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불을 피워 올려본 적이 있나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저승에서는 그만 편히 쉬라고, 못 다 이룬 뜻은 이승에 남은 사람이 잇겠노라고 눈물을 머금고 향불을 올린 적이 있겠지요? 그런데 향을 피우는 이유가 공기를 소독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생각해 보았을까요? 시신을 통해서나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통해서 병균이 공기 중으로 전파될 수도 있는 걸 막아보자는 의도였답니다. 애초에는 기원하는 행위가 아니라 예방 의료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죽은 이 앞에서도 삶을 도모해야 하는 삶 때문에 그나마 면면히 삶이 이어졌겠지만 ‘공기 전파’ 여부를 두고도 설왕설래하는 메르스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평택 쌀과 서산 육쪽 마늘과, 영동 포도와 중국산 두부와, 칠레산 고등어를 먹었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의 일상은 이미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자본이나 노동력뿐만 아니라 사스나 에볼라, 메르스와 같은 질병까지도 풍토병을 넘어 ‘글로벌’하게 되었습니다.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능한 정부”라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에서 개개인이 다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또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봅니다. 어느 병원을 가지 말아야 할 것인지, 감염 여부에 대한 검사를 요청해야 할 것인지, 자가격리 대상자인지를 판단하는데 정보는 결정적이며 개인의 능동적인 대처가 없이는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확진판정을 할 수 있게 하라는 요구도 당연한데 검사가 밀려 판정이 지체될수록 전파 가능성은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휴교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보면 현장에서 권한을 가질 때 더욱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교사협의회나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 협의회가 재량권을 가진다면 더 다양한 문제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육지의 세월호’라고도 하는데 세월호 전에 쌍용자동차가 있었고, 서른 명 가까이가 목숨을 잃은 쌍용자동차 전에 용산에서 철거민들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어디에서는 크고 작은 세월호가 계속되었고 누구에게는 크고 작은 재난이 연속되었습니다. 6년 전 쌍용자동차가 2,646명을 해고시켰을 때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도 정보공개였습니다.
회사의 재무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거기에 따라서 노동자들이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회사를 살릴 방안을 같이 마련해보자고 한 것입니다. 용산에서도 지역 개발은 지역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민주주의적인 주장을 한 것입니다. 강정에서도 밀양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일 년이 넘도록 세월호 문제에서 해결된 것이 무엇입니까? 입법부로, 사법부로, 행정부로 나뉜 삼권분립의 민주주의가 해결해 낸 것은 무엇입니까? 국회에다, 법정에다, 정부청사에다 유가족들이 피눈물로 호소했지만 밝혀진 사실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더욱 커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번 메르스 확산 사태에 대해서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검찰과 경찰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청와대와 정부에서 해낸 일은 무엇입니까?
지진과 해일의 나라인 일본에서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기로 했다는데 그것은 일본의 정치인들끼리 결정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한 지역의 문제만도 아니요 일본 전체의 문제이며 한국과 중국, 심지어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이나 칠레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바이러스에 새로운 백신이 요구되듯이 21세기의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에는 새로운 정치체제-새로운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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