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축구뿐만 아니다. 웬만한 스포츠의 룰은 하나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란 모름지기…’라는 얘기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던 여성치고 변변히 축구의 룰을 아는 여성이 몇이나 될까.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부에 속한 여자아이들 얼굴이 검다느니 남자 같다느니 하면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모든 편에서 놀림을 받곤 했으니 어찌 보면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기회를 사회적으로 차단당한 셈이다. 그러니 사실 뼈 속에 깊숙이 각인된 민족 정체성이나 잘생긴 선수들을 보는 재미를 빼면 월드컵이라 해서 별다르게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월드컵이 재미가 없다.
이참에 축구 룰도 익히고 국내에선 볼 수 없는 ‘아트싸커’의 참맛도 알면 좋지 않겠냐는 주변 친구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왜 그것이 하필이면 태극‘전사’들의 ‘국가’대항 경기에서냔 말이다.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는 거라면 토고를 응원한들 프랑스를 응원한들 스위스를 응원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토고전이 있던 날 술집에서 토고의 선제골에 기뻐하던 친구는 그 날 무슨 외계인 취급을 당했다고 하는데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축구가 좋아서일까 그 날만큼은 한국인인게 자랑스러워서일까.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감옥에 가서 썩는 게 당연하고 나라가 하는 일이니 평택 주민들은 이기심을 버리고 그만 따라주는 게 맞는 사회에서 우리가 언제부터 이 나라를 자랑스러워했고 모든 한국인은 하나였는지 궁금하다. 혹 또 모르겠다. 무슨 광신도들처럼 보이는 붉은 악마들의 시뻘건 물결이 아니라 가끔 주위 친구들이 볕 좋은 날 도시락과 시원한 맥주를 싸들고 한가롭게 야구를 보듯이 월드컵도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면 나도 한 번 아트싸커의 참맛에 빠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흔히 축구, 대규모 남성 집단, 성은 월드컵의 3요소라고 한다. 나는 2002년에도 올해에도 거리 응원에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그 집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해서 조금 다른 예이긴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다른 얘기로 이야기를 풀어 가볼까 한다. 2003년에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울대 잔디밭에서 ‘Why Not'이란 문화제를 개최했던 적이 있다.
이 문화제에 함께 뜻을 같이한 여러 가수들 중 노브레인의 차례가 돌아왔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노브레인의 무대는 굉장히 열정적이면서 남성적이다. 그래서 공연이 시작되자 앉아있던 사람들도 모두 무대 앞에 모여들어 신나게 흔들면서 함께 놀기 시작했다. 이 때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노브레인 공연 때마다 따라다니는 매니아들인 것 같았는데 점핑, 슬램(몸끼리 부딪히는 록 매니아 들의 몸짓) 등으로 노브레인의 공연에 호응을 했다. 뭐 신나게 놀면서 젊음을 발산하는 것까진 좋은데 난 그들이 자꾸 내 몸에 와서 부딪히는 게 싫었다.
걍 부딪힌다라고 표현하긴 뭐하고 나를 비롯한 주변 모든 사람에게로 쓰러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까… 본인들은 상당히 그런 몸짓들을 즐기는 것 같았지만 그 날 그 자리에서 나뿐 아니라 몇몇 다른 여성들도 그들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몇몇 친구들은 그 와중에 다리에 멍이 들기도 했다. 어디 한 군데 피할 곳도 없이 빽빽한 관중 틈에서 결국 끝까지 즐기지 못하고 나와 내 친구들은 무대 앞에서 나와 멀찍이서 공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성추행이 잇따른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 장면이 떠올랐다. 폭력, 방화, 성폭력 등은 오랫동안 광신적 축구 응원단의 문제로 지적되어 왔었던 바다. 짐작컨대 친고죄로 분류되어 있는 성폭력 사건을 특성상,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 상, 수많은 군중이 응원전을 펼쳐도 쓰레기 하나 떨어뜨리지 않았다 선전하는 한국 사회의 위선 때문에라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성폭력, 성추행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독일 월드컵에선 참으로 대담하게도 아예 축구와 섹스는 함께 간다는 모토 하에 성매매촌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며칠 전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촛불문화제에서 한 친구로부터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인 독일에 임시 성매매 집결지가 만들어졌고 한 여성국회의원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소 신문과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지 않아서 나만 몰랐겠거니 했는데 너무나 비중 없이 다뤄진 뉴스여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뉴스의 내용은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독일 월드컵에서 엄청난 성산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여성가족부가 독일 월드컵에 성매매 감시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또 손봉숙 의원은 “외신보도에 따르면 베를린 경기장 옆에 약 3천 평방미터 부지에 650명의 남성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성매매촌이 건립됐고, 이 성매매촌에서 성매매를 할 중앙 및 동구권 여성 4만여 명을 '수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 월드컵을 통해 성별, 인종, 빈부를 넘어 세계인의화합의 정신을 모아야 할 자리에 성산업을 부추기고, 여성의 성적 학대를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루려는 천민자본의 추악한 욕심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3천 평방미터 부지에 650명의 남성고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성매매 지역을 베를린이 월드컵경기장 옆에 건립했고 이 사업관련자는 ‘축구와 섹스가 함께 갑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일반 화장실크기의 성행위 박스(Performance boxes)라고 불리는 섹스헛(Sex Huts)은 울타리가 쳐진 축구경기장 크기의 부지에 군데군데 세워져 있으며 내부에는 콘돔과 샤워시설, 주차장, 구매자 신변노출방지 장치 등이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 CATW) 등 세계 각국의 단체와 활동가 및 시민들은 이미 월드컵 경기 기간 중 성매매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이러한 위험하고도 황당한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성매매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구체적인 활동을 신문지면이나 뉴스에서 찾아볼 순 없었다.
한국에서야 성매매 알선이나 성산업이 불법이기 때문에 올해 독일과 같은 통 큰(?) 사업을 생각도 못했겠지만 암튼 독일의 그 쪽 업계(?)에선 이번 월드컵 기간 중에 장사 좀 될 것이라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올림픽이나 각종 월드컵 등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 때마다 성산업이 최고 호황을 누린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디 이 뿐이랴.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축구에서만 유독 더 심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훌리건들의 난동이나 각종 방화, 폭력 등의 축구 관련한 사건사고들을 본래적으로 스포츠(특히 축구)가 갖고 있는 경쟁성, 위계성, 공격성과 관련지어 사고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번 기사를 접하고 기지촌 성매매나 성노예(정신대) 문제가 떠올랐다. 12번째 선수인 응원단(서포터즈)과 선수들을 위해서 지어진 섹스헛, 주한민군의 주둔을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 지원과 조장을 했던 기지촌 성매매 문제, 전쟁에 지친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주도해 만들었던 성노예 문제 등은 스포츠와 전쟁이라는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촉구는 아주 자주 전쟁에 비유된다) 국가가 남성 집단을 위해 여성의 몸을 동원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지구촌 최대의 축구 잔치라 불리 우는 월드컵은 다분히 남성적이다. TV를 통해 보여 지는 그들의 플레이에 여성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그저 남성 전사들을 응원하는 주변적인 인물로만 그려질 뿐이다. TV 카메라가 월드컵을 응원하기 위해 섹시하게 치장한 연예인이나 태극기로 탱크탑을 만들어 입은 여성들을 훑을 때, 월드컵 선전을 기원하며 누드응원을 기획했다는 한 연예인의 기사를 다룰 때 축구를 하는 선수도 사회적 관객도 모두 주체는 남성이다.
남성들의 월드컵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 여자 축구 선수가 있다는 사실은 기억이나 할까? 2002년을 기점으로 여성도 동등한 주체로서 축구 자체를 만끽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글쎄… 물론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재미를 알게 된 여성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이들 여성 붉은악마를 관조하는 시선은 여전히 얼만큼 벗었냐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월드컵은 월드컵일 뿐이다. 모두가 거기에 열광해야할 필요도 없고 열광하지 않는다고 왕따 당할 이유도 없다. 월드컵은 ‘남성’월드컵이다. ‘man'이 남녀를 불문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남녀를 불문한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는 월드컵이 기실은 ’남성‘의 잔치인 것이다. 기껏해야 치어리더 아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동원되는 물건쯤으로 취급되는 월드컵은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의 가부장성을 강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듯 하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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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님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이다.