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의 매각이 결정됐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우선매수 청구권자인 박삼구 회장과의 매각협상에서 7228억 원에 금호산업 경영권(지분 50%+1주)을 넘기기로 했다. 이로써 박 회장은 그룹을 되찾고, 채권단은 자칫 부실해질 수도 있었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모두 윈윈한 걸까?
박삼구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해 이른바 ‘승자의 저주’ 논란에 휩싸이며 그룹을 워크아웃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이다. 금호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은 당시 국유기업이고, 금호산업보다 5배나 몸집이 커 특혜시비까지 일었던 대우건설(2006년)과 대한통운(2008년)을 인수했다. 그러나 박삼구는 이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4200억 원이 넘는 CP(기업어음)를 발행해 결국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워크아웃으로 넘어갔다. 이 일로 박삼구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경영분쟁까지 벌이며 이전투구가 이어지자 둘 다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가 바로 1년 후 다시 회장으로 복귀했다.
회사 망친 장본인이 계속 회사 대표로 있는 워크아웃제도
이번 금호산업 매각을 보면 경영권이라는 것이 어떻게 유지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와 장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상식적인 질문이 가능한데, 어떻게 회사를 부도로 몰아넣은 사람이 계속해서 회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어떻게 부실의 장본인이 우선매수 청구권자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2006년 이전 통합도산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법정관리로 들어간 회사 대주주의 주식은 ‘전량 소각’됐다. 대주주 보유주식을 모두 없애 경영권을 바로 박탈했다. 그런데 이렇게 경영권을 박탈하면 회사가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는 경영자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6년 이후 ‘기존경영자관리인제도(DIP)’를 도입해 대주주의 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지분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줬다. 경영권이 유지돼야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통합도산법에 기업관리자 선임 대상을 '채무자의 대표(채무기업 대표이사)'로 한정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뒀다(법 제74조).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의 원인을 제공한 현 경영진이 계속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경영정상화 노력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다. 무능한 경영인이 DIP제도로 연명하며 부실을 키우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탈받고 채무관계를 국가에 떠넘기기 위해 법정관리를 악용하는 경우까지 발생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박삼구 회장은 과거 같았으면 모든 주식이 소각되고 경영권이 박탈되었겠지만, 이 제도 때문에 회사를 말아먹고도 계속해서 회장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최소한 경영권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채권단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이 사재 3300억 원을 출연한 것을 들어 우선매수 청구권자로 선정했다. 말 그대로 매각을 할 때 먼저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 우선매수 청구권이다. 그런데 박삼구 회장은 유상증자에 출연한 돈을 형제간 분쟁이 있었던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매각해서 마련했다. 이전투구로 치닫던 박삼구와 박찬구는 경영분쟁을 없애기 위해 그룹을 분리하고 각각 보유하고 있던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형제간에 합의한 박삼구는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팔고, 그 돈으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우선매수권을 확보했다.
이처럼 박삼구는 돌려막기와 같은 지분인수와 워크아웃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그룹 회장직을 유지하고, 채권단 관리 하에 있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우선매수권자가 될 수 있었다.
상호출자에 신규순환출자까지 허용
2013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790억 원 규모의 금호산업 기업어음(CP)의 출자전환을 허용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워크아웃 상태에 있는 금호산업의 자본잠식이 심각해 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될 위험에 빠졌다는 게 이유였다. 자본잠식률을 낮추기 위해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금호산업 CP를 출자전환하는 방안이 나왔고 공정위는 안팎의 반발에도 이를 허용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를 소유한 최대주주라 아시아나항공이 출자전환하면 서로 주식을 보유하게 돼 ‘상호출자’가 된다. 상호출자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대기업집단 내의 상호출자로 인해 기업의 연쇄부도를 경험하고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아시아나항공의 출자전환이 예외조항에 해당한다며 이를 허용했다.
6개월 후 아시아나항공은 다시 이 지분을 자신의 계열사인 금호터미널에 넘겼다. 그럼으로써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금호터미널->금호산업’이라는 순환출자구조가 새로이 형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밝힌 신규순환출자 금지가 깨지는 순간이다.
재벌이 망치면 국가가 되살리고 재벌이 다시 산다
더 큰 문제는 금호타이어다. 금호타이어는 우리은행(14%), 산업은행(13.5%) 등 정부지분이 28%에 육박한다. 금호산업 채권단의 정부지분이 9%가 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게다가 채권단 보유 지분은 현재 시장가로 계산하면 약 4203억 원으로 워크아웃 당시 평가액 7000억 원보다 40% 정도 줄었다. 이 손실을 누가 다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금호그룹은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일부 부실은 정리했지만, 여전히 많은 부실에 이자까지 쌓여 금호타이어의 부채는 2조 원이 훌쩍 뛰어넘었다. 정작 부실의 책임자인 박삼구 회장은 지금까지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 왔지만,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워크아웃으로 1천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됐으며 저임금 속에서 10여 년 넘게 버텨오고 있다.
그렇다면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 대금 7228억 원과 앞으로 있을 금호타이어 인수대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박 회장은 그룹의 출자구조상 맨 아래에 있는 금호고속을 4000억 원 내외로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금호고속은 현재 (박삼구 회장이 아니라) 금호터미널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자금은 인수받을 금호산업 지분을 담보로 대출이나 펀드투자를 받을 수 있다. 금호타이어 지분 역시 다른 계열사들의 자금을 동원해 지분인수에 나설 것이 뻔하다. 결국 더 이상 이른바 ‘사재’라는 것도 없이 계열사 매각이나 돌려막기를 통해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다시 확보해 나갈 것이다.
이처럼 재벌기업의 워크아웃 후 재벌 되사기는 모순 덩어리로 가득 찬 사기극과 같다. 재벌지배 구조를 악화시키는 순환출자의 허용, 워크아웃 과정에서의 정부채권단의 손실, 부실의 증가, 노동자 정리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등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지켜온 것은 고작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인 것이다.
금호산업과 같은 재벌 기업은 국민 세금을 들여 회생절차를 거친 후 재벌들이 헐값에 되사갔다. 2001년 현대그룹 해체 후 법정관리로 넘어간 현대건설은 꼭 10년 후 다시 현대차그룹에 매각됐다. 현대건설이 2001년 채권단 공동관리로 들어갈 무렵 2조 9000억 원의 적자와 4조 40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무려 3조 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가 부실을 털고 2006년 워크아웃 졸업 후 매년 수천억 원의 순이익과 현금 1조 원을 보유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런 기업을 부실을 유발한 장본인인 현대가 다시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손실의 사회화를 위한 공적자금, 정부채권단의 운용은 그 자체로 재벌에 대한 특혜일 뿐이다. 투입된 공적자금이든, 출자전환된 지분이든, ‘회수’라는 미명 아래 오랜시간 많은 자금이 들어가고, 수많은 노동자의 피땀으로 다시 기업을 살려놓으면 재벌이나 해외 초국적 자본, 투기적 금융자본에게 매각했다. 각각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차그룹, 대우차를 인수한 GM,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있다.
국가가 지분을 보유한 국유기업의 정책적 목표는 오로지 지분을 되팔아 자금을 회수하는 데 있을 뿐이다. 현재 국유기업이나 국가가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해당 업종에서 대기업이며, 주력기업들이다. 이들은 시장형 공기업과도 달리 정부의 통제 울타리 완전 바깥에 존재한다.
이제라도 (자금회수라는 이름의) 매각 중심 워크아웃, 재벌 퍼주기식 구조조정과 손실의 사회화를 멈추고 국유기업의 체계적인 운영계획 속에서 (재무적 참여가 아니라) 국가소유형 정책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참세상연구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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