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서 배우다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의 저항

[편집자 주]‘마르하바, 팔레스타인!’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하는 뎡야핑 님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로 팔레스타인 평화 운동을 통해 되돌아보는 삶과 운동 그리고 팔레스타인 평화운동의 소식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안녕’이란 의미의 ‘마르하바’. 팔레스타인을 향한 반가운 인사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 당부드립니다.

  낙타랑 노니는 동안 뒤에 이스라엘 군용 찌프가 지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현지의 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특정 지역에서 며칠간 활동했었다. 팔레스타인에는 국제활동가들의 현지 활동을 조직해 주는 단체가 몇 개 있다. 내가 합류한 곳은 처음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훈련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훈련 내용은 이전에 받았던 것과 비슷했다. 적절한 옷이나 식사 예절 등 현지 문화에서 유의해야 할 점들, 집회 시위 매뉴얼, 각 지역 현황, 반성폭력 교육 등. 여기에 추가된 것이 활동가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게 활동하는 기간에 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집회에 나가는 날에는 집회 현장 도착 전, 집회 중, 집회 후로 세 단계를 나눠, 현장 도착하기 전에는 현장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미리 그려보며 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계획을 세우고 또 농담을 하며 긴장을 풀어주고, 집회 중에는 한 걸음 물러나 다크 유머를 구사하며 동료들과 서로 돌봐주고, 집회 후 돌아와서는 음악, 술담배, 대화, 울음, 포옹 등 각자에게 맞는 해소 절차를 반드시 가지라는 거였다.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활동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등 쉬는 시간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매우 꼼꼼하면서도 당연해 보이기도 한 교육 내용이 추가된 것은 현지 활동을 끝내고 돌아간 많은 이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실패한 경험이 쌓여서였던 것 같다. 일상적으로 사람이 살해당하고, 집이 파괴당하고, 군인들에게 추행당하는 팔레스타인의 점령 상황은 그대로인데, 혼자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갔다는 것, 점령지에 갇힌 삶을 호소하는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달리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활동가들이 죄책감을 느낀다. 가족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 군인들에게 한밤에 습격당하는 사람들, 무장한 유대인 정착민에게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돌아가서 마주한 자기의 현실들, 취직이 안 된다든지 애인과 헤어졌다든지 하는 지인들의 상황이 너무 하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사람이 죽고 있는데, 정말로 이 시간에 사람이 죽고 있는데,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일상의 균형을 잃은 활동가들이 지인을 만나 팔레스타인 얘기만 미친듯이 하거나, 그들의 '하찮은' 고민에 화를 내거나, 술이나 마약에 빠지는 일도 있다. 그러니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이 문제들이 부차적이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생활의 중심을 팔레스타인에 두고 온 활동가들이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를 겪는다. 큰 소리가 날 때마다 총소린 줄 알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거나, 경험했던 폭력적인 상황을 계속 꿈꾼다거나. 활동가랍시고 갔지만 이스라엘 군인들과 불법 정착민들의 만행을 목도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을 저지할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이 그저 지켜보고 구두로 항의하고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을 지우지 못한다거나.

팔레스타인 친구 집에서 지낼 때, 친구가 자기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뜬 사건들을 얘기해 준 일이 있다. 누군가 죽었고, 누군가 다쳤다고 우울해한다. 그러다 누군가의 개그를 깔깔대며 들려주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혼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들려준다. 그러다 또 누군가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페이스북을 별로 안 하던 나는 친구의 들쑥날쑥한 얘기들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이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이겠구나, 매일 사건이 일어난다고 끝없이 침울해질 수는 없으니까,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었다. 페이스북을 해보니 내 타임라인도 비슷하다. 다만 나는 '안전한' 곳에 있다. 그래서 거리두기가 훨씬 쉽다. 내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든, 연대 운동이 나의 정치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쨌든 점령을 직접 겪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안전하다. 하지만 그게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70년 가까이 점령을 당해온 팔레스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을 수도 있지만,  한국 상황 역시 암울하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어떻게 저항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오랜 점령에 맞서 싸워왔고, 앞으로도 당분간 싸움을 계속해야 할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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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합원

    팔레스타인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나라에서 대처하는 활동가들의 사례를 보니 도움이 되네요. 집회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고, 우리나라 활동가들도 저런 점을 더 신경썼음 좋겠네요.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도 분단 정전상태의 위험국가로 인식하는 듯 하네요.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군대에 의무복무를 하고 있고,

    북한과 긴장감이 고조될 때는 이웃나라 일본은 아주 이단옆차기 호들갑을 떨곤 하는데요.

    우리 나라 국민들은 전쟁상태에서 살고 있지만 정전 상태의 평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긴장이 고조되어도 별 불안을 느끼지 않는 차이가 있지요.

    세월호, 연평도 포격, 천안함… 한국도 위험사회인 듯 하네요.

    특히 건설현장 등 위험한 노동환경이나, 성매매 등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분들도 우리나라엔 상당하게 많은 편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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