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선 “대통령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는 SBS 보도에 격분했다. 또 추측기사를 써대는 SBS 기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기레기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놀란 SBS는 대통령이 당초 팽목항에서 희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도 만나 위로할 예정이었으나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비롯한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며 팽목항을 떠나는 바람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수정했다.(붉은 상자 안)
언론은 1년 전 당일에도 정부가 주는 정보만 믿고 ‘전원 구조’라고 써 자신들의 이름 앞에 ‘기레기’라는 인식표와 함께 이 길고 긴 갈등의 서문을 열었다. 바로 하루 전날 언론노조가 언론단체들과 함께 ‘기레기는 과연 사라졌나’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어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소용없었다.
SBS는 뭐가 그리 급해 확인도 않고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다고 앞서 나갔을까. 하루에도 수백건씩 기사를 쏟아내는 속보경쟁에 뒤지지 않으려는 강박이 유가족과 국민들의 마음을 할퀴고 있는데도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취재 구조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기레기는 따로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3면 머릿기사에 <팽목항 유족, 대통령 방문 소식에 분향소 폐쇄하고 떠나>라는 제목을 붙여 팽목 분향소 상황을 분 단위로 상세하게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이 갈등에서 노린 건 따로 있다. 조선일보는 갈등을 단순히 갈등만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3면 기사에선 당시 갈등 상황을 있는 그대로 썼지만, 사설로 유족들을 맹비난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을 <대통령 거부한 세월호 유족들, 대한민국과 등지겠다는 건가>라고 달았다.
조선일보의 재주에 놀랍다. ‘박근혜 정부 VS 유족+국민’의 구도를 ‘박근혜=국민 VS 유족’으로 돌리는 신통한 마술을 부렸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대통령을 끝내 거부한 유족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과 등을 지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로 끝난다. 16일 팽목항 상황을 ‘분향소 폐쇄... 돌아서는 대통령’(한겨레 5면)이란 사진으로 끝낸 한겨레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국민일보처럼 정부가 따로 주최한 국민안전 다짐대회 장면을 꼼꼼히 취재해 <“장관님 들어오실 때 박수를” 어이없는 정부 추모 행사>라는 제목으로 싣는게 더 언론다워 보인다. 정부가 유족들과 별도로 서울 코엑스에서 벌인 제1회 국민안전 다짐대회에서 국민안전처 박인용 장관이 행사장에 입장할 때 30여 명의 군악대가 일어나 팡파르를 울리고 참석자들이 큰 박수를 치는 어이없는 장면이 연출됐다는 국민일보의 17일자 6면 보도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 나라 위정자와 관료들의 머리가 얼마 썩어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