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심각한 부실로 경영위기에 처한 대우조선에 지난 주 4조2천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 지원이 결정되었다. 신규 자금 내용은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1조 원의 유상증자를 하고, 나머지 3조2000억 원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절반씩 지원키로 했다. 또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기존 대출금 가운데 1조 원을 출자 전환하기로 해, 지원 규모는 총 5조2000억 원으로 볼 수도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채권단이 인력 구조조정을 위해 노조에 ‘백지동의서’에 가까운 요구를 해 비판이 제기되었었다. 산업은행 구조조정본부장은 지난 29일 "직영인력 1만3천 명을 순차적으로 여러 방법으로 정리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1만 명 이내로 감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금지원 대가로 ‘3000명 감원’ 방침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현재 대우조선의 직영인력은 생산직 7천여 명, 사무직 6천여 명이다. 3천명 감원은 당초 알려진 300여명 보다 10배에 달하는 것으로,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는 가운데 보수언론들은 “주인 없는 기업”의 실패를 거론하면서, 대우조선과 같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국유기업들의 민영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특히 대주주이면서 자금지원의 책임을 맡은 산업은행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금융위원회는 11월 1일 산업은행 ‘대수술’을 위한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자회사 118곳을 팔고, 또한 조선 및 해양 경기 민감 산업 지원을 줄이고 중견기업 지원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구조조정을 위한 자회사관리위원를 신설하고 구조조정 업무를 대폭 강화하기 위해 인력을 투입하고 조직을 개편하기로 했다. 또한 시장가로 매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임직원 면책을 실시키로 했다. 그리고 연도별 매각 실적을 경영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현재 산업은행은 377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15% 이상 출자한 비금융자회사는 총 118개인데, 장부가로는 2조3000억 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중 투자기간이 5년 이상인 91곳을 3년 내 집중적으로 매각할 방침이다.
[출처: 금융위원회] |
하지만 산업은행이 보유한 기업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이 꺼리는 기업을 떠맡으면서 발생한 것들이라 시장에서 신속히 매각되기 힘든 곳이 많다. 그래서 정부는 매각 대상 기업의 시장가격이 애초 샀을 때(장부가)보다 낮아도 적정 손실을 반영한 뒤 바로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매각시 시장가격 매각방침과 임직원 면책방침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실 이것은 부실매각, 헐값매각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안들에 대해 미리 공세적인 매각을 독려하기 위한 선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손실의 사회화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대부분 산은이 떠안은 자회사의 업황은 여전히 좋지 않은데다 적정손실을 얼마큼 반영할지도 내부적인 기준이 없다. 실제로 대우조선은 몸집이 너무 크고 업황도 좋지 않아 매수자를 찾기 쉽지 않다.
제조업 구조조정 임박
한편 이와 더불어 이미 국회에는 제조 기업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 제출되어 있다. 이 사업 재편 지원제도에선 정상적인 기업이 자발적으로 신성장사업 진출, 중복 경쟁사업 통합, 부진사업 정리 등을 추진할 시, 인수 합병(M&A) 절차를 간소화시켜주고, 세제지원, 자금 및 사업혁신 지원, 규제 불확실성 해소 등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얼마 전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간에 있었던 석유화학, 방위산업 분야의 2조 원대 빅딜에서 보듯 제조업 기업 간 인수 합병 흐름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경영 승계를 위해 거대자금이 필요했던 삼성의 특수한 이해가 결합된 것이지 일반적인 기류라고 보긴 힘들다. 그래서 정부는 은행권을 통해 11~12월 대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근거로 연말쯤 강도 높은 부실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13일 범정부 구조조정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협의체의 공식 명칭은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이다. 금융위원장 주재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조선 해운 건설 등 취약산업과 관련한 주무부서 차관급, 금융감독원 부원장,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부기관장으로 구성된다.)
이 구조조정 협의체는 부실기업 및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전권을 행사한다. 정보 공유는 물론 은행권의 여신심사제도 정비,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 구조조정 관련 시스템도 다룰 예정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는 이유는,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전반의 큰 틀에서 구조조정을 하려하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간산업 및 방위산업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정부 내 협의체를 통해 구조조정 추진방향을 정하고, 이번에 구조조정 대상이 정해지면 채권은행이 채권회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부실우려가 있는 경기 민감 산업에 대한 금융권 전체 지원 규모도 줄어들 것이고, 아마도 반강제적으로 산업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이다.
문제는 이 구조조정이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제 값 받고 자산을 매각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비용절감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인력구조조정이 활용될 것이다. 이번 대우조선 사태는 이것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필두로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인력구조조정 방침을 재차 밝히고 나섰고 삼성그룹은 그룹차원의 계열사 재편과 해외법인부터 인력구조조정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정부의 노동개혁 아젠더와 맞물려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시키는 내용이 입법화 된다면, 구조조정에 날개를 달아줄 셈이 된다.
이처럼 정부 주도로 산업은행 중심의 국유기업 매각과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은행권의 신용평가를 통해 기업구조조정 압박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 수준을 넘어 산업전반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구상이 뜻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수조원대 조선업종 부실사태에서 보듯, 구조조정의 규모가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의 빅딜처럼 민간기업들이 알아서 구조조정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겠지만,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원재편 지원제도가 부실기업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정상적인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다른 한편에선 구조조정과 기업살리기 명분으로 노동에 대한 공격이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 선제조치로 대우조선 사태처럼 노조로 부터 백기투항을 받아 노동자들의 예상되는 반발을 초기에 진압하고자 할 것이다. 임금동결, 무파업선언, 퇴직강요, 정리해고 등등이 노동자들에게 강요될 것이다. 이것이 노동개혁 명분으로 수개월간 ‘청년팔이’를 했던 현 정부의 기획 작품이었음이 점점 더 명확해 지고 있다. [참세상연구소(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