한 해법을 마땅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규약은 조직간 갈등 문제는 중앙집행위원회가 처리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커다란 중집 규모와 각 산별로 모여 있는 중집 구성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나듯, 갈등 해소에 전문성과 적극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지적된다.
대책없는 민주노총, 어떻게 하나?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최근 대두되는 조직간 갈등에 대비한 논의가 민주노총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는 1사업장 1노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조직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힘을 쏟는다는 중집 차원의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동시에 그는 “단체교섭은 해당 교섭노조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과잉대표성을 띠며 독자적인 교섭에 나서는 것 보다는 공동투쟁의 의의를 살려내는 방향에 무게를 싣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민주노총은 올 하반기 투쟁과제로 노조법의 전면개정을 내걸었다. 최근 만도와 유성기업 등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 문제가 노조운동의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제도의 시행은 학비연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단편적인 형태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의 논의와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서울 학비연대와 서울 일반노조의 갈등에서 민주노총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원칙적인 수준에서의 권고가 있었지만 이 또한 사건의 해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산하 조직간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다툼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점차 다양해지는 노동현장의 갈등상황들에 대처 할 수 있는 민주노총 차원의 대안과 매뉴얼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