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앞서 고성과 회의장 봉쇄 등으로 통합진보당의 전국운영위를 파행으로 몰고 갔던 당권파 인사들 사이에도 7기 박자은 한대련 전 의장을 비롯한 한대련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 한대련은 이번 통진당 사태와 무관하다는 한대련의 입장 발표 |
일각에선 중앙위원회의 의장석을 점거하던 당시 당권파 인사들과 한대련 학생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에서 당권파와 한대련 측 학생들의 조직적인 연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대련은 공식입장을 내고 이번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와 한대련은 무관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대련과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내밀한 연관을 입증할 정황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으로 조직적 진출
- 경기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그룹’이 한대련을 장악하기까지
한대련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는 크게 두 정파가 존재한다. 각각 ‘단결그룹’과 ‘혁신그룹’으로 불리는 두 정파는 96년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경선을 시작으로 몇 차례에 걸쳐 한총련 의장과 각 지역총련 의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지속했다. ‘혁신그룹’은 충청총련과 경인총련, 특히 경기동부 지구총련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해 나갔다.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당선자는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던 2002년, 10기 한총련 의장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당시 김재연 당선자에 승리해 당선된 한총련 의장은 김형주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다. 김재연 당선자는 ‘혁신그룹’으로, 김형주 전 의장은 ‘단결그룹’으로 분류된다.
※ ‘혁신그룹’은 학생운동 진영에서 ‘사람사랑 학생회’, ‘노학연대 선봉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사람사랑 학생회(사사)’와 ‘노학연대 선봉대(노선대)’는 그대로 정확히 ‘혁신그룹’과 등치하지 않지만, 정치적 입장이나 조직 구성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아 학생운동 진영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이 주로 참여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당학위)’도 마찬가지다. 학생운동 진영에선 주로 ‘노선대’로 통칭되지만 보다 정확한 용어는 ‘혁신그룹’이라고 판단, 본 기사에선 이들을 ‘혁신그룹’으로 통칭한다.
‘혁신그룹’은 한총련을 수권하려는 노력을 계속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후 ‘혁신그룹’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 적극 결합했다. 한총련이 약화되고 학생운동 주도세력이 한대련으로 전환되던 2007년을 즈음하여 한대련에 집중하여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주요직을 장악한 ‘혁신그룹’은 각 대학의 한대련 가입을 확장시키는 활동을 중점적으로 벌여나갔다.
김재연 따라 한대련 간부들 줄줄이 통합진보당으로
김재연 당선자는 2011년 7기 한대련의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그 전에는 한대련 산하조직인 서울지역대학생연합(서대련)의 집행간부를 지냈다. 김재연 당선자의 보좌진에도 ‘혁신그룹’출신 인사들이 눈에 띈다. 청년 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했다가 이후 김재연 선본에서 보좌진으로 활동한 유 모씨는 200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같은 해 한총련 의장선거에 도전했다 낙선한 인사다. 조 모씨 역시 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했다가 김재연 당시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조 씨는 2003년 국민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고, 북부총련 의장이었다. 한대련 가입을 위한 전체학생투표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던 성공회대 총학생회장 박 모씨도 김재연 당선자의 보좌진으로 있다. 이들 모두 ‘혁신그룹’으로 분류된다. 한대련을 장악한 ‘혁신그룹’ 인사들이 김재연 당선자의 측근으로 있는 것이다.
▲ 김재연 당선자가 5월 2일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한대련 학생들의 연호를 받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뿐 아니다. 김재연 당선인이 집행위원장을 했던 7기 한대련 박자은 전 의장은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 경선 선출위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한대련의 의장과 집행위원장 메이트가 통합진보당의 선출위원과 당선자 메이트로 탈바꿈 한 것이다.
당권파 ‘핵심’도 나서서 한대련 지도
한대련 주류가 된 ‘혁신그룹’과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관계는 비단 ‘청년’들의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석기 당선자 선거캠프의 공보담당을 맡았던 금영재 CNP 전략그룹 대표는 2009년 한대련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거 전략전술 수립’이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듬해엔 한대련이 주최한 ‘사상이 있는 문예 캠프’의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금영재 CNP 전략그룹 대표는 이석기 당선자의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후배이며, CNP 전략그룹의 계열사인 ‘사회동향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청호 금정구의원은 “부정선거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 당 게시판에서 아이디를 바꿔가며 이청호 의원을 비난했던 동일 IP는 이석기 당선자와 금영재 대표가 몸 담았던 사회동향 연구소의 IP”라고 밝혔다. 한대련 학생들에게 ‘선거 전략전술’과 ‘사상이 있는 문예’를 가르치던 이가 당권파의 핵심인사로서 이석기 당선자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세불리기 위해선 부정선거도 아랑곳
통합진보당 당권파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학생운동 진영의 ‘혁신그룹’은 한대련을 장악하기 위해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개입하거나 부정선거를 ‘지도’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이화여대 총학생회 선거개입
합숙소까지 얻어 부정 선거운동 지도, “우리 잘못은 0%도 없다”
2009년 이화여대 총학생회 선거에는 총 3개의 선본이 출마했다. 각각 한대련 계열과 좌파 계열, 당시 총학생회를 수권하고 있던 반권 계열이다. 이후 선거과정에서 한대련 계열 선본이 경고누적으로 탈락했고 선거는 투표율 미달로 무산, 이듬해로 연기됐다.
한대련 계열 선본이 받은 주의와 경고 사유는 ‘허위사실 유포’와 ‘사전 선거운동’이다. 한대련 계열 선본은 리플릿에 “총학생회만이 유독 U카드 사용을 반대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허위사실 유포로 경고 조치를 받았다. 또 “U카드 사용반대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라는 문장을 사용하며 학교 기획처의 교표사용중지 촉구 안내문 사진과 함께 게재 하여 유권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주의를 받았다. U카드는 당시 한대련이 핵심 사업으로 내놓은 학생복지 카드다.
한대련 계열 선본은 이 탈락 조치에 반발하며 선거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당시 후보들은 삭발과 삼보일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이콧 운동을 진행했다. ‘이대학보’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약 70여장의 대자보가 학내 곳곳에 부착됐다.(2009년 11월 23일자 “중선관위와 REAL 이화 선본(한대련 계열 선본) 관련 대자보 약 70개”) 이대학보는 같은 기사에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서 선관위의 결정에 반박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한대련 계열 선본의 전 선본장이 경고, 주의 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좌파 계열 선본도 “선거시행세칙을 어긴 REAL이화는 부정확한 사안을 전달하는 등 부정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는 당장 중단해야 하지만 REAL이화 선본에 대한 조치들 또한 다시 판단돼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이화여대의 학내 여론은 중선관위의 탈락 결정이 과도했다는 흐름으로 흘렀고 선거 보이콧 운동도 효과를 거둬 선거는 20% 남짓한 투표율로 무산, 이듬해로 연기됐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한대련 ‘혁신그룹’의 간부들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세상>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당시 선본을 구성한 학생들은 해당 사안과 관련해 제작한 리플릿과 선전물들이 있었음에도 선거를 지도하기 위해 ‘하방’한 한대련 간부들이 자의적으로 이를 과장되고 자극적인 문구로 수정했다.
정보에 따르면 선거 보이콧 운동도 한대련 간부들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대련 간부들의 지시로 한대련 계열 선본의 선본장이 사퇴하고 서명운동과 강의실 방문 등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한대련 선본은 중선관위와 타 선본들에 “선본과는 관계없는 독자적 활동”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대련 간부들은 이 외에도 학교 근처에 ‘합숙소’를 얻어 세밀하게 선거운동을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선거를 무산시키고 이듬해로 선거를 연기하라는 결정도 신입생 입학을 염두에 둔 한대련 간부들의 결정이었다. 이들은 또 보이콧 운동을 위해 대규모로 대자보를 작성하도록 하고 많은 사람이 쓴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필체를 바꿔가며 대자보를 쓰라는 세밀한 지시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보에 따르면 당시 선본원들의 분위기는 “마치 세뇌당한 것처럼 전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선배들도 선본의 후배들에게 우리 잘못은 0%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이화여대를 ‘하방’하던 간부는 위대한 진출에 진출했다 김재연 당선자 캠프로 단일화한 조모 씨다. 이 외에도 200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였던 신 모씨와 김재연 당선자 본인도 당시 서울대련의 간부로 이화여대를 종종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듬해로 연기된 선거에서 한대련 계열 선본은 총학생회 선거에서 승리했고 그 해 전학대회에서 한대련 가입을 추진했다.
# 성공회대의 한대련 가입 투표 조작
“한대련에 가입하지 못하면 MB정권을 상대하는데 힘을 잃을 것”
성공회대는 2009년 24대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총투표를 통해 한대련에 가입했다. 당시 부총학생회장이던 김모 씨는 “성공회대는 2000학우들의 지지를 받아 민주적인 절차로 한대련에 가입하게 됐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24대 총학생회 집행국원 K씨의 양심선언으로 당시의 총투표에 ‘부정’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당시 총투표 결과는 한대련 가입을 부결시켰지만 김 부총학생회장의 주도하에 결과가 조작됐다. 당시 김 부총학생회장은 개표일 전, 양심선언을 한 집행국원과 함께 미리 투표함을 개봉하여 투표결과로 한대련 가입이 부결된 것을 확인하고 투표결과를 조작했다. 당시 김 부총학생회장은 “성공회대가 한대련에 가입하지 못하면 MB정권을 상대하는데 힘을 잃을 것”이라며 함께 있던 집행국원들에게 조작 행위를 정당화 했다고 알려졌다.
성공회대 총학생회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4대 총학생회 총학생회장 박모씨와 김 부총학생회장이 다음 대 총학생회 선거의 중선관위 위원으로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방기하고 한대련 계열 선본의 편을 들었다는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특히 김 부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 집행국의 한대련 가입 투표결과 조작 양심선언이 있기 며칠 전, 갑작스레 부총학생회장 직을 사퇴하고 한대련 계열 선본의 선본장으로 들어갔다. 이후 부정선거 문제가 학내에서 제기되자 그는 군대에 입대했다.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의 징계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중선관위 위원장이던 총학생회장 박모 씨도 한대련 선본의 구성 당시부터 내밀히 관여했고, 총학생회실을 선본 사무실로 제공해줬다는 의혹을 받았다고 한다. 양심선언을 한 K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 씨는 다음 대총학생회의 정책국장으로 내정돼 있었다고 한다. 또 선본의 후보가 단과대 대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있어 후보자격이 없었음을 알고도 이를 묵인해줬다는 의혹도 있다. 이에 문제를 제기한 학생이 선본회의 참관을 요구했지만 박 총학생회장이 “해당 선본은 ‘비밀선본’이라 참관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며 참관을 거부했다고 전해졌다. 박 총학생회장은 이후 26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최저득표로 낙선했다. 이후 그는 졸업 하고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 씨는 지난 5월6일 통합진보당이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 참고자료에 김재연 당선자 총괄 보좌로 이름을 올렸다.
# 단국대 총학생회 선거 개입
“한대련 간부 선본장 시키지 않으면 후보 내주지 않겠다”
한대련 주류 측의 총학생회 선거 개입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대련의 조직기반이 취약했던 단국대 죽전 캠퍼스에서 한대련 계열 활동을 지속해오던 학생이 후보자로 추천되자 단국대 출신의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당직자인 선배 A씨가 학교에 찾아와 선거 개입을 시도했다. 총학생회장 후보는 평소 한대련 계열의 세미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A씨를 비롯 한대련 간부들과 안면을 익히고 있었다.
A씨는 해당 선본에 한대련 활동가 B씨를 공동 선본장으로 영입할 것을 요구했다. 선본원들이 이에 반대하자 “B씨가 안된다면 내가 직접 선본에 들어가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선본원들이 거부하자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일 선본회의에 후보자를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고 결국 해당 선본에선 선거 등록 마감 직전에 다른 후보자를 찾아야 했다.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A씨는 참관인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당시 후보자는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었다.
▲ 12일 중앙위원회에서 한대련 학생들이 단상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한대련 주류와 당권파, 민주주의 더 이상 훼손하지 말라”
한대련 간부, 정확하게는 경기동부 지구총련과 경기대련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 온 ‘혁신그룹’의 사업 작풍은 학생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학생운동’ 카페에는 선거에 천착하는 ‘혁신그룹’의 운동 방식을 성토하는 글이 많이 게시돼있다. 이 카페에는 “학생운동 보다 선거 출마가 중요하다는 것이 노선대(혁신그룹)의 사고방식”이라거나 “노선대(혁신그룹)는 목적이 학생운동이나 대중사업이 아니라 총학 수권에 있기 때문에 총학 선거에서 반운동권이 당선되건 다른 학생운동이 당선되건 그들은 같은 결과라고 생각할 듯” 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실렸다. “학생운동을 잘하던 고려대에서 반운동권 세력이 크게 약진하고 있는데는 노선대(혁신그룹)의 책임이 90%이상”이라는 말도 있다.
2011년 한대련 집행위원장을 지냈던 김재연 당선자와 그의 수행보좌 박모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대련 간부들의 많은 수가 학생운동을 마치고 통합진보당을 통해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한다. 이화여대의 선거부정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간부 조 모씨도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결과 발표에 고성을 지르던 박자은 전 의장처럼 이들은 통합진보당 내 ‘당권파’로 활동하게 된다.
성공회대의 선거부정 사건을 양심고백 한 당시 총학생회 집행국원 K씨는 “이런 사람들이 진보정당을 장악하고 있어선 안된다”고 얘기했다.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선거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부정이든 저지르고 이를 ‘대의를 위해서’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작태”가 기성 정치에서도 반복돼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K씨는 “당권파의 조직적, 관행적 파행이 멈추기를 바란다”면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더는 훼손하지 말라”고 말했다.
▲ 12일 중앙위원회에서 한대련 학생들이 단상을 점거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