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총파업’이 뭐예요? 먹는 건가요?

[2015 총파업](1) ‘총파업’은 케케 묵은 20년 전 단어일까

민주노총이 오는 4월 말 총파업에 돌입한다. 내달 24일 경 총파업에 돌입한 뒤 5월 1일까지 연속 투쟁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자고로 총파업은 지역이나 사업장 단위를 넘어 모든 노동자가 일손을 놓는다는 뜻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세상은 멈춘다는데, 노동계의 총파업 선포에도 세상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포털 사이트에 ‘총파업’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니 한 보수일간지의 논설이 눈에 띈다. ‘존재감을 잃어가는 민노총’이라는 제목의 논설에는 ‘강성노조의 대표 조직이 선전포고 했는데도 다들 뚱한 표정’이라던가 ‘뜬금없는 총파업’, ‘무분별한 총파업’ 등의 표현이 다수 이어졌다.

민주노총이 정말 무분별한 총파업을 단행해 왔나. 되돌아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노동계를 지켜봐왔던 지난 5년간 세상이 멈춘 적은 없었다. 다만 민주노총이 총파업 계획을 수립하고, 결의하고, 선포했다는 식의 기사는 수도 없이 써 왔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 ‘구속을 각오 할 테니 지도부를 밟고 가시라’는 절절한 총파업 결의 기사도 발견했다. 총파업에 돌입한 뒤 도심 집회를 개최한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총파업에 어느 정도 규모의 노동자가 참여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었다. 정말 집계를 할 수 없는 것인지, 아예 집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다.

민주노총이 다시 총파업을 선포했다. 이번만큼은 뻥파업, 동원파업이 아닌 진짜 총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가능성 여부를 떠나 도대체 노동계가 이야기하는 ‘총파업’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성공적인 총파업으로 기록됐던 96~97년 노동법개정투쟁(노개투) 파업은 벌써 20년이나 지난 일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30대 초반 청년에게 96년이란 아이돌 그룹 HOT가 데뷔한 해일 뿐,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노개투 파업의 잔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총파업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노동인권교육조차 받아보지 못한 세대에게 ‘총파업’은 노동계만의 추상적 단어일 테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총파업, 그게 뭔가요?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엄마, ‘총파업’이 뭐예요? 먹는 건가요?

올해 서른한 살,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중학교 동창 A양. 아무래도 고등학교 담임교사까지 맡고 있으니 아는 게 많겠다 싶었다. 그녀에게 총파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평소 남다른 타자실력으로 카톡 폭탄을 보내던 그녀가 웬일인지 잠잠하다. 한참 뒤에야 답문이 왔다. “총 파업 아냐?” 정확한 의미를 알려달라고 재차 물었지만 씹히고 말았다. 다음날 A는 총파업 질문 따위는 잊은 듯, 커피 마시러 강남역 카페로 나오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 S사에 다니는 서른한 살 B군.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결혼을 하느냐며 스트레스를 준다. 그게 아니라 여차여차 사정을 설명한 뒤 총파업에 대해 물었다. 그는 “총파업의 ‘총’자는 ‘다 총(總)’자를 쓴다”는 둥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았다. 총파업의 구체적인 의미를 묻자 ‘일하는 중이라 통화가 어렵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다, 2년 전 대기업 하청회사에 취업한 서른한 살 C양. 신혼여행을 통째로 해외 봉사활동에 바칠 만큼 봉사정신이 투철한 인물이다. 그녀에게 총파업에 대해 묻자 ‘노동자들의 최후통첩’이라는 답을 내놨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총파업의 모습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는 지금껏 감감 무소식이다.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35세 사업가 D군은 총파업에 대해 ‘노사협의가 불발돼 노측이 다 같이 쳐 드러눕는 것’이라며 사측다운 시니컬한 반응을 내놨다. 서른여섯 살 사회복지사 E군은 총파업을 ‘노동자의 권리’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총파업의 모습은 ‘(노동계가) 해마다 치르는 차례상 같은 것’이라고 답했다. 26세 금융계 회사원 F양은 총파업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녀에게 총파업은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일자리로 돌아가는’ 다소 비극적인 결말을 뜻하는 단어였다.

아홉수를 맞이한 29세 공무원 G양은 사뭇 진지했다. 그녀는 총파업에 대해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거나 지키기 위해, 사용자와의 의견이 불일치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자와의 계약된 의무를 유기함으로써 교섭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긴 정의를 내렸다. 그러면서 총파업이 종종 양보와 배려 없이 다소 과격해지며, 공공부문 파업이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면서 폭력적 파업보다는 평화적 대화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 다음으로는 29세 H양. 그녀는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다. 그녀는 총파업의 정의는 ‘다 같이 파업하는 것’, 총파업의 모습은 ‘다 같이 파업하는 모습’이라는 성의 없는 답변을 해 왔다. 답답한 마음에 <참세상> 선배 기자에게 총파업이 뭐냐는 카톡을 보냈다. ‘무슨 총파업?’이라는 답문 아닌 답문에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결국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는 61세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오락가락했다. 총파업에 대해 묻자 “엄마가 집에서 노동을 총파업하면 어떻겠니? 말도 안 되는 말을 쯧쯧...00(엄마 절친) 같은 사람들은 욕하고 난리겠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 대뜸 “옛날에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유급휴가를 쟁취하고 축제를 열었다”며 “우리는 노동자라는 개념의 역사가 유럽보다 짧고, 그냥 잘 살아보세 하며 많은 걸 참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몽땅 총파업하고 일 안하면 중국이 좋아할 것”이라며 뜬금없이 중국을 경계하다가 “모든 게 상대적이야. 네가 나한테 잘해봐 엄마도 너한테 잘하지”라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이후 허무주의에 빠져 매일 화분에 물만 주는 60세 아빠는 “걔들 만날 총파업해도 별일 없어”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노동자 개인은 자본과 정권에 짓밟힐 수밖에 없는 운명”

긴 시간 노동운동에 몸담아 왔던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사업장 노조와 지역지부에서 간부를 역임하며 활동을 해 왔던 I씨. 총파업이 뭐냐는 질문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공약이잖아”라며 “총 들고 파업”이라는 예스러운 농담을 한다. 이어서 총파업을 ‘모두 함께하는 파업’이라고 설명한 뒤 노개투 파업을 진짜 ‘총파업’의 상으로 꼽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과거 굵직한 파업을 이끌었던 노조 지도부 출신 J씨는 기자의 질문에 “general strike란 산업 전반 또는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을 일컫는다”라는 친절한 답변을 해 줬다. 이어서 “제대로 (총파업을) 하면 세상이 멈춰야지요. 아니면 뻥파업”이라며 “(노개투 파업 때는) 세상이 멈추는 정도는 아니어도 곳곳에 공장이 멈춰서 정권과 자본을 놀라게 했다”고 설명했다.

내년이면 60세가 되는 노동자 K씨. 전노협 시절부터 지금까지, 숱한 아픔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주노조를 지켜온 사람이다. 그에게도 총파업에 대해 물었다. “글자 그대로 모든 노동자가 공장을 멈추는 거지. 노동자가 자본에 할 수 있는 저항 또는 요구관철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노동자들은 왜 총파업을 하는 건가요? “노동자 개인 또는 단일노조로는 거대 자본에 철저하게 짓밟히게 돼 있어. 총파업은 노동자들이 희망을 볼 수 있기에, 또한 노동자가 기계나 일회용 부속품이 아닌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자본에 보여주는 것이기에 인간혁명의 모습이야”

민주노총 사무총국 활동가 L씨에게도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을 왜 하냐는 듯 ‘사전을 찾아보라’며 귀찮아 하다가 ‘취재 중’이라고 하니 그제야 “총파업은 국가 내 노동자 최대 단위의 파업이며 자본과 정권에 타격을 가해 노동자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재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철회 등 4대 요구와 노동소득 중심사회로의 시대적 전환을 위한 선제적 총파업을 내걸고 있으며, 96~97년 노개투 투쟁은 역사적인 투쟁으로 오전에 사업장별로 파업집회를 벌인 후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두행진을 벌이곤 했다”며 거침없는 입담을 뽐냈다.

L씨의 충고에 따라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총파업은 대개 정권을 상대로 하는 고도의 정치스트라이크로 혁명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대학 선배이자 노무사로 활동하는 M씨는 “파업의 공통의 목적이 있을 때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 전체 조직 차원에서 파업에 돌입하는 것으로, 법적인 정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공동의 요구가 확실한 고도의 정치스트라이크일까, 아니면 보수언론에서 비판하는 ‘뜬금없는 총파업’일까.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총파업’을 하냐고요?”

현재 민주노총이 총파업 요구조건으로 내건 4대 요구는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죽이기 정책 분쇄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 △최저임금 1만원 쟁취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및 노조법 2조 개정,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의 해고를 쉽게 하는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과, 기간제와 파견제와 같은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에서 늘리는 방안 등을 준비 중이다. 공무원, 교사의 연금 삭감이 예고되고 있고, 노동자 8명 중 1명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 A양은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으로 심란함을 토로한 바 있으며, S사 노동자인 B군은 기업의 무노조 방침으로 찍소리 한번 못 내고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허구한 날 계약해지를 당하던 C양에게 ‘해고’는 곧 절망이었고, ‘비정규직’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비록 총파업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더라도, 노동자라면 누구하나 피해갈 수 없는 위기 상황은 분명한 듯싶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총파업’이냐는 면박을 듣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총파업은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불과 세 달 전인 지난해 12월 12일, 이탈리아에서는 노동자 100만 명이 총파업을 벌였다. 마테오 렌치 사민주의 정부가 기업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노동법 개악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까닭이다. 기업의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려는 것은 이탈리아 정부나 한국정부나 다를 바가 없다.

[출처: 일마니페스토]

이날 총파업에는 노동자를 비롯해 실업자, 학생 등도 거리로 나와 가두시위를 벌였다. 밀라노, 로마, 제노바 등 전국 54개 지역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도시는 마비됐다. 버스, 지하철, 철도, 항공 등 교통이 멈춰 섰고 학교와 대학, 병원 등도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 2002년에도 약 3백 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정부의 노동시장 개악안을 좌초시킨 바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리스는 지난 2011년부터 작년까지 총 35차례의 파업을 벌였다. 그리스 정부가 2010년 경제위기 당시 복지예산 삭감 및 공공부문 노동자 축소, 노동시장 자유화를 강제하는 긴축정책을 실시하면서 부터다. 그리스 전 노동조합이 투쟁을 벌였지만, 보수정권은 긴축조치의 불가피성을 굽히지 않았고 투쟁은 5년간 이어졌다. 그리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결국 좌파정권의 지지 결집으로 이어졌다.

<참세상> 국제부 기자는 “그리스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반 긴축 여론을 확산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정권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평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 같지만, 해고와 실업, 비정규직과 같은 문제는 이웃나라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조용하게 살았기에,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뜬금없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행동하는 법을 몰랐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올해에는 공동의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이다. 노개투 파업은커녕 총파업의 의미조차 긴가민가한 A부터 Z까지의 익명의 노동자들은 과연 올해 민주노총 총파업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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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코프스키

    오히려 일정은 지금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 아마 지금에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 이유는 현장간의 결합 문제인가요? 아님 절차 문제인가요? ...

  • 지겹다

    허구헌날 총파업타령 진짜 지겹지도 않냐

  • 노동자

    '단 한 번의 승리가 아쉽다'고?.
    어떻게 단 한 번의 총파업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종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닌데. 일상에서 끊임없이 후퇴하고 지고있는데. 일상에서부터 어떻게 지지않을 지를 고민하고 방안을 내놔야지, 그게 어렵다고 로또대박 신화에 몰빵할 수 있나?

  • 너무너무 달라요

    총파업을 자행해야 잘살아보세~!!!!!

  • 파업은 꿈이나 선언이 아닙니다. 파업은 현실이고 나와 우리를 지키겠다는 신념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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