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다. 월드컵에서의 축구 실력이란 단순히 개개인의 능력이나 조직력만이 아닌, 국가마다 유전되어 각인된 집단적 인프라의 총화임을. 이길 것 같다가도 꼭 막판에 어이없는 실수로 비기거나 황당하게 진 것이 결코 우연이나 실수가 아님을. 그건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적 자신감이며, 그 유전된 자신감이야말로 ‘우승의 맛을 본 놈이 우승한다’는 비논리적인 명제를 설명해 준다는 것을.
그럴수록 상대팀 토고의 모습에서 우리의 과거가 보인다. 경기전 의식에서 우리 나라 국가가 두 번 연달아 울린 해프닝이 그들에게는 단순한 해프닝은 아니었을 게다. 그건 ‘가난한 나라’에 대한 행사진행자들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무시’였음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것이고, 이 우연 아닌 우연이 그라운드에서도 심판의 휘슬과 자신의 발목을 걸고넘어지리라는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국가 횟수만큼의 스코어로 지고 있을 때 그들의 수비진과 미더필더의 자포자기한 듯한 걸음걸이에서 저개발 독재국가의 축구대표팀에 드리워진 ‘후진’ 운명의 그늘을 느꼈다면 오버일까?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하게 토고의 미더필더와 수비는 처음부터 ‘근성’이 없어 보였다. 아니, ‘의욕’과 ‘성취동기’가 없어 보였다는 게 정확할 게다. 월드컵 출전수당을 둘러싼 토고축구협회와 대표팀간의 갈등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38년간의 독재자의 아들이자 현 독재자의 동생인 토고축구협회장 냐싱베의 FIFA 지원금(최빈국에게 준 축구발전지원금과 본선 진출 후 쏟아진 수십억 원) 횡령은 못 본 체하고 ‘애국심은 온데간데 없고 돈만 밝힌다’는 여론의 화살을 맞아 그들의 어깨는 벌써 쳐져 있었다. 토고의 독재자 가족은 ‘애국’이라는 명목으로 대표님에게 국제적인 앵벌이를 강요한 게 아닌가?
비싼 국제항공료 때문에 자국민의 응원도 변변히 받지 못한 토고대표팀에 비해, 우리는 더 이상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400명의 붉은악마 원정단과 여행객, 이민자, 유학생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아 홈그라운드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물론,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즐거운 건 ‘애국심’에만 기댄 악바리 근성이 아니라, 순수한 축구 실력과 유전된 자신감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6월 13일, 우리는 가난한 독재국가의 축구대표팀 토고, 아니 가난한 독재국가였던 우리의 과거와 싸워서 이겼다.
4년 전 2002년 6월 13일 한일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미순이 효선이’를 잃었다. 길가의 돌멩이처럼 미군장갑차에 깔아뭉개졌고 길가의 돌멩이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건은 잊혀졌다. 월드컵 4강의 기쁨 속에서.
이번 토고전에서처럼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싸워 이겨야 한다. 월드컵의 열광은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열광이라는 것을, 우리의 열광은 여타의 사회적 이슈가 끼어들면 방해받을 만큼 약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보여줘야 한다.
2006년 월드컵의 구호는 <어게인again 2002>가 아니라, <더모어the more 2002>이여야 하지 않을까?
월드컵을 사랑하는 분들, 우리의 월드컵 열기는 강합니다. 한미 FTA에 대한 부릅뜬 비판의식 속에서, 미군의 전략적 재배치를 위해 자국민의 삶터를 빼앗은 정부에 대한 치욕과 분노의 열기 속에서도 월드컵에 대한 우리의 열기는 결코 방해받지도,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더 모어 2002!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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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님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