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월 25일, 체감기온은 영하 25도였다. 연휴를 보내고 다시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칼바람까지 더해진 한파에 더욱 빨라진다. 25일 오전, 서울의 지하철이 다시 붐비는 시간.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혜화 방면)으로 들어오는 열차가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 무리를 이룬 장애인들이 눈에 띈다.
승강장 문이 열리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7시 44분에 도착한 열차에 탑승을 시도한다. 휠체어 한 대만큼의 틈이 만들어지고, 두 대만큼의 틈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세 대가 들어갈 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익숙한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스피커를 통해 중계방송까지 더해진다. “현재 우리 열차에 장애인 시위대 승차 중입니다. 문을 닫고 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탑승을 시도하던 휠체어가 빠져나온 다음에야 열차는 출발한다. 3분여간의 정차 시간이 끝났다.
1년 넘게 이어지는 전장연 지하철행동의 최근 풍경이다. 참세상은 ‘노동력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벨트’를 멈춘 사람들을 조명했다.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활동가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권리’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장애’ 다음으로 많았다. 비장애인에겐 공기 같은 권리를 절박하게 외치고 있었다.
지하철, 노동력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행동’을 시작한 지도 1년이 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묻더군요. 왜 하필 지하철이냐고요. 국회로, 대통령실로 가라고요. 네. 우리는 2001년 이동권 투쟁 후 이미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지금만큼 주목받지 못했을 뿐, 지난 21년은 언제나 치열했죠. 그럴 수밖에요. 저희에겐 매 순간이 비상사태였거든요. 지금 온 힘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당장 누군가가, 심지어 나 자신이나 곁의 소중한 이가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다는 걸 언제나 잘 알고 있었거든요. “너희 요구에는 동의하지만 방식은 잘못됐다”는 시민 여러분. 그 외침이 매일 같이 울려 퍼지던 지난 21년 동안, 당신께선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간 장애인들의 존재를 진지하게 곱씹어 볼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있으셨나요? 그저 보이지 않던 사람들, 고성을 질러봐야 그저 불쌍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지하철에서 악당(?)의 모습으로 출몰하기 이전에 말입니다.
얼마 전 박경석 대표가 말하더군요. 지하철이 “노동력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같다”고요. 컨베이어벨트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지만 그 폭력을 당하는 데도 자격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 사회는 이윤 증식에 적합한 이들만을 ‘쓸모 있는 수단’으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지하철은 이 수단을 실어 나르는 일종의 ‘착취열차’죠. 이 열차가 멈추면 이 체제를 움직이는데, 그러므로 곧 여러분을 착취하는 데 문제가 생기니 거기서 누가 죽어 나가건, 그래서 이 사회가 얼마나 망가지건, 언제나 열차는 정시에 맞춰 내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모르는 이 질주가 정말 ‘우리’를 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저들’이 신봉하는 성장을 위해서죠. 우리는 그저 그 성장의 환상이 요구하는 시간성에 몸을 끼워 넣고는 저들이 먹다 남은 콩고물을 주워 먹을 뿐입니다. 그리고 성장에 하등 쓸모없다 치부된 이들은 이 ‘착취열차’에 올라탈 수조차 없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착취열차’는 동시에 누군가에 대한 ‘배제열차’이기도 한 것입니다.
▲ 전장연 회원들이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지하철은 그런 의미에서 참 상징적입니다. 물론 지하철은 그간 장애인들이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어도, 넓은 승강장 간격에 바퀴가 빠져 바닥에 나뒹굴어도, 매번 나만 내버려 두고 떠나도 아무 일이 없던 곳이었기에, 우리는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곳은 ‘쓸모 있는 몸’들을 분류해 착취의 현장으로 ‘운반’하고, ‘쓸모없는 몸’들은 바깥으로 내쫓아온 이 사회의 ‘피 묻은 일상’을 재생산하는 젖줄이기도 하죠. 실제로 이곳의 일상은 우리들 자신도 모르게 매 순간 억압과 차별을 재생산합니다. 억압과 차별이란 게 대부분 그래요. 여러분이 나빠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일상이 그 자체로 그것을 나도 모르게, 그러나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죠. 그 피해자는 장애인들이기도 하지만, ‘착취를 당하기 위한 시간’ 단 몇 분이 늦어졌다고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비장애인 노동자 여러분이기도 합니다.
시민 여러분. 저희는 여러분을 볼모로 잡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과 싸우고자 이곳에 온 것도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이 본인도 모르게 복무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이 억압과 차별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바꿔내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혹시 이 열차는 지금껏 너무 잘 달려온 게 문제는 아니었을까요?
전장연은 왜 계속 지하철을 타는 걸까?
▲ 1월 2일, 지하철에 승차하려던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경찰의 진압 으로 휠체어 밑으로 떨어진 채 절규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
새벽마다 각오를 다져가며 욕의 무덤으로 뛰어들고, 구타, 벌금 폭탄, 투옥의 위협에 시달리는 나날들은 저희로서도 꽤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싸워도 정부는 저희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더군요. 저희에 대한 공세만 더 강화됐죠. 지난 12월 화물연대 등 각종 파업에 대한 ‘무관용 대응’으로 재미를 본 분들은 그 어떤 민중 저항에 대해서도 ‘강경 대응’을 하는 게 좋다는 본인들의 믿음을 새삼 확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 높은 분들께서 강경대응 의사를 밝히자마자 전장연 회원들이 모인 지하철 역사에서 ‘무정차’가 이뤄졌고, 1월 2일, 3일에는 경찰도 저희를 그 어느 때보다 폭력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저희에게 6억 원 손배소를 제기했고, 검찰은 전장연 수사를 굳이 철도, 교통 담당 부서가 아니라 공안 담당 부서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그래도 ‘약자와의 동행’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냐고요? 올해 전장연이 요구한 부문의 장애인 예산이 3천억 증액되지 않았냐고요? 짚고 넘어갈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자랑하는(?) 이 증액분 대부분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별 수 없이 올릴 수밖에 없는 장애인 활동지원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분입니다(그나마도 이 노동자들은 매우 열악한 임금 조건 속에서 노동하고 있고, 올해 임금이 올랐다고 그리 상황이 호전된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 증액분은 ‘자연증가분’이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 실효성이 없습니다. 참고로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엔’ 한국 장애인 예산이 OECD 가입국 GDP 대비 평균 장애인 예산의 1/3도 안 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예산안이 다 정해지고 난 뒤, 우리가 하도 ‘생떼’를 써대는 통에, 결국 최종 예산안에서 “장애인 근로지원인 예산을 106억 원이나 더 확보했다”며 생색을 내던데요. 이 말도 실은 굉장히 기만적입니다. 이 액수가 전장연 권리예산 요구안의 0.8%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나서도 그렇습니다. 지난 4년간 근로지원인 신청자 수가 급증해왔고, 이에 정부에서도 지난 몇 년간 근로지원인 예산을 점차 확대해 왔는데요.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이렇게 당연히 예상되는 근로지원인 신청자 증가를 무시하고 근로지원인 예산을 사실상 동결해뒀어요. 그렇잖아도 지난해 관련 예산이 조기 소진돼 어떤 장애인은 근로지원인을 제공받지 못해 직장을 관두는 등 심각한 문제도 발생했는데 말이죠.
이에 전장연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면서 관련 예산이 결국 예산안 심사 후 조금이나마 증액된 겁니다. 그런데요, 사실 이 106억 역시 지난 몇 년간 매년 확대돼 온 근로지원인 예산에 비하면 심히 부족한 액수입니다. 이 탓에 올해도 지난해처럼 일자리를 잃는 장애인 노동자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죠. 여러분. 이게 어딜 봐서 ‘증액’입니까?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싸움을 멈출 수 있다는 거죠?
사실 저희는 이미 여러 번 지하철행동의 중단을 약속했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찾아와 권리예산을 약속해 준다면. 대통령직 인수위가 권리예산을 약속해 준다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리예산을 약속해 준다면. 예산안 심사 후 권리예산이 적정 수준 반영된다면…. 심지어 저희 요구를 완전히 수용해야만 행동을 멈추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몇 차례의 뼈를 깎는 양보에도, 저희 요구를 진지하게 수용한 국정 책임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하철행동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입니다
어떤 분은 저희 요구가 수용되려면 지하철 그만 막고, 먼저 시민들의 공감부터 얻으라고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이 그런 거라면서요. 그런데 저는 살면서 ‘장애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절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사안이 대체 왜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후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을까요? 국내총생산이 3배, 정부 1년 예산이 6배 늘어나고, 정권이 수차례 바뀌는 동안 말이죠.
어쩌면 이유는 단순한 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장애인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선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이 사회가 전혀 몰랐던 게 아닐까요? 이 사회 ‘가장 쓸모없다 치부된 사람들’은 사회적 자원의 분배 과정에서 애당초 보이질 않았고, 이들의 목소리 역시 들려오지 않았으니까요. 지난 한 해, 저희 요구의 실현을 염원하며 177명의 장애인,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 역사 안에서 머리를 밀었는데요. 삭발의 순간마다 울려 퍼진 177개의 결의문 하나하나는 여러분이 당연하게 누리는 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었는지를 낱낱이 폭로합니다.(1)
이들은 묻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장애인들이 추락 위험을 감수하고 리프트를 타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장애인들은 대체 언제쯤 버스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지에 대해서요. 장애인들에게 대중교통과도 같은 장애인콜택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리도 강조한 ‘대중교통의 정시성’이란 게 왜 전혀 보장되지 않는지, 어느 지역에서는 왜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지만 장애인콜택시를 겨우 탈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이뿐입니까? 장애인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학교에 갈 자격이 없다고, 공장에 갈 자격이 없다고 치부돼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왜 우리는 한 방에 수명이 머무는 시설에서 평생을 갇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그렇습니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자신의 머리를 밀며, 여러분께서 그리도 소중히 생각하는 ‘시간’을, 심지어 삶 전체를 평생 빼앗겨 왔다고 외쳐 왔습니다.
▲ 1월 2일 발송된 <안전안내문자>. 이 문자는 행정안전부 예규를 어긴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참사 당일엔 ‘절차’를 이유로 무정차가 이뤄지지도 않았고, 안전문자도 뒤늦게야 발송됐다. |
지하철 연착이 곧 누군가에게 ‘더 생산적’일 수 있었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니, 1분만 연착해도 벌금을 부과하겠다고요? 네. 힘들지만 감수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장애인들이 빼앗겨온 수십만, 수백만 분에 대해서도, 이들이 빼앗겨온 삶의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서도 보상하십시오. 그리고 그전에, 장애인들의 저 목소리들에 제발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러고 보면 ‘당신들의 권리와 시간’을 위하여, 아니 더 정확히는 이 야만적 일상을 문명적이라 믿고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와 시간을 포기해 온 사람들은 정작 지금 ‘이기적’이라 욕을 먹고 있는 장애인들 아니었나요? 그동안 이 절규들이 이 사회에 전혀 가닿지 않던 그 긴 시절을 여러분은 정말로 민주적이라 생각하십니까?
저희는 지난해 이 나라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지하철행동으로 국회 상임위에서 저희 권리예산 증액요구안 1.3조 중 절반을 합의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이 불완전한 증액안도 수용하지 않았죠. 그렇게 결국 기재부 원 예산안에서 106억만이 증액된 채, 올해 장애인권리예산 부분이 꾸려졌습니다. 국민들이 적어도 ‘내용 차원에서는 동의한다’는 장애인 권리예산 확대를, 심지어 국민들이 뽑은 대표들이 합의한 결정을 단숨에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정부의 한 부처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 도대체 누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건 단순히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 자원의 분배권을 이렇게 기재부가 쥐어튼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권이 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든 언제라도 이 ‘독재’ 덕에 삶이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죠. 아니, 실은 진작에 기재부의 횡포 덕에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이 이미 곳곳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지하철과 함께, 곳곳에서 ‘피 묻은 일상’을 멈출 것을 제안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쏟아내는 “너희 권리를 위해 우리 권리를 침해하는 게 정당하냐”는 비난, 그 말대로만 행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우리 권리를 빼앗는 게 누구인지는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권리를 빼앗긴 자들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요.
그럼에도 욕을 하신다면, 기꺼이 듣겠습니다. 저는 저희가 ‘저들’에게 진지하게 상대할 만한 적으로조차 여겨지지 않던 그 시절을 기억합니다. 절실한 마음으로 아우성을 쳐도, 사람답게 좀 살아보고자 경찰벽을 향해 돌진해도, 기자 하나 없던 그 현장들을 기억합니다. 1년이 넘는 지하철행동에도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채 ‘악역조차 되지 못했던’ 과거의 그 처량함을 되찾느니, 겨우 따낸 악당의 배역을 맘껏 누리겠습니다.
▲ 1월 13일, 교육 노동자들이 혜화역 지하철 선전전에 지지 방문해 건넨 편지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전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욕의 무덤에 파묻혀도, 저희를 욕하는 분들이 언젠가 저희가 쟁취한 성과를 함께 누리리란 것을요. “전장연이 장애인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친여당 성향 장애인단체 여러분이,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하철이 너희 것이냐” 외치는 수많은 시민분들이 이미 저희가 쟁취한 성과를 누리고 있듯이요.
전 바라고 있습니다. 지하철행동이 ‘저들’이 가진 사회적 자원의 통제권을 ‘우리’ 손으로 탈취해 오는 민주주의의 투쟁으로 기억되길요. 그리고 나아가 여러분 모두가 이제 지하철을 넘어 여러분 삶의 공간 곳곳에서 이 피 묻은 일상을 멈춰주길요. 그 일상이 억압과 차별을 포함한다면, 저희도 당연히 당신들의 ‘멈춤행동’에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 수많은 여러분들이 저희의 싸움에 함께해 주시고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올 한 해가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무정차’의 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억압받는 자들에 의한 ‘멈춤’의 한 해가 될 것인지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각주>
(1) 해당 결의문은 <비마이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