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의 동행이 ‘폭력’으로 돌아오다

[이슈] ‘불법 존재’로 낙인찍기부터 노골적 폭력까지


2022년 7월 1일 오세훈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약자와의 동행’을 내세웠다. ‘약자와의 동행’은 서울시를 운영하는 데 운영 기조가 될 것이며, 임기 4년 동안 서울시를 ‘복지특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여기에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교통사고 보행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를 보급한다거나 학습 플랫폼 ‘서울런’을 확대 운영하겠다는 등의 시혜와 동정의 정책뿐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은 없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리가 필수로 보장돼야 한다.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도 존재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2007년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을 비준한 나라다. CRPD에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지역사회는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여전히 너무 열악하다.

오 시장이 내세운 ‘약자와의 동행’이 장애인의 권리를 향상하는 정책인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근본적인 문제-기본권에 해당하는 권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시혜와 동정의 정책으로는 절대 장애인의 권리를 향상할 수는 없다. 이에 전장연은 2021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정부를 상대로 장애인권리예산을 확보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자 투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언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싸움을 부추겼다. 전장연의 투쟁을 장애인 vs 비장애인, 장애인 vs 시민으로 갈라치며, 우리가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이 무엇인지, 장애인이 온몸으로 투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가렸다. 장애인들이 21년간 투쟁해 온 역사를 가린 채 ‘불법’을 저지르는 존재로 낙인찍는 행태 역시 여전하다. 그리고 불법을 운운하며 자행되는 시위 강경 대응은 장애인 활동가 및 전장연 활동가에게 폭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폭력이 최고봉에 달했던 날은 지난 1월 2일 오전 8시 삼각지역에서 있었던 ‘신년 맞이 장애인권리예산 확보를 위한 지하철행동’이었다. 그 당시 경찰 600여 명, 전장연 활동가 150여 명, 서울교통공사 50여 명이 삼각지역 숙대입구 방향 승강장에 모여 있었다. 전날 오 시장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이동식 발판’이 장애인 활동가의 탑승을 저지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는 모습. 원래 이동식 발판은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 틈이 넓거나 단차가 생기는 경우 휠체어 바퀴가 틈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처: 유진우]

“시민분들께 호소합니다. ‘지하철행동’은 장애인권리예산과 입법을 향한 ‘권리투쟁’입니다. ’지하철행동’은 세상에서 목소리가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듣지 않는 세상,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실천이자 저항입니다. 시민 여러분, 23년 새해는 탐욕스러운 ‘권력투쟁’에 강요된 ‘각자도생’보다 권리를 향한 ‘연결과 관계의 공간’을 내어주시기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비장애인만 ‘시민의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장애인만 타는 ‘시민권 열차’에 ‘탑승’시켜주십시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브레이크 없는 ‘무정차’ 폭력을 시민의 힘으로 막아줄 것을 호소합니다. 전장연은 ‘권리를 향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오 시장은 2023년 1월 1일 MBN ‘정윤갑의 집중 분석’에서 전장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언급하며 “1분이라도 늦으면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씩이나 지연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탑승을 지연시키는 행위를 할 시 경찰과 지하철 보안관이 ‘저지할 것’”이라며 탑승 거부를 예고했다. 이는 장애인을 시민으로 보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법 존재’라고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이었다.

오 시장이 말한 그대로의 상황이 벌어졌다. 아침 8시에 지하철을 탑승하려는 전장연 활동가들을 경찰과 지하철 보안관이 막아섰다. 삼각지역 숙대입구 방향 1-1부터 10-4까지 포진한 경찰들은 방패를 들고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막았다. 고작 지하철을 타려는 것뿐이었는데, 우리는 테러리스트처럼 대우받았다. 그럼에도 전장연의 기조는 비폭력 대응이었다. 우리의 말이 무기가 되길 바라며 장애인도 시민이라는 것을 외치기 시작했다.

호소문은 삼각지역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비폭력 기조로 시민에게 비장애인만 타는 시민권 열차에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자리를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안내 방송에 점점 신경전이 펼쳐졌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교통공사 삼각지역장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역 시설 등에서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광고물 배포행위’, ‘연설행위’,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철도안전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즉시 시위를 중단하시고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퇴거 불응 시에는 공사는 부득이 열차 탑승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란 내용의 안내 방송을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방송했다.

안내 방송 내용을 살펴보면 노골적인 폭력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열차 탑승 거부’란 말에 폭력이 있다. 지하철은 누구나 탈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에 탑승하는 시민이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열차 지연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장애인의 열차 탑승을 거부하는 건 장애인을 시민으로 보지 않는 행위, 장애인을 ‘불법 존재’로 낙인찍는 행위이다. 폭력적인 내용을 안내하던 서울교통공사는 급기야 직접적인 폭력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활동가들의 지하철 탑승을 오후 3시까지 막았는데, 결국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폭력 진압에 장애인 활동가가 탄 전동휠체어의 등받이가 망가지고, 조이스틱이 망가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뿐만 아니라 활동가가 탄 휠체어를 밀어 활동가가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같은 폭력 진압은 장애인에겐 더욱 치명적이다. 인파가 많은 지하철에서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떨어지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직결될 수 있다. 그렇기에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필사적으로 장애인 활동가 사방팔방에 붙어 이들을 지켰다. 장애인 활동가와 비장애인 활동가가 서로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때, 경찰과 지하철 보안관은 이 둘을 떼 놓으려 수차례 시도했다.

욕지거리도 난무했다. 지하철 보안관들은 조롱 섞인 말과 함께 ‘XX새끼’라는 욕을 전장연 활동가들에게 내뱉었다. 들으라고 한 욕이어서 싸움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또 다른 폭력을 낳고, 폭력의 굴레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경찰들이 유진우 활동가를 체포하려고 불법감금 하는 모습. [출처: 전장연]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 앞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경찰이 내 휠체어와 손목을 잡고 진압하려고 했을 때 나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내 저항의 몸짓에 경찰은 내게 맞았다며, 체포하겠다고 했다. 20여 명의 경찰이 나를 막아서고 체포를 위해 겁박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순간 무섭고,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긴장하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들이 나왔다. 내 장애의 특성이었다. 결국 불법으로 감금돼 40분 뒤에 풀어졌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공포감이 몰려온다.

오 시장 당신이 말한 ‘약자와의 동행’이란 게 ‘폭력’”인지 묻고 싶다. 또한, 우리가 하는 지하철행동이 ‘불법’이라면 법에 명시돼 있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는 당신은 ‘합법’인지 묻고 싶다. 눈앞에 보이는 행위를 가지고 법의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정부가 해야 하는 일, 서울시장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으면 한다. 장애인을 상대로 공작과 폭력적인 진압을 일삼기보다 시민적 권리를 확대해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현재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지하철은 흡사 영화 ‘설국열차’에서 나오는 기차와 같다. 설국열차 속 기차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탈 수 있는 칸이 나뉘어 있다. 이른바 계급과 계층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맨 뒤에는 약자가 있고, 맨 앞 칸에는 설국열차를 만든 자가 타고 있다. 맨 뒤 칸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저들이 주는 음식, 저들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설국열차를 멈추기 위한 ‘혁명’을 꿈꾸며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맨 앞까지 도달했지만 ‘혁명’을 꿈꾸는 자들이 원하는 ‘혁명’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설국열차가 계급과 계층, 자본주의가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장애인을 사회에서 격리시켜 버렸다. 결국, 오늘날 우리의 투쟁을 만든 장본인은 국가다. 폭력을 일삼는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진압 앞에서도, 장애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긴 ‘비장애인 중심 사회’ 앞에서도, 우리는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비장애인만 타는 지하철을 멈춰 세울 때, 약자와의 동행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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