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반올림 이어 말하기](1) 삼성직업병 피해자 고 윤은진 씨 유가족

  9월 21일부터 강남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진행 중인 ‘삼성 직업병 피해자 이어 말하기’ [출처: 반올림]

삼성 직업병 피해자(아래 피해자)들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함께 2007년 말부터 삼성의 사과 및 보상,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요구하며 꾸준히 싸워 왔다. 지난해 5월에는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며 ‘합당한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의 약속은 이미 휴지조각이 돼 있다.

공식 사과가 있기까지 7년 동안 삼성은 피해자들의 슬픔과 분노를 위로금으로 어물어물 덮어버리려 하거나 아예 모른 체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 판정을 좀처럼 내려 주지 않았다. 2015년 10월 현재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는 모두 217명이고, 그중 산업재해를 신청한 이들은 56명인데, 이 가운데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피해자는 4명뿐이다.

권오현 부회장의 사과 이후에도 삼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은 일부 피해자들에게만 ‘우선 보상’을 해 준다며 피해자들을 서로 갈라지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3자가 참여하는 조정위원회가 꾸려졌고 삼성과 피해자가족대책위(유가족 6명), 반올림이 참여하여 조정을 받기로 했다.

조정위원회는 지난 7월 권고안을 내놓았는데 삼성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독립된 사회적 기구, 즉 ‘공익 법인’을 설립하여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실현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거부한 채 삼성 스스로 짠 보상안을 내놓았고, 9월 초 느닷없이 ‘보상위원회’를 꾸린다고 발표했다. 즉 피해자들은 삼성의 내부 기구나 다름없는 보상위원회에 ‘개별적’으로 접촉해 ‘정해진 기간’ 안에 보상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보상의 내용과 방법, 시기를 일방적으로 못 박은 삼성의 행태에 거세게 반발했다. 삼성을 협상 자리에 끌어들이기까지 자그마치 7년이 걸렸지만, 삼성은 피해자들과 조정위원회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만든 보상위원회를 통해 그동안의 노력을 가볍게 짓밟아 버린 것이다. 더구나 삼성이 꺼낸 보상은 결국 ‘돈’뿐이었고, 거기에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은 들어있지 않았다.

반올림과 피해자들은 9월 21일부터 강남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직업병 피해자 이어 말하기’를 시작했다. 피해자들이 직접 마이크를 쥐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해자들의 소굴 앞에서 풀어내기로 한 것이다. 다음은 10월 1일 다섯 번째 이어 말하기에 참여한 피해자 유가족(고 윤은진 씨의 언니)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최민 씨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윤은진 씨는 2000년 3월에 스무 살의 나이로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 입사해 일하다가 이듬해 4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요양을 위해 고향 영덕으로 내려갔지만 2003년 5월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같은 해 8월에 사망했다.)

  윤은진 씨의 언니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최민 씨 [출처: 반올림]

윤은진 씨 언니의 이야기

“은진이가 (기흥 공장에 들어간 뒤) 늘 피곤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엄마에게 들었어요. 피부에도 손에도 뭐가 많이 났다고도 했고요. 그렇게 너무 힘들어하니까 결국엔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만두고 몇 달 뒤에 갑자기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급성백혈병이라고 진단받았어요.”

“처음엔 동생이 왜 백혈병에 걸렸을까, 가족 중엔 암이든 뭐든 전혀 없는데 대체 왜 백혈병에 걸렸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운이 나빠서 그렇게 된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가족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냥 슬퍼할 수밖에 없었어요. 은진이는 급성이라 다른 환자들에 비해 투병 기간도 짧았어요. 투병한 지 1년도 채 안 돼서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그 뒤에 언론 등을 통해 반올림이라는 데를 알게 되었어요.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싶어서 이리저리 자료 같은 걸 찾다 보니 동생이 일했던 삼성 기흥 공장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참여연대에 제보를 했더니 거기서 저를 반올림에 연결해 주셨죠. 반올림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동안 저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마치 퍼즐 조각 맞추어지듯 다 맞춰지는 거예요. 동생이 기흥공장에서 했던 업무가 유독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일이었다는 사실도, 제 동생뿐 아니라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저는 안산에서 살아요. 안산에서 강남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동생이 간 지 벌써 햇수로 13년이더라고요. 아마 동생이 살아 있었으면 결혼도 했을 테고, 아이도 낳고, 제 다섯 살배기 아들의 이모가 됐겠죠. 그런데 그런 평범한 일상들을 하나도 경험하지 못하고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거예요. 그런 동생을 생각하다 보니까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안산이라 그런지, 지하철 타고 오는데 ‘세월호 부모님들도 아마 나랑 똑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호 유가족 분들도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알아야지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그건 저희(삼성 직업병 피해자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삼성에서 저희에게 사과하고 많은 돈을 준다 해도 동생이 살아오진 않아요. 근데 제2 제3의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동생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아마 동생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자기처럼 단순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도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을 거예요.”

“삼성과 세월호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은 다를지 몰라도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안전에 대한 문제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누구나 다 자기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삼성 직업병 피해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작년에 삼성이 공식 사과를 할 때만 해도 저도 뭔가 기대했었는데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낼 게 아니라 정말 이 문제에 대해 삼성이 진심을 담아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진이도 그렇고 다른 피해자들도 그렇고, 쓰다가 버리는 기계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회사를 위해 일하다 그렇게 된 거니 피해자들에게 당연히 물질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희에게 ‘돈 받으려고 그렇게 싸우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사람들 살아가는 데 돈 필요하잖아요. 물론 돈이 전부가 될 순 없어도 당연히 물질적 보상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지금도 투병하고 계신 분들도 있는데 저희 싸움이 헛되지 않으려면 더는 똑같은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삼성 본사 앞 반올림 농성장에 걸려 있는 직업병 피해자 현황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최민 씨의 이야기

“반도체 공장은 처음에 한국에 들어올 때 ‘청정 산업’, ‘굴뚝이 없는 산업’,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환경에서만 만들어지기에 환경오염 없이 우리나라 경제를 살려줄 산업인 것처럼 소개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죠.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것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게 된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가 일하는 환경은 이렇다’고 목소리를 내서 알리기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반도체 만드는 공정에선 굉장히 많은 가스. 중금속, 화학물질을 사용합니다. 그중에 발암물질, 병을 일으키는 물질, 불임의 원인이 되거나 태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들이 굉장히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1980년대 미국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 주변 주민들에게도 건강상의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알려지자 반도체 공장이 실리콘밸리에서 아시아로,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삼성을 대상으로 굉장히 제한적인 역학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삼성이 정보를 다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연구였습니다. 다수의 직원들을 일하는 공정에 따라 분류하고 그 직원들에게서 어떤 병들이 많은지 조사한 그 연구에서조차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는 여성에게서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이 보통사람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윤은진 씨의 죽음에 대해 삼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유가족 분들을 보면 광화문에 계신 세월호 유가족 분들 생각나는데요. 그분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1년 넘게 광화문에 매일매일 모이는 이유 중 하나는 충분히 보상이 안 됐기 때문인데 그것이 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을 당했는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 원인을 밝히는 것 자체도 저는 굉장히 중요한 보상이고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잘못 낳아서, 잘못 키워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니고 일을 하다가 이러저러한 환경과 물질에 노출이 되어서 병에 걸렸다고 삼성이 시원스럽게 밝히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이 책임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이러저러한 원인 때문에 병이 발생했고 노동자들이 죽어갔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하고서 그 약속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가족들은 자신이 목소리를 내서 다른 희생자가 더는 나오지 않게 했다는 생각에 충분히 위로 받고 보상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삼성은 피해자들이 보상금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몰고 있습니다.”

  삼성 본사 앞 반올림 농성장. 경찰과 삼성 측 경비가 천막을 못 치게 하는 바람에 비가 와도 비닐을 둘러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과 반올림은 10월 7일 저녁부터 삼성 본사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삼성은 지난 8년간 그랬듯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삼성이 내보이고 있는 의지는 오로지 협상의 주도권을 피해자들과 반올림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일 뿐이고, 굳이 능력을 찾자면 보상위원회라는 허울 좋은 기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이어 말하기는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본사 앞 노숙농성장에서 날마다 이어질 예정이다.

* 정리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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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정동 처용

    삼성이 무서운 기업이죠....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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